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모 다케시
1. 개요
가모 다케시는 일본의 축구 선수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대표팀으로 참가했다. 그는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베를린의 기적'을 이끌었으며, 이탈리아와의 경기에도 출전했다. 1938년 FIFA 월드컵 예선과 1940년 도쿄 올림픽 대표로도 선발되었으나, 월드컵 예선 불참과 올림픽 중지로 인해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04년 심부전으로 사망했으며, 1936년 올림픽 일본 대표팀은 2016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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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세다 대학 동문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와세다 대학 동문 -
김성수 (언론인)
김성수는 인촌이라는 호를 사용한 언론인이자 기업인, 정치인으로, 경성방직 설립, 동아일보 창간, 보성전문학교 인수 및 발전에 기여했으며 제2대 부통령을 역임했으나 친일 논란이 있다. -
일본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야마구치 요시타다
야마구치 요시타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으로 동메달을 획득했으며, 선수 시절 히타치 제작소에서 원 클럽 플레이어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후지에다 MYFC의 명예 감독을 역임하며 2007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일본의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미무라 가쿠이치
미무라 가쿠이치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국가대표팀 선수와 올림픽 대표로 활동했으며, 은퇴 후에는 도호 티타늄 축구부 감독으로서 팀을 승격시키고 일본 축구 협회에서 기술 및 지도 위원으로 활동했다. -
1936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다케우치 데이조
다케우치 데이조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약하며 1930년 극동 선수권 대회 우승과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일본 첫 승리를 이끌었고, 사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으며 그의 업적을 기려 '다케우치 데이조상'이 제정되었다. -
1936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김용식 (축구인)
김용식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대한민국 축구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활동하며 일본 국가대표로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고,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 겸 감독으로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1954년 FIFA 월드컵에서는 감독으로서 대한민국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은퇴 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2. 선수 경력
가모 다케시는 1915년 2월 8일 하마마츠에서 태어났다. 시즈오카현 하마마츠 사범학교 부속 초등학교 4학년 때 축구를 시작했으며, 하마마츠 제1 중학교에서는 주장을 맡아 활약했다. 와세다 대학에 진학하여 아식 축구부에 소속되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는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어 등번호 10번을 달고 대회에 출전했다. 특히 이 대회에서 일본팀이 강호 스웨덴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훗날 '[[베를린의 기적]]'으로 불렸으며, 가모는 이 경기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이후 1938 FIFA 월드컵 예선과 1940년 도쿄 올림픽의 일본 대표로도 선발되었으나, 대회 불참 및 취소로 인해 실제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1939년 1월 일본군에 소집되었으며, 전후에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등에서 거주했다. 2004년 3월 26일, 가와사키시 미야마에구의 한 병원에서 심부전으로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표팀의 마지막 생존자였다.
그의 동생 가모 쇼고 역시 일본의 올림픽 축구 선수였으며, 2016년에는 가모 다케시를 포함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표팀이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한편, 전후 일본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가모 슈와는 혈연 관계가 없다.
2.1. 클럽 경력
가모 다케시의 학력 및 클럽 경력은 다음과 같다.
| 기간 | 소속 | 비고 |
|---|---|---|
| 초등학교 | 시즈오카현 하마마츠 사범학교 부속 초등학교 | 현 시즈오카 대학 교육학부 부속 하마마츠 초등학교 |
| 중학교 | 시즈오카현립 하마마츠 제일 중학교 | 현 시즈오카현립 하마마츠 키타 고등학교 |
| 고등학교 | 와세다 제일 고등학원 | |
| 1932년 ~ 1937년 | 와세다 대학 축구부 |
2.2. 국가대표 경력
와세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36년, 가모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는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그는 이 대회에서 스웨덴과의 1차전과 이탈리아와의 2차전에 출전했다. 특히 강호 스웨덴을 상대로 거둔 역전승은 훗날 '[[베를린의 기적]]'으로 불리며 일본 축구 역사에 중요한 순간으로 기록되었고, 가모는 이 기적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이후 1938 FIFA 월드컵 예선 및 1940년 도쿄 올림픽의 일본 대표로도 선발되었으나, 다이일본 축구 협회(현 일본 축구 협회)의 월드컵 예선 불참 결정과 도쿄 올림픽 개최 취소로 인해 실제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가모 다케시의 국가대표 통산 기록은 1936년에 출전한 2경기이다. 2016년, 가모를 포함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표팀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의 동생 가모 쇼고 역시 일본의 올림픽 축구 선수였다.
2.2.1.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와세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36년, 가모는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할 일본 대표팀 선수로 선발되어 등번호 10번을 받았다.
가모는 1936년 8월 4일, 스웨덴과의 1회전 경기에 출전하며 국제 무대에 데뷔했다. 이 경기에서 일본은 예상을 뒤엎고 3-2 역전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일본 축구 역사상 올림픽 본선 첫 승리이자 강호 스웨덴을 상대로 거둔 극적인 승리로 평가받는다. 이 경기는 훗날 일본에서 "[[베를린의 기적]]"(ベル린의 기적)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가모는 이 기적의 주역 중 한 명이었다.
이어서 8월 7일에 열린 2회전에서는 이탈리아와 맞붙었으나, 0-8로 크게 패배했다. 가모는 이 두 경기에 모두 출전했으며, 1936년 A매치 기록은 2경기 출전으로 마감되었다.
2016년, 가모 다케시를 포함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일본 축구 대표팀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올림픽 출전 기록
2.2.2. 1938년 FIFA 월드컵 예선 및 1940년 도쿄 올림픽
가모 다케시는 1938 FIFA 월드컵 예선과 1940년 도쿄 올림픽의 일본 대표로도 선발되었다. 하지만 당시 다이일본 축구 협회(현 일본 축구 협회)는 예선 경기 장소였던 베트남으로의 이동에 어려움을 표하며 월드컵 예선 불참을 결정했다. 또한, 1940년 도쿄 올림픽 역시 개최가 취소되면서 가모 다케시는 두 대회 모두 대표 선수로서 경기에 나설 기회를 얻지 못했다。
3. 통계
(내용 없음)
4. 기타
1939년 1월, 일본군에 소집되었으며, 전후에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 등에서 거주했다.
한편, 전후 일본 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가모 슈 및 그의 형 가모 유타카, 동생 가모 켄과는 혈연 관계가 없다.
4.2. 사망
2004년 3월 26일, 가와사키의 미야마에 병원에서 심부전으로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1936년 올림픽에 참가했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장례는 도쿄도 시나가와구에서 치러졌다.
4.3.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
2016년, 가모 다케시가 참가했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일본 대표팀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