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상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흉상은 머리, 어깨, 가슴 부분을 조각한 조형물이다.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에서 처음 제작되었으며, 로마 시대에 널리 유행했다. 흉상은 예술적 표현, 위대한 인물 기념, 개인 숭배 등의 목적으로 제작되며, 석고, 청동, 목재, 대리석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흉상 | |
---|---|
지도 | |
정의 및 개요 | |
유형 | 조각 |
설명 | 목, 가슴, 어깨를 포함하는 인물 표현 |
목적 | 초상, 장식, 기념 |
역사 및 제작 | |
기원 | 고대 세계 |
재료 | 대리석, 청동, 테라코타, 석고, 나무 |
제작 기법 | 조각, 주조 |
예술적 특징 | |
스타일 | 사실주의, 이상주의, 표현주의 |
표현 | 개성, 성격, 사회적 지위 |
용도 및 의미 | |
용도 | 초상 조각, 장식 조각, 기념 조각 |
의미 | 권력, 위엄, 영광, 기억 |
예시 | |
고대 | 네페르티티 흉상, 카라칼라 흉상 |
르네상스 | 마테오 올리비에리 흉상 |
근대 | 볼테르 흉상, 다비드 르 브르통 흉상 |
관련 개념 | |
관련 용어 | 초상 조각, 조각상, 반신상, 전신상 |
관련 분야 | 미술사, 조각사, 초상화 |
2. 역사
흉상은 인물 초상을 입체화한 것으로, 주로 얼굴 형태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는 인물을 식별할 때 얼굴과 그 주변(머리, 목, 어깨, 가슴 부위)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흉상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전 세계에서 많이 제작되었으며, 특히 돌을 사용한 것은 오래 보존되어 당시 인물들의 모습을 현대에 전하고 있다.
흉상은 위인이나 귀족의 공적을 기리는 기념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과거 권력자나 위인의 모습을 본뜬 것이 많다. 현대에도 기업 창업자, 대학교 등 학교 시설의 저명인사나 공적이 있는 교육자, 공공시설의 지역 연고 인물 등의 흉상이 장식되기도 한다.
데생을 배우는 미술계 학생들에게 모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경우 대부분 흰색 석고상을 사용하며, "석고상"이라고 불린다. 미켈란젤로의 브루투스나 밀로의 비너스 등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원본이 전신상이라도 일부만 본떠 흉상으로 만들어진 것도 많다. 미술용 석고상은 여러 세대에 걸친 복제를 거쳐도 원형 조각의 아름다움을 전달하며, 학생 외에도 많은 아마추어 화가나 프로 예술가들이 회화의 모티브로 삼기도 한다.
2. 1. 고대
목까지 조각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조각상 머리는 때때로 흉상으로 전시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각상 머리는 종종 전신상의 파편이거나, 기존의 신체에 삽입되도록 제작된 것으로, 로마 시대의 일반적인 관행이었다.[1] 이러한 초상 조각상 머리는 이 문서에 포함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목까지 조각된 조각상 머리는 때때로 잘못 흉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흉상은 헬레니즘 시대 그리스의 발명품이었다(비록 아래에 제시된 이집트 흉상은 헬레니즘 시대 작품보다 5세기 앞서지만). 하지만 그리스 원본은 매우 적게 남아 있고, 그에 비해 로마 시대의 모방 작품은 많이 남아 있다. 코린토스식 투구를 쓴 페리클레스의 흉상으로 로마 시대 모방 작품은 네 점이 있지만, 그리스 원본은 전신 청동상이었다.[2] 흉상은 로마 초상 조각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2]
로마 시대의 전통은 로마 귀족 가문이 집의 중정(아트리움)에 사망한 가족 구성원의 밀랍 가면, 아마도 사후 가면을 보관하던 전통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다른 가족 구성원이 사망하면, 이 가면은 적절한 체격의 사람들이 선택되어, 사망자의 시신 앞에서 행렬에서 착용했는데, 기원전 167년부터 로마에 장기 체류했던 폴리비우스가 "놀란" 모습이라고 기록했다.[3] 후에 이러한 가면들은 조각상으로 대체되거나 보완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imagines maiorum''("조상들의 초상")을 소유하는 것은 기병 기사단에 속하기 위한 요건이었다.[4]
2. 2. 중세
일부 성물함은 흉상 형태로 만들어졌다. 특히 아헨 대성당 보물 창고에 있는 샤를마뉴 대제 흉상이 1350년경 만들어진 금 흉상의 예시이다. 그러나 흉상 형태의 성물함은 흔하지 않았다.[1]2. 3. 르네상스
흉상은 테라코타(terracotta)나 나무, 대리석 등 다양한 재료로 부활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대부분 바닥이 평평했고 어깨 바로 아래에서 끊겼다. 달마티아 출신이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활동한 프란체스코 라우라나는 주로 여성의 대리석 흉상을 전문으로 제작했다.[1]2. 4. 바로크
바로크 양식에서는 둥근 바닥의 로마식 스타일이 가장 흔했는데, 이는 주춧대(짧은 받침대 또는 받침) 위에 놓이도록 제작되었거나 놓여 있었다. 로마에 거점을 둔 잔 로렌초 베르니니는 교황, 추기경, 루이 14세와 같은 외국 군주들의 초상 흉상을 제작했다. 그의 영국 찰스 1세 흉상(1638년)은 현재 소실되었는데, 작가와 모델은 만난 적이 없었고, 베르니니는 로마로 보내진 반 다이크가 그린 세 가지 자세의 초상화를 보고 작업했다. 약 30년 후, 그의 젊은 루이 14세 흉상은 프랑스 조각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베르니니의 경쟁자 알레산드로 알가르디는 로마의 또 다른 주요 조각가였다.[5]3. 재료 및 제작 방법
흉상은 테라코타, 나무, 대리석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 수 있다. 초기에는 대부분 바닥이 평평했고 어깨 바로 아래에서 끊기는 형태였다. 달마티아 출신이지만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활동한 프란체스코 라우라나는 주로 여성의 대리석 흉상을 전문으로 제작했다.[5]
바로크 양식에서는 둥근 바닥의 로마식 스타일이 가장 흔해졌는데, 이는 주춧대(짧은 받침대) 위에 놓이도록 제작되었다. 로마에 거점을 둔 잔 로렌초 베르니니는 교황, 추기경, 그리고 루이 14세와 같은 외국 군주들의 초상 흉상을 제작했다. 그의 찰스 1세 흉상(1638년)은 현재 소실되었는데, 작가와 모델은 만난 적이 없었고, 베르니니는 반 다이크가 그린 세 가지 자세의 초상화를 보고 작업했다. 약 30년 후, 그의 젊은 루이 14세 흉상은 프랑스 조각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베르니니의 경쟁자 알레산드로 알가르디는 로마의 또 다른 주요 조각가였다.[5]
재질로는 석고나 청동, 목재 등이 일반적이다. 대리석 등 돌을 깎아 만든 것도 예전에는 제작되었지만, 내구성은 높지만 가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현대에는 거의 제작되지 않는다.
가소성이 있는 재료라면 주조로, 절삭성이 있는 재료라면 조각으로 만들어진다. 주조의 경우에는 점토를 재료로 원형을 만들고, 이를 가공하여 주형을 제작하여 주조한다. 석고의 경우에도 주조와 비슷하지만, 특히 석고상의 경우에는 과거 유명한 작품으로부터 형틀을 만들어 이 형틀을 사용하여 대량생산하는 데 적합하다. 데생용 흉상의 대부분은 이 석고상이다.
4. 제작 목적
흉상은 주로 인물의 초상화를 입체화한 것으로, 그 인물을 본떠 만든 것이다. 인물의 얼굴 형태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둔다.[5] 이는 인물을 식별할 때 얼굴과 그 주변(머리, 목, 어깨, 가슴 부위)에 자연스럽게 시선이 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흉상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전 세계에서 많이 제작되었으며, 특히 돌을 사용한 것은 오래된 것도 잘 보존되어 당시 인물들의 모습을 현대에 전하고 있다.[5]
흉상이 제작되는 목적은 과거에는 주로 위인이나 귀족의 공적을 남기는 기념·현창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권력자나 위인, 귀족의 모습을 본뜬 것이 많이 현존한다.[5] 전신상보다 간편하고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현대에도 이러한 기념물로서의 흉상이 많으며, 기업에서는 창업자, 대학교 등 학교 시설에서는 인연이 있는 저명인사나 공적이 있는 교육자, 공공시설에서는 지역과 인연이 있는 인물 등의 흉상이 자주 장식된다.[5] 또한, 단순히 예술 작품으로서 무명의 모델이나 특정 개인이 아닌 흉상도 제작된다.[5]
그 외 용도로는 데생을 배우는 미술계 학생들에게 모델로 사용된다. 이 경우 대부분 학교 미술실 등 실내에 전용으로 복제된 흰색 석고상을 설치하여 사용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석고상"이라고 불리며, 흉상도 많이 포함된다.[5] 미켈란젤로의 브루투스나 밀로의 비너스 흉상 등이 널리 알려져 있지만, 원본이 거대한 전신상이라도 그 일부만을 본떠 복제하고 받침대를 추가하여 흉상으로 만들어진 것도 많다.[5] 미술용 석고상은 수 세대에 걸친 복제를 거쳐도 원형 조각이 가진 아름다움의 정수를 전하고 있으며, 학생 외에도 많은 아마추어 화가나 프로 예술가들이 회화의 모티브로 삼기도 한다.[5] 물론 이러한 미술용 상을 단순히 인테리어로 장식하는 경우도 있다.[5]
흉상은 주로 다음과 같은 목적으로 제작된다.[5]
5. 갤러리
참조
[1]
문서
Stewart
[2]
문서
Stewart
[3]
문서
Belting
[4]
문서
Belting
[5]
웹사이트
Baroque sculpture: Materiality and the question of movement
https://www.taylorfr[...]
2024-11-01
[6]
문서
The Blackamoor
관련 사건 타임라인
( 최근 20개의 뉴스만 표기 됩니다. )
‘육사 홍범도 흉상’ 철거 논란 끝…현재 위치에 둔다
육사, 홍범도 장군 흉상 존치 계획…윤석열 정부 ‘홍범도 지우기’ 실패
[단독] 육군사관학교, 홍범도 장군 흉상 '존치' 최종 결정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