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 다케시
1. 개요
가모 다케시는 일본의 축구 선수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대표팀으로 참가했다. 그는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베를린의 기적'을 이끌었으며, 이탈리아와의 경기에도 출전했다. 1938년 FIFA 월드컵 예선과 1940년 도쿄 올림픽 대표로도 선발되었으나, 월드컵 예선 불참과 올림픽 중지로 인해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04년 심부전으로 사망했으며, 1936년 올림픽 일본 대표팀은 2016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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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출생 -
안수산
안수산은 안창호와 이혜련의 장녀이자 미국 해군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 장교 및 여성 포술 장교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해군에서 복무하고 종전 후 해군 정보국, 미국 의회도서관, 국가안보국 등에서 근무하며 인종 및 성차별을 극복하고 활약한 인물이다. -
1915년 출생 -
장준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 정치인인 장준하는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 후 탈출하여 광복군에서 활동, 해방 후 김구의 비서를 지냈고, 《사상계》를 창간하여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으며 국회의원을 역임했으나 의문사했고 그의 삶과 죽음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부분으로 재평가되고 있다. -
2004년 사망 -
로널드 레이건
미국의 배우 출신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거쳐 제40대 대통령을 지낸 로널드 레이건은 레이거노믹스 정책으로 미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소련과의 긴장 완화로 냉전 종식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재정 적자 증가와 소득 불평등 심화, 이란-콘트라 사건 등 논란도 있었다. -
2004년 사망 -
박명근
박명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공무원, 기업인으로, 서울대 정치학과 졸업 후 한국 전쟁에 참전, 공직 생활과 박정희 대통령 비서관을 거쳐 4선 국회의원 및 대한투자신탁 사장을 역임했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는 송덕비가 건립되었다. -
일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
일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고지마 노부유키
고지마 노부유키는 쇼난 벨마레, 아비스파 후쿠오카 등에서 활약한 일본의 은퇴한 축구 골키퍼 선수로, 쇼난 벨마레 시절 천황배와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동했고 은퇴 후에는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가모 다케시는 1915년 2월 8일 하마마츠에서 태어났다. 시즈오카현 하마마츠 사범학교 부속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으며, 하마마츠 제1 중학교에서는 주장을 맡아 활약했다. 와세다 대학에 진학하여 아식 축구부에 소속되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는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어 등번호 10번을 달고 대회에 출전했다. 특히 이 대회에서 일본팀이 강호 스웨덴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훗날 '[[베를린의 기적]]'으로 불렸으며, 가모는 이 경기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후 1938 FIFA 월드컵 예선과 1940년 도쿄 올림픽의 일본 대표로도 선발되었으나, 대회 불참 및 취소로 인해 실제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1939년 1월 일본군에 소집되었으며, 전후에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등에서 거주했다. 2004년 3월 26일, 가와사키시 미야마에구의 한 병원에서 심부전으로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표팀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그의 동생 가모 쇼고 역시 일본의 올림픽 축구 선수였으며, 2016년에는 가모 다케시를 포함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표팀이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한편, 전후 일본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가모 슈와는 혈연 관계가 없다.
2.1. 클럽 경력
가모 다케시의 학력 및 클럽 경력은 다음과 같다.
| 기간 | 소속 | 비고 |
|---|---|---|
| 초등학교 | 시즈오카현 하마마츠 사범학교 부속 초등학교 | 현 시즈오카 대학 교육학부 부속 하마마츠 초등학교 |
| 중학교 | 시즈오카현립 하마마츠 제일 중학교 | 현 시즈오카현립 하마마츠 키타 고등학교 |
| 고등학교 | 와세다 제일 고등학원 | |
| 1932년 ~ 1937년 | 와세다 대학 축구부 |
2.2. 국가대표 경력
와세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36년, 가모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는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스웨덴과의 1차전과 이탈리아와의 2차전에 출전했다. 특히 강호 스웨덴을 상대로 거둔 역전승은 훗날 '[[베를린의 기적]]'으로 불리며 일본 축구 역사에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되었고, 가모는 이 기적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이후 1938 FIFA 월드컵 예선 및 1940년 도쿄 올림픽의 일본 대표로도 선발되었으나, 다이일본 축구 협회(현 일본 축구 협회)의 월드컵 예선 불참 결정과 도쿄 올림픽 개최 취소로 인해 실제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가모 다케시의 국가대표 통산 기록은 1936년에 출전한 2경기이다. 2016년, 가모를 포함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표팀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의 동생 가모 쇼고 역시 일본의 올림픽 축구 선수였다.
2.2.1.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와세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36년, 가모는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할 일본 대표팀 선수로 선발되어 등번호 10번을 받았다.
가모는 1936년 8월 4일, 스웨덴과의 1회전 경기에 출전하며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이 경기에서 일본은 예상을 뒤엎고 3-2 역전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일본 축구 역사상 올림픽 본선 첫 승리이자 강호 스웨덴을 상대로 거둔 극적인 승리로 평가받는다. 이 경기는 훗날 일본에서 "[[베를린의 기적]]"(ベル린의 기적)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가모는 이 기적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이어서 8월 7일에 열린 2회전에서는 이탈리아와 맞붙었으나, 0-8로 크게 패배했다. 가모는 이 두 경기에 모두 출전했으며, 1936년 A매치 기록은 2경기 출전으로 마감되었다.
2016년, 가모 다케시를 포함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일본 축구 대표팀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올림픽 출전 기록
2.2.2. 1938년 FIFA 월드컵 예선 및 1940년 도쿄 올림픽
가모 다케시는 1938 FIFA 월드컵 예선과 1940년 도쿄 올림픽의 일본 대표로도 선발되었다. 하지만 당시 다이일본 축구 협회(현 일본 축구 협회)는 예선 경기 장소였던 베트남으로의 이동에 어려움을 표하며 월드컵 예선 불참을 결정했다. 또한, 1940년 도쿄 올림픽 역시 개최가 취소되면서 가모 다케시는 두 대회 모두 대표 선수로서 경기에 나설 기회를 얻지 못했다。
3. 통계
(내용 없음)
4. 기타
1939년 1월, 일본군에 소집되었으며, 전후에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등에서 거주했다.
한편, 전후 일본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가모 슈 및 그의 형 가모 유타카, 동생 가모 켄과는 혈연 관계가 없다.
4.2. 사망
2004년 3월 26일, 가와사키의 미야마에 병원에서 심부전으로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1936년 올림픽에 참가했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장례는 도쿄도 시나가와구에서 치러졌다.
4.3.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16년, 가모 다케시가 참가했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일본 대표팀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