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하라 다카시
1. 개요
가사하라 다카시는 1918년 3월 26일에 태어난 일본의 축구 선수이다. 게이오기주쿠 대학에서 선수로 활동하며 1937년 천황배에서 우승했으며, 졸업 후에는 게이오 BRB에서 1939년과 1940년 천황배 우승을 이끌었다. 1940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필리핀과의 경기에 출전했으며, 해당 경기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 일본 대표팀의 마지막 경기이자, 1940년대 일본의 유일한 국제 A매치 경기였다.
| 이름 | 다카시 가사하라 |
|---|---|
| 원어 이름 | 笠原 隆 |
| 로마자 표기 | Kasahara Takashi |
| 출생일 | 1918년 3월 26일 |
| 출생지 | 일본 제국 |
| 사망일 | 알 수 없음 |
| 사망지 | 알 수 없음 |
| 포지션 | 미드필더 |
| 유소년 클럽 | 게이오기주쿠 대학 |
|---|---|
| 클럽 | 게이오 BRB |
| 출전 횟수 | 알 수 없음 |
| 득점 횟수 | 알 수 없음 |
| 통산 출전 횟수 | 알 수 없음 |
| 통산 득점 횟수 | 알 수 없음 |
| 국가대표팀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
|---|---|
| 국가대표팀 출전 연도 | 1940년 |
| 국가대표팀 출전 횟수 | 1회 |
| 국가대표팀 득점 횟수 | 0회 |
| 소속팀 | 게이오기주쿠 대학 |
|---|---|
| 대회 | 덴노배 |
| 우승 연도 | 1937년 |
| 소속팀 | 게이오 BRB |
| 대회 | 덴노배 |
| 우승 연도 | 1939년 |
| 대회 | 덴노배 |
| 우승 연도 | 194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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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출생 -
타우파하우 투포우 4세
타우파하우 투포우 4세는 살로테 투포우 3세의 아들로 태어나 통가의 총리를 지냈고, 1965년부터 2006년까지 통가의 국왕으로 재임하며 1970년 통가의 완전한 독립을 이끌어냈다. -
1918년 출생 -
윤태일 (1918년)
윤태일은 만주군 장교 출신으로 한국 전쟁에 참전한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기업인이며, 박정희 정권에서 서울특별시장과 대한주택공사 총재, 제9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나 만주군 복무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
몰년 미상 -
미와 와사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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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미상 -
이태준
이태준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로, 섬세한 문체와 서정적인 분위기로 현실을 그린 단편소설들을 발표하여 주목받았으며, 특히 1930년대 〈달밤〉, 〈까마귀〉, 〈복덕방〉 등의 작품으로 한국 단편소설의 미학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월북 후 숙청되어 정확한 사망 시기와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교토쿠 고지
교토쿠 고지는 일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다양한 클럽과 국가대표팀을 지휘하며, 2008년 부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남아시아 축구 연맹컵 준결승 진출, 2003년 시미즈 에스펄스 감독으로 J리그컵 준결승과 천황배 준결승 진출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
일본의 남자 축구 선수 -
스가마타 데쓰오
스가마타 데쓰오는 일본의 전 축구 선수로, 수비수로 활약하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23경기에 출전했고,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1980년과 1982년 일본 사커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는 등 다양한 국제 대회에 출전했다.
2. 클럽 경력
가사하라 다카시는 고베 제1중학교 축구부를 거쳐 게이오기주쿠 대학의 게이오기주쿠 체육회 소커부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37년에는 제17회 천황배 전일본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게이오기주쿠 대학의 대회 첫 우승에 기여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게이오기주쿠 대학 선수 및 졸업생들로 구성된 게이오 BRB에서도 활약했다. 그는 이 클럽에서 쓰다 유키오, 니노미야 히로카즈, 시노자키 사부로 등과 함께 1939년과 1940년 천황배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1940년 대회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전 마지막으로 열린 천황배였으며, 이후 천황배는 전쟁의 영향으로 1941년부터 1945년까지 중단되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1940년 6월 16일, 게이오 대학에 재학 중이던 가사하라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필리핀과의 경기에 출전하며 국가대표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는 1936년 하계 올림픽 이후 일본 대표팀이 치른 첫 경기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의 영향으로 1940년대에 일본이 치른 유일한 국제 A매치 경기이기도 했다.
3.2. 출전 대회
* 기원 2600년 봉축 동아 경기 대회 (194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