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이 북방 영토를 순시한 것을 기념하여 서기 568년에 황초령에 세운 순수비이다. 원래 함경남도 장진군 황초령에 있었으나, 1852년 차령진으로 옮겨졌고, 현재는 함흥역사박물관 본궁 분관에 보관되어 있다. 비석은 화강석으로 제작되었으며, 예서체와 해서체를 아울러 사용한 420자의 비문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파괴되어 일부만 남아 있으며, 탁본을 통해 비문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비는 신라의 북방 영토 확장, 관직 체계, 사상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와 유사한 성격을 가진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장진군 - 장진호 (호수)
    장진호는 장진강에 댐을 건설하여 만들어진 인공 호수로, 장진강 수력발전소 운영을 위해 물을 흑림천으로 끌어오며, 장진호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 장진군 - 장진호 전투의 전투 서열
    장진호 전투의 전투 서열은 유엔군과 중국인민지원군으로 나뉘어 구성되었으며, 유엔군은 더글러스 맥아더가 총사령관, 에드워드 알몬드가 지휘하는 제9(X)군단에 제1해병사단 등을 배속했고, 중국인민지원군은 쑹스룬이 지휘하는 제9집단군에 제20군 등을 편성했다.
  • 진흥왕 순수비 -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신라 진흥왕이 영토 확장을 기념하여 세운 순수비 중 하나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원래 북한산 비봉에 있었으나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으며, 김정희에 의해 진흥왕 순수비임이 밝혀졌고 비의 건립 시기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나뉘며 비신에는 손상과 총탄 흔적이 있다.
  • 진흥왕 순수비 -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는 진흥왕이 568년 8월 마운령 순행을 기념하여 세운 화강암 비석으로, 비문에는 진흥왕의 업적과 순행 목적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북한 함흥본궁에 보관되어 있다.
  • 함흥시의 역사 - 흥남 철수 작전
    흥남 철수 작전은 1950년 12월 한국 전쟁 중 중공군 개입으로 불리해진 전황 속에서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이 흥남항에서 해상으로 철수한 작전으로, 10만 명의 피난민과 함께 철수하여 인도주의적 의미를 더했으며, 특히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대규모 구조 작전과 함께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고도 불리는 성공적인 작전으로 평가된다.
  • 함흥시의 역사 -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는 진흥왕이 568년 8월 마운령 순행을 기념하여 세운 화강암 비석으로, 비문에는 진흥왕의 업적과 순행 목적 등이 기록되어 있으며, 현재 북한 함흥본궁에 보관되어 있다.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문화재 정보
이름황초령 진흥왕 순수비
로마자 표기Hwangchoryeong Jinheungwang Sunsubi
국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유형국보
번호110
주소함경남도 함흥시 동흥산구역 함흥력사박물관
시대신라

2. 역사

황초령은 옛날 관북 지방으로 통하는 중요한 관문이었다. 황초령비는 원래 함경남도 장진군 황초령에 있었으나, 1852년 차령진으로 옮겨졌다. 이후 함흥역사박물관에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와 함께 보관되었다.

비석에는 김정희가 쓴 "진흥북수고경(眞興北狩古竟)"과 윤정현이 쓴 이건기(移建記) 탁본이 추가되어 있다. 진흥왕을 수행한 인물이 마운령비에 보이는 인물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 568년(진흥왕 29)에 함께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황초령비는 진흥왕이 동북쪽 영토를 순수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순수비로, 신라의 북방 영토 확장, 관직 체계, 사상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와 같은 성격의 비는 서울 북한산성(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과 경상남도 창녕(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에도 세워져 있다.[1]

2. 1. 비석의 형태와 내용

비석은 화강석을 잘 다듬어 만들었으나 형태는 파괴되어 일부만 남아 있다. 비문은 12줄에 35자씩 모두 420자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 글씨는 명필로 알려져 있는 예서체와 해서체를 아울러 썼다. 이 비는 신라 진흥왕이 확장된 영역을 순시하면서 세운 것이다.[1] 비가 세워진 연대는 지금으로부터 1400여 년 전인 568년(진흥왕 29년) 8월이다. 비문의 내용은 비를 세우게 된 연유와 의의, 그리고 진흥왕의 업적과 순회한 목적, 수행한 사람들의 직위, 이름들이 적혀 있다.[1]

3. 배경

황초령비는 함흥 황초령에 있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 앞면에 남아있는 부분을 탁본한 것으로, 12행 215자가 확인되었다. 황초령비는 원래 잘려진 채로 발견되었으며, 현재는 3개의 돌을 접합한 상태이다. 이 탁본에는 아랫부분 2개의 탁본은 없고, 글자가 가장 많이 새겨진 윗부분을 탁본한 것에 김정희의 "진흥북수고경(眞興北狩古竟)"과 윤정현의 이건기(移建記) 탁본이 추가되어 있다.[1]

진흥왕을 수행한 인물들이 마운령비에 보이는 인물과 동일한 것으로 보아, 마운령비와 함께 568년(진흥왕 29)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1]

3. 1. 역사적 중요성

황초령비는 진흥왕이 동북쪽 영토를 순수(巡狩)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순수비로, 신라의 북쪽 영토 확장과 관직 체계, 사상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1]

이 비석은 한국 고대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며, 당시 신라의 영역 범위, 관직 제도, 명칭, 지명 등을 밝혀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이와 비슷한 성격의 비는 서울특별시 북한산성(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과 경상남도 창녕군(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에도 각각 세워져 있다.[1]

3. 2. 유사 유물

이와 비슷한 성격의 비는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경상남도 창녕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에 각각 세워져 있다.[1]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