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우치 데이조
1. 개요
다케우치 데이조는 일본의 축구 선수로, 1930년 제9회 극동 선수권 대회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대표로 출전했다. 그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주장을 맡아 스웨덴을 상대로 승리하며 '베를린의 기적'을 이끌었다. 1944년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종전 후 시베리아에 억류되었고, 1946년 사망했다. 2006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이름 | 다케우치 데이조 |
|---|---|
| 원어 이름 | 竹内 悌三 |
| 로마자 표기 | Takeuchi Teizō |
| 출생일 | 1908년 11월 6일 |
| 출생지 | 도쿄도 |
| 사망일 | 1946년 4월 12일 |
| 사망지 | 아무르주 |
| 신장 | 170cm |
| 체중 | 62kg |
| 포지션 | 수비수 |
| 유소년 클럽 | 우라와 고등학교 |
|---|---|
| 유소년 클럽 연도 | 해당 정보 없음 |
| 유소년 클럽 2 | 도쿄 제국대학 |
| 유소년 클럽 연도 2 | 1928-1932 |
| 클럽 | 도쿄 제국대학 LB |
| 클럽 2 | 도쿄 구락부 |
| 클럽 연도 | 해당 정보 없음 |
| 출장 | 해당 정보 없음 |
| 득점 | 해당 정보 없음 |
| 통산 출장 | 해당 정보 없음 |
| 통산 득점 | 해당 정보 없음 |
| 최종 클럽 성적 갱신일 | 해당 정보 없음 |
| 국가대표팀 | 일본 |
|---|---|
| 국가대표팀 연도 | 1930-1936 |
| 국가대표팀 출장 | 4 |
| 국가대표팀 득점 | 0 |
| 국가대표팀 최종 성적 갱신일 | 해당 정보 없음 |
-
1936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김용식 (축구인)
김용식은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대한민국 축구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활동하며 일본 국가대표로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했고,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 겸 감독으로 런던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1954년 FIFA 월드컵에서는 감독으로서 대한민국의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은퇴 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했다. -
1936년 하계 올림픽 축구 참가 선수 -
스즈키 야스오
스즈키 야스오는 와세다 WMW에서 선수로 활동하며 1934년 극동 선수권 대회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참가했고, 은퇴 후 일본 축구 발전에 기여했으며, 1958년 머데카 대회에서 일본 대표팀 코치 및 단장으로 우승을 이끌었다. -
시베리아 억류자 -
우노 소스케
우노 소스케는 자유민주당 소속의 일본 정치인으로, 외무대신 등 요직을 거쳐 제75대 내각총리대신을 지냈으나 여성 스캔들로 인해 69일 만에 사임하며 최단명 내각 중 하나를 이끌었고, 시베리아 억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저서를 출판하기도 했다. -
시베리아 억류자 -
사토 슌지
-
남자 축구 수비수 -
마루야마 요시아키
마루야마 요시아키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J리그와 태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J리그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했다. -
남자 축구 수비수 -
미겔 앙헬 나달
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2. 선수 경력
도쿄부립 제5중학교(현: 도쿄도립 고이시카와중등교육학교) 재학 중 축구를 시작하여, 우라와고등학교를 거쳐 1928년 도쿄 제국대학에 입학하여 아식축구부에 입부했다. 1930년 제9회 극동 선수권 경기 대회의 축구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필리핀 대표와의 경기에서 일본 대표로 첫 출전했다.
1932년 대학 졸업 후 도쿄 화재 보험 회사에 입사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일본 대표로 선출되어 주장으로서 스웨덴 대표와의 경기 등 2경기에 출전했다.
1944년 제2차 세계 대전에 징집, 종전 후 시베리아 억류되어 1946년 4월 아무르주 제20 수용소에서 사망했다.
2006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특별 선고로 선정되었다.
2015년, 장녀 이시이 미키코에 의해 '다케우치 데이조상'이 창설되었다.
2.1. 클럽 경력
다케우치는 1908년 11월 6일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 제국 대학 선수들과 졸업생들로 구성된 도쿄 제국 대학 LB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도쿄부립 제5중학교(현: 도쿄도립 고이시카와중등교육학교) 재학 중 축구를 시작하여, 우라와고등학교를 거쳐 1928년 도쿄 제국대학에 입학하여 아식축구부에 입부했다. 1932년 대학 졸업 후 도쿄 화재 보험 회사에 입사했다.
선수 경력은 다음과 같다.
| 학교 |
|---|
| 도쿄부립 제5중학교(현: 도쿄도립 고이시카와 중등교육학교) |
| 우라와 고등학교 |
| 도쿄 제국 대학 |
| 직장 |
| 도쿄 화재 해상 보험 |
2.2. 국가대표팀 경력
1930년 5월, 다케우치는 도쿄 제국대학 학생일 때 1930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 일본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었고 일본은 우승을 차지했다. 이 대회에서 그는 5월 25일 필리핀을 상대로 데뷔했다. 1936년에는 1936년 하계 올림픽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어 주장으로 2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1936년까지 일본 대표팀으로 4경기에 출전했다.
2.2.1. 베를린의 기적
1936년 하계 올림픽에 참가한 일본 대표팀에 선발되어 팀 주장으로 2경기에 출전했다. 일본은 스웨덴과의 첫 경기에서 역전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올림픽에서 일본의 첫 승리이자 강호팀을 상대로 거둔 역사적인 승리였다. 이 승리는 후에 일본에서 "베를린의 기적"(베를린의 기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2016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3. 사망
1944년, 다케우치 데이조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군 복무를 했고, 종전 후 소련에 억류되었다(소련의 일본군 포로). 1946년 4월 12일, 시베리아의 제20 포로 수용소에서 3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006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선정되었다.
4. 사후
1944년, 다케우치 데이조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징집되어 참전하였고, 종전 후 소련에 억류되었다 (소련의 일본군 포로). 1946년 4월 12일, 시베리아의 아무르주 제20 수용소에서 3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006년,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특별 선고로 선정되었다.
5. 통산 기록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
| 연도 | 출전 | 골 |
| 1930년 | 2 | 0 |
| 1936년 | 2 | 0 |
| | 4 || 0 |
5.1. 국가대표팀 기록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
| 연도 | 출전 | 골 |
| 1930년 | 2 | 0 |
| 1931년 | 0 | 0 |
| 1932년 | 0 | 0 |
| 1933년 | 0 | 0 |
| 1934년 | 0 | 0 |
| 1935년 | 0 | 0 |
| 1936년 | 2 | 0 |
| | 4 || 0 |
5.2. 출전 대회
다케우치 데이조는 1930년 5월 도쿄 제국대학 재학 중 1930년 극동 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 일본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우승을 차지했다. 5월 25일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다. 1936년에는 1936년 하계 올림픽에 일본 대표팀 주장으로 참가하여 2경기를 뛰었다. 특히 스웨덴과의 첫 경기에서 역전승을 거두었는데, 이는 올림픽에서 일본의 첫 승리이자 강팀을 상대로 거둔 역사적인 승리로 "베를린의 기적"으로 불리게 되었다. 2016년, 이 팀은 일본 축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는 1936년까지 일본 대표팀 소속으로 총 4경기에 출전했다.
그의 주요 출전 대회는 다음과 같다.
* 1930년: 제9회 극동 선수권 대회
* 1936년: 베를린 올림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