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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몰래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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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헨리 몰래슨은 1953년 뇌 수술을 받은 환자로, 수술 후 심각한 기억 상실을 겪으며 기억 연구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는 간질 치료를 위해 양쪽 내측 측두엽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새로운 사건이나 지식을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몰래슨의 사례는 장기 기억이 여러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기억의 공고화와 관련된 뇌 영역을 밝히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사후 그의 뇌는 연구를 위해 기증되었으나, 연구 과정에서 윤리적인 논쟁이 발생하기도 했다. 몰래슨의 사례는 영화 '메멘토'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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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몰래슨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본명헨리 구스타프 몰래슨
출생1926년 2월 26일
출생지미국 코네티컷주 맨체스터
사망2008년 12월 2일 (82세)
사망지미국 코네티컷주 윈저록스
수술 전 몰래슨 (1953년)
1953년 수술 전 몰래슨
연구 참여
기여뇌 과학 발전에 기여
연구 분야기억 상실증 연구
주요 연구양측 내측 측두엽 절제술의 장기적인 결과

2. 생애 및 수술 배경

헨리 몰래슨(Henry Molaison, 1926년 2월 26일 ~ 2008년 12월 2일)은 기억 연구 역사상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어린 시절 겪은 자전거 사고 이후 난치성 간질로 고통받았다.[3] 처음에는 9세 때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후 가족에 의해 7세 때 사고로 정정되었다. 수년에 걸쳐 부분 발작을 겪다가 16세부터는 심각한 강직-간대 발작으로 악화되었다.

고용량의 항경련제 치료에도 불구하고 발작이 조절되지 않아 27세에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3] 결국 1953년, 그는 하트퍼드 병원의 신경외과 의사인 윌리엄 비처 스코빌에게 치료를 의뢰하게 되었다.[3] 스코빌은 몰래슨의 간질 원인이 양쪽 뇌의 내측 측두엽에 있다고 판단하고, 해당 부위를 외과적으로 절제하는 수술을 제안했다. 이 수술은 1953년 9월 1일 시행되었으며[13], 그의 삶과 기억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2. 1. 어린 시절 및 간질 발병

헨리 몰래슨은 1926년 2월 26일 미국 코네티컷주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그는 7세 때 자전거 사고를 당한 후 조절하기 어려운 간질을 앓기 시작했다. 이 사고는 처음에 9세 때 일어난 것으로 알려졌으나, 나중에 그의 어머니가 7세 때의 사고였다고 바로잡았다. 몰래슨은 수년 동안 경미한 부분 발작을 겪었으며, 16세 생일 이후부터는 심각한 강직-간대 발작으로 증상이 악화되었다. 한때 조립 라인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27세가 되었을 때는 고용량의 항경련제를 복용함에도 불구하고 발작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해졌다.[3]

2. 2. 스코빌의 수술 제안 및 시행

1953년, 몰래슨은 하트퍼드 병원의 신경외과 의사인 윌리엄 비처 스코빌에게 의뢰되었다.[3] 당시 몰래슨은 항경련제를 고용량으로 복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심각한 간질 발작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스코빌은 몰래슨의 간질이 그의 좌우 내측 측두엽(MTL)에 국한되어 있다고 진단하고, 이 부위를 외과적 절제술로 제거할 것을 제안했다.

1953년 9월 1일, 스코빌은 몰래슨의 양쪽 내측 측두엽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시행했다.[13] 이 수술로 해마와 편도체의 약 3분의 2(혹은 대부분), 그리고 해마로 가는 주요 감각 입력 경로인 내후각피질 전체가 제거되거나 파괴되었다.[13] 또한 해마곁이랑의 일부와 전외측 측두 피질 일부도 제거되었다. 스코빌과 밀너(Scoville & Milner, 1957)는 수술 범위에 대해 "양쪽 내측 측두엽을 절제했다. 전방으로는 측두엽 끝 중간 지점에서 8cm까지, 외측으로는 측두각까지 절제했다"고 기술했다. 수술 후 남아있는 해마 조직(약 2cm)은 위축되었고, 내후각피질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완전히 기능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으로 여겨졌다.

몰래슨의 두 해마 대부분이 양쪽으로 제거되었다.

3. 수술 후 기억 상실

1953년 하트퍼드 병원의 신경외과 의사 윌리엄 비처 스코빌은 간질 치료 목적으로 헨리 몰래슨의 양쪽 내측 측두엽을 외과적으로 절제했다.[3][13] 이 수술은 간질 발작 조절에는 성공했으나, 심각하고 영구적인 기억 장애를 남겼다.

수술 후 몰래슨은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지 못하는 심각한 전향성 기억 상실증을 겪었으며, 수술 전 몇 년간의 기억을 잃는 역행성 기억 상실도 경험했다.[13] 하지만 모든 기억 능력이 손상된 것은 아니어서, 단기적인 정보 유지 능력(작업 기억)과 기술 학습 능력(절차 기억) 등은 비교적 보존되었다.

이 사례는 1957년 스코빌과 브렌다 밀너에 의해 처음 보고되었고[13], 이후 H.M.으로 알려지며 기억 연구에 큰 영향을 주었다. 몰래슨의 상태는 해마를 포함한 내측 측두엽이 새로운 장기 기억 형성에 필수적임을 밝혔으며, 다양한 기억 시스템이 뇌의 서로 다른 영역에 의해 처리된다는 이해를 증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3. 1. 전향성 기억 상실증



1953년 윌리엄 스코빌에 의해 시행된 내측 측두엽 절제술 이후, 헨리 몰래슨은 심각한 전향성 기억 상실증을 겪게 되었다.[13] 이로 인해 새로운 사건이나 사실을 장기 기억(명시적 기억)으로 저장하는 능력을 상실했지만, 수술의 본래 목적인 간질 발작 조절에는 성공했다. 특히 새로운 의미 기억 형성 능력의 손상 여부와 그 정도에 대해서는 연구자들 간의 논쟁이 있었다.[12] 그는 기본적으로 수술 시점의 기억에 머물러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몰래슨의 모든 기억 능력이 손상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작업 기억(단기 기억)과 절차 기억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었다. 예를 들어, 그는 짧은 시간 동안 정보를 기억할 수 있었고 (작업 기억 실험에서 정상적인 수행 능력을 보임), 새로운 운동 기술을 배우고 수행할 수 있었다 (절차 기억). 다만, 자신이 그러한 기술을 배웠다는 사실 자체는 기억하지 못했다. 이는 작업 기억과 절차 기억이 내측 측두엽 구조와는 다른 뇌 영역에서 처리되며,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구분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되었다.

몰래슨은 전향성 기억 상실 외에도 어느 정도의 역행성 기억 상실을 겪었다. 그는 수술 직전 1~2년 동안의 일들과, 길게는 수술 전 11년까지의 기억 일부를 떠올리지 못했다. 이 기억 상실은 시간적 차등(temporally graded) 양상을 보여, 수술 시점에 가까울수록 더 심했다.

기억 상실 증상에도 불구하고, 몰래슨은 지능 검사에서 정상적인 수행 능력을 보였으며, 언어 이해 및 구사 능력도 대부분 유지되었다. 이는 어휘 기억 등 특정 언어 관련 기억 능력이 내측 측두엽 구조와는 독립적임을 시사한다.

몰래슨의 사례는 1957년 스코빌과 브렌다 밀너에 의해 처음 학계에 보고되었으며[13], 이후 기억 연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상태는 해마를 포함한 내측 측두엽이 새로운 장기 기억(특히 일화 기억의미 기억)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했다. 그의 사례는 인간 기억의 신경학적 기초를 이해하고, 다양한 기억 시스템이 뇌의 서로 다른 영역에 의해 중재된다는 이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다만, 199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몰래슨의 뇌 영상 연구 결과, 실제 뇌 손상 범위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광범위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는 그의 기억 장애 원인이 되는 정확한 뇌 손상 부위를 특정하는 것을 다소 복잡하게 만들었다.

3. 2. 역행성 기억 상실증

몰래슨은 수술 후 심각한 전향성 기억 상실과 더불어 중등도 수준의 역행성 기억 상실도 겪었다. 그는 수술 직전 3~4일간의 일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했으며, 더 나아가 수술 전 약 1~2년 동안 있었던 일들의 대부분과 최대 11년 전의 일부 사건까지 기억하지 못했다.[13] 이러한 기억 상실은 시간적 차등(temporally graded)을 보였는데, 이는 수술 시점과 가까운 과거의 기억일수록 더 심하게 손상되고, 상대적으로 더 먼 과거의 기억은 비교적 영향을 덜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3. 3. 보존된 기억 능력

헨리 몰래슨은 윌리엄 스코빌에게 받은 내측측두엽 절제 수술 후 심각한 순행성 기억 상실을 겪었지만, 모든 종류의 기억 능력이 손상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사례는 특정 기억 시스템이 뇌의 다른 영역과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를 제공했다.

몰래슨의 작업 기억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었다. 그는 짧은 시간 동안 정보를 기억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는데, 예를 들어 방금 제시된 숫자를 기억하는 작업 기억 실험에서 일반인과 비교했을 때 수행 능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Smith & Kosslyn, 2007). 이러한 결과는 작업 기억이 수술로 제거된 내측 측두엽 구조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제공하며,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구분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Kolb & Whishaw, 1996). 또한 그의 지능 검사 결과는 정상 범위였고, 어휘 기억을 포함한 언어 능력도 대부분 유지되어, 이러한 기능들이 내측 측두엽과 독립적임을 시사했다(Smith & Kosslyn, 2007; Corkin, 2002).

절차 기억 역시 손상되지 않았다. 몰래슨은 새로운 운동 기술을 학습할 수 있었는데, 이는 그가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암묵적 기억 능력이 보존되었음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로, 브렌다 밀너가 1960년대 초반에 수행한 연구에서 몰래슨은 거울에 비친 상을 보면서 별 모양을 따라 그리는 과제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며 실력이 향상되는 모습을 보였다(Corkin, 2002). 그는 매번 과제를 수행했다는 사실 자체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과제를 수행하는 능력은 점차 나아졌다. 이는 절차 기억이 해마와 같은 내측 측두엽 구조와는 다른 뇌 영역(예: 기저핵, 소뇌)에 의해 처리됨을 시사한다(Milner, cited in Corkin, 2002). 하노이 탑 퍼즐 해결[21]이나 반복 점화(repetition priming) 실험[21](Corkin, 2002) 등 다른 연구들에서도 그의 암묵적 기억 및 절차 학습 능력이 온전함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발견은 장기 기억이 단일한 시스템이 아니라, 사실이나 사건에 대한 서술 기억(명시적 기억)과 기술이나 습관에 대한 비서술 기억(암묵적 기억)으로 나뉠 수 있다는 이해를 뒷받침했다(Smith & Kosslyn, 2007).

수술 이전의 기억, 즉 역행성 기억 상실의 경우, 몰래슨은 어느 정도 손상을 보였다. 그는 수술 직전 1~2년 동안의 일들과 길게는 수술 전 11년까지의 기억 일부를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아주 오래된 기억, 예를 들어 어린 시절의 기억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는 기억 상실이 시간에 따라 강도의 차이를 보임을 나타낸다(Smith & Kosslyn, 2007, p. 214). 이러한 현상은 기억 고정 과정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최근의 기억은 아직 내측 측두엽에 의존하고 있어 수술로 인해 손상되었지만, 오래전에 형성되어 완전히 고정된 기억은 뇌의 다른 영역(주로 대뇌 피질)으로 옮겨져 저장되었기 때문에 영향을 덜 받았다는 것이다(Smith & Kosslyn, 2007, p. 214).

또한 몰래슨은 1953년 이전에 습득한 지식을 활용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는 생애 말년에 십자말 풀이를 즐겼는데, 1953년 이전의 지식과 관련된 단서는 맞출 수 있었다.[14] 심지어 오래된 기억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보를 일부 통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소아마비에 대한 기존 기억에 조너스 소크 박사에 대한 정보를 추가하는 것이 가능했다.[2] 특정 공간 기억 과제에서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수술 후 5년 뒤에 이사한 집의 내부 구조를 상세하게 그릴 수 있었는데, 이는 매일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공간 정보가 암묵적으로 학습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Corkin, 2002, p. 156). 이는 해마 외에도 공간 정보 처리에 관여하는 다른 뇌 영역(예: 후부 해마곁이랑)의 기능이 일부 보존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Corkin, 2002).

4. 기억 연구에 대한 기여

헨리 몰래슨(H.M.)에 대한 연구는 인간 기억의 조직과 작동 방식에 대한 이해를 혁신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의 사례는 기존의 기억 이론에 도전하고, 기억 과정과 그 바탕이 되는 의 신경 구조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증거를 제공했다.[16] 그의 사례는 특정 뇌 영역 손상이 기억 능력에 미치는 영향을 보여줌으로써, 기억이 단일한 능력이 아니라 여러 하위 시스템으로 구성될 수 있음을 시사했고, 이는 뇌 병리학 연구와 정상적인 기억 기능 이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15]

몰래슨은 2008년 사망 후 자신의 뇌를 과학 연구를 위해 기증했다. 그의 뇌는 다나 재단과 미국 국립 과학 재단의 지원 아래 UC 샌디에이고 뇌 관측소(Brain Observatory)의 야코포 아네스 박사 연구팀에 의해 전례 없는 정밀 해부학 연구 대상이 되었다. 연구 목표는 몰래슨의 기억 장애를 일으킨 신경학적 원인을 세포 수준에서 밝히는 것이었다. 2009년 12월, 연구팀은 2401개의 뇌 절편을 성공적으로 제작했고,[17] 이를 바탕으로 2014년 초에는 그의 뇌 전체에 대한 디지털 3차원 재구성을 완료했다.[18]

2014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된 사후 연구 결과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새롭게 밝혔다. 예상과 달리 해마 조직의 절반 가량이 수술 후에도 남아 있었다는 점, 그리고 전두엽 피질에서 이전에 예상치 못했던 별개의 병변이 발견되었다는 점 등이다. 3차원 뇌 모델 분석을 통해 수술 과정에서 추가적인 뇌 손상이 발생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이 연구는 또한 고령(사망 당시 82세)에 따른 뇌의 노화 관련 변화들도 함께 보고했다.[19]

몰래슨의 뇌 디지털 아틀라스는 인터넷을 통해 무료로 공개되어[20] 전 세계 연구자들이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의 사례는 현재까지도 기억과 뇌 기능 연구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다만, 후속 연구들을 통해 그의 뇌 손상 범위가 초기에 알려진 것보다 더 광범위하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특정 기억 장애를 단일 뇌 영역의 손상만으로 설명하는 데에는 신중함이 요구된다.[15]

4. 1. 기억 형성과 뇌 영역

헨리 몰래슨(H.M.)의 사례는 기억 연구, 특히 뇌의 특정 영역이 기억 형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15] 그는 조절되지 않는 심각한 간질을 앓고 있었으며, 1953년 윌리엄 스코빌 박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스코빌은 간질의 원인이 양쪽 내측 측두엽(Medial Temporal Lobe, MTL)에 있다고 판단하고, 이 부분을 외과적으로 절제하는 수술을 시행했다. 이 수술로 해마의 약 3분의 2, 편도체, 그리고 해마로의 주요 입력 경로인 내후각피질 전체 등 내측 측두엽의 주요 구조물들이 제거되었다. 수술 후 남은 해마 조직도 주요 입력 경로가 파괴되어 사실상 기능을 상실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수술은 간질 발작을 조절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예상치 못한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H.M.은 심각한 순행성 기억 상실 증상을 보이게 되었는데, 이는 수술 이후의 새로운 사건이나 정보를 장기 기억으로 만들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특히, 개인적인 경험에 대한 기억인 일화 기억이나 세상에 대한 사실적 지식인 의미 기억과 같은 서술 기억(명시적 기억)을 형성하는 능력이 크게 손상되었다.[13] 그는 수술 시점 이후의 시간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으며, 수술 전 약 1~2년에서 최대 11년 전의 기억 일부를 상실하는 역행성 기억 상실도 어느 정도 겪었다.

하지만 H.M.의 모든 기억 능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의 지능은 정상 수준을 유지했으며, 전화번호를 잠시 외우는 것과 같은 단기 기억(또는 작업 기억) 능력은 비교적 온전했다. 또한, 거울을 보고 별을 그리거나 새로운 운동 기술을 배우는 것과 같은 절차 기억 능력도 손상되지 않았다. 그는 반복 훈련을 통해 이러한 기술을 습득하고 수행할 수 있었지만, 자신이 그 기술을 언제 어떻게 배웠는지에 대한 기억(일화 기억)은 전혀 하지 못했다.

H.M.의 사례는 기억에 대한 이해를 혁신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상태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들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 기억 시스템의 분리: 기억은 단일한 능력이 아니라, 뇌의 서로 다른 영역에 의해 처리되는 여러 하위 시스템(예: 단기 기억 vs 장기 기억, 서술 기억 vs 절차 기억)으로 구성된다는 강력한 증거를 제공했다.
  • 내측 측두엽의 역할: 내측 측두엽, 특히 해마가 새로운 서술 기억(일화 기억 및 의미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고 공고화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혔다. H.M.은 이 영역의 손상으로 새로운 장기 서술 기억을 형성하지 못했다.
  • 다른 기억 시스템의 독립성: 단기 기억절차 기억은 H.M.에게서 보존되었으므로, 이러한 유형의 기억은 내측 측두엽 구조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했다.
  • 기억의 부호화와 인출: H.M.이 수술 전의 오래된 장기 기억은 어느 정도 인출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장기 기억을 부호화(저장)하지 못했다는 점은, 장기 기억의 저장 과정과 인출 과정이 뇌의 서로 다른 메커니즘이나 영역에 의해 매개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처럼 H.M.의 사례는 특정 뇌 영역(특히 내측 측두엽)과 특정 기억 기능(특히 새로운 장기 기억 형성) 사이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후 기억 연구와 뇌 병리학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15][13]

다만, 199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H.M.의 뇌 영상 분석 결과, 초기에 생각했던 것보다 손상 범위가 더 광범위하다는 것이 밝혀졌다.[15] 이는 그의 특정 기억 장애가 정확히 어느 세부 영역의 손상 때문인지 명확히 구분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었지만, 내측 측두엽이 기억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그의 사례의 중요성을 희석시키지는 않는다.

4. 2. 기억의 종류와 뇌 영역

헨리 몰래슨(H.M.)의 사례는 기억 연구, 특히 기억의 종류와 이를 담당하는 영역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15] 그의 사례는 뇌의 특정 영역 손상이 기억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줌으로써, 정상적인 기억 기능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몰래슨은 수술 후 심각한 순행성 기억 상실을 겪어 새로운 장기 기억을 형성하지 못했지만, 단기 기억(또는 작업 기억) 능력은 비교적 정상적으로 유지되었다. 예를 들어, 그는 방금 들은 숫자나 단어를 짧은 시간 동안 기억하는 과제에서 일반인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13] 이는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서로 다른 뇌 시스템에 의해 처리되며, 특히 단기 기억은 내측 측두엽 구조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제공한다.[13] 그의 거의 온전한 단어 검색 능력은 어휘 기억 또한 내측 측두엽 구조와 독립적임을 시사한다.

또한 몰래슨은 새로운 운동 기술을 배우는 절차 기억 능력은 손상되지 않았다.[21] 브렌다 밀너가 1960년대 초반에 시행한 유명한 실험에서, 몰래슨은 거울에 비친 상을 보면서 별 모양을 따라 그리는 과제를 반복 연습함으로써 점점 더 능숙해졌다. 비록 그가 이전에 과제를 수행했다는 사실 자체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의 운동 수행 능력은 향상되었다.[21] 코킨(Corkin)의 후속 연구에서도 여러 운동 학습 과제에서 그의 능력이 보존됨이 확인되었다.[21] 하노이 탑 퍼즐 해결 능력[21]이나 반복 점화(반복 노출을 통해 정보 처리 속도나 정확성이 향상되는 현상) 실험 결과[21] 역시 그의 암묵적 기억(비서술 기억) 능력이 유지되었음을 보여주었다.[21]

이러한 결과들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즉, 장기 기억은 단일한 시스템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회상할 수 있는 서술 기억(declarative memory, 일화 기억의미 기억 포함)과, 의식적 회상 없이 행동으로 나타나는 비서술 기억(non-declarative memory, 절차 기억, 점화 등 포함)으로 나뉜다는 것이다.[13] 몰래슨의 사례는 내측 측두엽(특히 해마 포함)이 새로운 서술 기억을 형성하고 고정하는 데 필수적이지만, 절차 기억이나 암묵적 기억과 같은 비서술 기억은 기저핵이나 소뇌 등 다른 뇌 영역에 의존한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21] 몰래슨은 수술 훨씬 전에 형성된 장기 기억은 회상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장기 기억은 만들 수 없었는데, 이는 장기 기억 정보의 부호화(encoding)와 인출(retrieval) 과정 또한 별개의 시스템에 의해 매개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다만, 199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몰래슨의 뇌 영상 연구 결과, 실제 손상 범위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광범위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특정 뇌 영역과 특정 기억 기능 사이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15]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래슨의 사례는 기억이 여러 하위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시스템이 뇌의 다른 영역과 연결되어 있다는 현대적인 기억 이론의 토대를 마련했다.

4. 3. 공간 기억

몰래슨의 기억 능력 연구는 공간 기억과 그 처리 과정에 관여하는 구조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했다.[22] 그는 새로운 일화 기억이나 사실적 장기 기억을 만드는 데 전반적인 어려움을 겪었고, 특정 공간 기억 검사에서도 심각한 손상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몰래슨은 자신이 사는 집의 배치를 매우 상세하게 그릴 수 있었다. 이는 그가 뇌 수술을 받고 5년 뒤에 그 집으로 이사했다는 점, 그리고 심각한 전향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놀라운 결과였다. 일반적으로는 그의 지형 기억 능력 또한 손상되었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22]

코르킨(Corkin)은 몰래슨이 "매일 방에서 방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집의 공간적 배치의 인지 지도를 구성할 수 있었다"고 추정했다.[22] 코르킨은 몰래슨이 집 평면도를 기억할 수 있었던 이유가 부분적으로는 손상되지 않은 의 공간 처리 네트워크, 예를 들어 해마곁이랑의 뒤쪽 부분 덕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22]

몰래슨은 지형 기억 외에도 그림 암기-인식 과제나 유명인 얼굴 인식 시험에서도 약간의 학습 능력을 보였다. 다만 유명인 얼굴 인식은 음운 단서가 주어졌을 때만 가능했다. 그림 인식 과제에서의 성과는 손상되지 않은 배쪽 해마주위피질 덕분일 수 있다.[22]

또한, 새로운 서술 기억 형성에는 전반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몰래슨은 유명인의 이름을 단서로 떠올리는 등 공적인 생활에 대한 일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2] 이러한 결과들은 몰래슨의 뇌에서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던 해마 바깥 영역들이 의미 기억이나 인식 기억에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동시에 이는 서로 다른 내측 측두엽 구조들 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었다. 반면, 특정 공간 과제에서 몰래슨이 보인 심각한 손상은 해마가 공간 기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기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되었다.[23][24]

하지만 1990년대 후반에 이루어진 몰래슨의 뇌 영상 촬영 결과, 뇌 손상 범위가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광범위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 그의 기억 장애가 정확히 어떤 뇌 영역 또는 영역들의 문제 때문인지 특정하기가 더 어려워졌다.[15]

4. 4. 기억 공고화

헨리 몰래슨(H.M.)의 사례는 안정적인 장기 기억을 형성하는 과정인 기억 공고화(memory consolidation)의 신경학적 기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그는 시간적 경향을 보이는 역행성 기억 상실을 나타냈는데, 어린 시절의 기억은 비교적 잘 유지했지만 수술 직전 몇 년 동안의 사건들은 잘 기억하지 못했다.[25] 즉, 오래된 기억은 손상되지 않은 반면 수술 시점과 가까운 기억은 손상된 것이다.

이는 오래된 기억은 내측 측두엽에 의존하지 않지만, 비교적 최근의 장기 기억은 내측 측두엽에 의존한다는 증거로 해석된다.[25] 따라서 수술로 제거된 H.M.의 내측 측두엽 구조가 기억 공고화 과정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기억 공고화는 내측 측두엽과 대뇌 피질의 다양한 영역 간 상호작용을 통해 경험에 대한 정보가 점차 내측 측두엽 외부, 즉 피질에 직접 저장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25]

5. 사후 연구 및 윤리적 논쟁

몰래슨의 사례는 인간 기억의 작동 방식과 그 신경학적 기반에 대한 이해를 크게 발전시키는 데 기여했다.[16] 그의 사후, 는 다나 재단과 국립 과학 재단의 지원 아래 해부학적 연구 대상이 되었으며, UC 샌디에이고 뇌 관측소에서 상세한 분석이 이루어졌다.[17][18] 이 연구는 몰래슨의 기억 장애 원인을 세포 수준에서 규명하고자 했으며, 그 결과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발표되어 해마 손상 정도와 예상치 못한 전두엽 병변 등 새로운 사실들을 밝혀냈다.[19] 연구 결과로 만들어진 뇌의 디지털 아틀라스는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었다.[20]

그러나 몰래슨 연구 과정, 특히 데이터 처리와 동의 획득 절차를 둘러싸고 연구 윤리에 대한 심각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뉴욕 타임스 기사를 통해 주요 연구자였던 수잔 코킨의 연구 방식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고,[10] 이는 과학계 내에서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26][27][28][29][30] 일부 과학자들은 동료 연구자를 옹호하는 과정에서 객관성을 잃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31] 몰래슨의 사례는 결과적으로 인간 대상 연구에서의 개인 정보 보호, 연구 동의의 중요성, 그리고 과학 연구 전반의 윤리적 책임에 대한 중요한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5. 1. 뇌 기증 및 해부학적 연구

몰래슨 사후, 그의 대뇌는 다나 재단(Dana Foundation)과 국립 과학 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지원을 받아 전례 없는 해부학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이 연구는 UC 샌디에이고의 뇌 관측소(The Brain Observatory) 소장인 야코포 아네스(Jacopo Annese)가 주도했으며, 몰래슨의 기억 장애에 대한 신경학적 기초를 세포 수준의 해상도로 밝히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16]

2009년 12월 3일, 몰래슨의 뇌를 절편으로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이 과정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다음 날인 12월 4일, 연구팀은 총 2401개의 뇌 절편을 성공적으로 확보했으며, 이 중 2개의 절편은 손상되었고 16개는 잠재적인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17] 그의 뇌 전체를 디지털화한 3차원 재구성 모델은 2014년 초에 완성되었다.[18]

연구 결과는 2014년 1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발표되었다. 연구자들은 1953년 수술 이후에도 H.M.의 해마 조직 중 상당 부분(약 절반)이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 이는 H.M.을 '순수한' 해마 손상 사례로 간주했던 기존의 많은 연구 결과 해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발견이었다. 또한, 이전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별개의 병변이 전두엽 피질에서도 확인되었다. 이러한 발견들은 H.M.의 과거 행동 검사에서 얻어진 원시 데이터들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뇌의 3차원 가상 모델은 수술 과정을 역으로 추적해 볼 수 있게 해주었는데, 이를 통해 왼쪽 눈 위쪽 전두엽의 손상이 수술 당시 윌리엄 스코빌 박사가 뇌의 내측 측두엽에 접근하기 위해 전두엽을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발생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이 연구 논문에서는 여러 영상 기법을 통해 뇌의 전반적인 신경 병리학적 상태에 대해서도 기술했다. H.M.은 사망 당시 82세였기 때문에 그의 뇌는 상당한 노화의 징후를 보였으며, 그의 인지 능력 저하에 기여했을 수 있는 몇 가지 심각한 병리학적 특징들도 함께 발견되었다.[19]

H.M. 뇌의 디지털 아틀라스는 인터넷 상에 무료로 공개되어[20]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도 접근하여 살펴볼 수 있게 되었다.

5. 2. 연구 윤리 논쟁

2016년 8월 7일, 헨리 몰래슨의 신경외과 의사였던 윌리엄 비처 스코빌의 손자 루크 디트리히가 작성한 뉴욕 타임스 기사를 통해, 몰래슨을 연구했던 주요 과학자 수잔 코킨이 연구 데이터 처리 및 동의 획득 과정에서 윤리적 문제를 일으켰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디트리히는 코킨이 몰래슨 관련 연구 문서와 데이터를 파기했으며, 몰래슨의 가장 가까운 친족으로부터 법적 동의를 제대로 얻지 못했다고 비판했다.[10]

이 기사가 발표되자 신경과학계는 즉각 반발했다. 200명 이상의 신경과학자들은 해당 기사가 편향되었고 사실을 오도한다며 공개서한에 서명했고,[26] MIT 역시 디트리히가 제기한 일부 주장에 대해 반박하는 성명을 발표했다.[27]

그러나 디트리히는 코킨과의 인터뷰 녹취록을 공개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해당 녹취록에는 코킨이 몰래슨과 관련된 방대한 양의 데이터와 파일을 파기했다고 언급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28][29] 이에 대해 2016년 8월 20일, 코킨을 옹호하는 측은 두 번째 반박문을 통해 해당 녹취록에서 코킨이 다른 파일과 데이터는 폐기했지만 "H.M. 관련 자료는 보관했다"고 말한 부분을 강조하며 디트리히의 주장을 재반박했다.[30]

심리학자 스튜어트 바이스는 이 논쟁에 대해 언급하며, 코킨을 옹호하기 위해 성급하게 나선 200여 명의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지식 범위를 벗어난 주제에 대해 의견을 제시함으로써" 스스로의 신뢰성과 권위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바이스는 서명자들이 기사가 공개된 지 불과 이틀 만에 매우 빠르게 대응했으며, 대부분이 "편견에 대한 구체적인 주장을 알지 못했고" "사실에 대한 관련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학적 합의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해당 주제에 대한 실제 지식에 기반해야 하며 단순히 "사랑하는 동료를 옹호하기 위한" 반응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31] 이러한 논쟁은 과학 연구, 특히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에서 연구 윤리의 중요성과 데이터 관리, 동의 획득 절차의 투명성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6. 대중 문화에 미친 영향

Baxendale (2004)은 몰래슨의 삶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2000년 영화 ''메멘토'' 제작에 부분적인 영감을 주었다고 언급했다. 이 영화는 순행성 기억 상실증을 비교적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32]

참조

[1] 논문 Lasting consequences of bilateral medial temporal lobectomy: Clinical course and experimental findings in H.M. Thieme-Stratton Inc.
[2] 뉴스 No Memory, but He Filled In the Blanks https://www.nytimes.[...] 2010-12-06
[3] 뉴스 H. M., an Unforgettable Amnesiac, Dies at 82 https://www.nytimes.[...] 2008-12-04
[4] 웹사이트 Henry Right Now http://www.brainconn[...] BrainConnection.com 2008-08-05
[5] 논문 The Legacy of Patient H.M. for Neuroscience 2009-01
[6] 논문 The study of patient henry Molaison and what it taught us over past 50 years: Contributions to neuroscience 2014
[7] 논문 The Legacy of Henry Molaison (1926–2008) and the Impact of His Bilateral Mesial Temporal Lobe Surgery on the Study of Human Memory 2015-10
[8] 서적 Cognitive Neuroscience: A Reader Wiley
[9] 뉴스 Researchers To Study Pieces Of Unique Brain http://www.courant.c[...] 2009-11-29
[10] 뉴스 The Brain That Couldn't Remember https://www.nytimes.[...] 2016-08-03
[11] 간행물 Scientists Digitize Psychology's Most Famous Brain https://www.wired.co[...] 2014-01-28
[12] 문서 Schmolck, Kensinger, Corkin, & Squire, 2002
[13] 논문 Loss of recent memory after bilateral hippocampal lesions
[14] 뉴스 The Man Who Couldn't Remember https://www.pbs.org/[...] 2009-06-01
[15] 논문 H. M.'s Medial Temporal Lobe Lesion: Findings from Magnetic Resonance Imaging https://www.jneurosc[...] 1997-05-15
[16] 논문 Brain Plasticity and Behavior https://www.annualre[...] 1998-02
[17] 논문 Brain Observatory and the Continuing Study of H.M.: Interview with Jacopo Annese
[18] 웹사이트 Henry Molaison's (or HM) brain digitized to show how amnesia affects the brain https://www.techtime[...] 2014-01-29
[19] 논문 Postmortem examination of patient H.M.'s brain based on histological sectioning and digital 3D reco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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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논문 Memory, the mystery https://knowablemaga[...] 2021-01-14
[22] 논문 What's new with the amnesic patient H.M.? https://www.nature.c[...] 2002-02
[23] 서적 Fundamentals of Human Neuropsychology https://books.google[...] Macmillan 2009-07
[24] 논문 Hippocampus in health and disease: An overview 2012-12
[25] 서적 Cognitive Psychology: Mind and Brain Pearson/Prentice Hall 2007
[26] 논문 In Defense of Suzanne Corkin https://www.psycholo[...] 2016-09-30
[27] 웹사이트 Letters/Statement Submitted to the New York Times on August 9, 2016 from Prof. James J. Dicarlo, Head, Department of Brain and Cognitive Sciences at MIT https://bcs.mit.edu/[...] Brain and Cognitive Sciences 2016-08-09
[28] 웹사이트 Questions & Answers about "Patient H.M." https://medium.com/@[...] Medium 2016-08-10
[29] 논문 MIT Challenges ''The New York Times'' over Book on Famous Brain Patient https://www.scientif[...] 2016-08-10
[30] 웹사이트 Additional information as of August 20, 2016, further rebutting Luke Dittrich's allegations against Professor Corkin | Brain and Cognitive Sciences https://bcs.mit.edu/[...]
[31] 논문 Consensus: Could Two Hundred Scientists Be Wrong? Committee for Skeptical Inquirer 2017
[32] 논문 Memories aren't made of this: amnesia at the movies 2004-12-18
[33] 뉴스 2008年12月5日付け追悼記事 https://www.nytimes.[...]
[34] 웹사이트 Henry M. Right Now http://www.brainconn[...] 2006-08-05
[35] 웹사이트 An impact he could never appreciate http://dr.viviennemi[...] Vivienne Ming, Ph.D 2018-12-04
[36] 뉴스 H.M.'s Brain and the History of Memory http://www.npr.org/t[...] ナショナル・パブリック・ラジオ 200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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