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초노미야 히로아쓰 친왕
1. 개요
가초노미야 히로아쓰 친왕은 가초노미야 히로츠네 친왕의 장남으로, 후시미노미야 구니이에 친왕의 손자이다. 1876년 부친 사망 후 가초노미야 가문을 상속받았으며, 아리스가와노미야 타루히토 친왕의 청원에 따라 황족 신분을 유지했다. 1883년 메이지 천황의 양자가 되어 친왕 선하를 받았지만, 같은 날 디프테리아로 8세에 사망했다. 후사가 없어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왕이 가문을 상속받았고, 히로야스 왕의 차남 히로타다 왕이 가문을 계승했다. 그는 친왕 선하를 받은 가장 어린 인물이었다.
| 이름 | 가초노미야 히로아쓰 친왕 |
|---|---|
| 원어 이름 | 華頂宮 博厚親王 (가초노미야 히로아쓰 신노) |
| 작위 | 친왕 |
|---|---|
| 지위 | 제2대 가초노미야 당주 |
| 출생일 | 1875년 1월 18일 |
|---|---|
| 출생지 | 일본, 도쿄 |
| 사망일 | 1883년 2월 15일 (향년 8세) |
| 사망지 | 일본 도쿄 |
| 매장지 | 도쿄 분쿄구도요시마가오카 묘지 |
| 아버지 | 가초노미야 히로쓰네 친왕 |
|---|---|
| 어머니 | 난부 이쿠코 (히로쓰네 친왕비 이쿠코) |
| 계통 | 스고 천황 남계 17세손 |
| 계통2 | 레이겐 천황 여계 7세손 |
| 경칭 | 전하 |
|---|---|
| 휘 | 히로아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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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전 일본의 남성 황족 -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사토나리 친왕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사토나리 친왕은 후시미노미야 쿠니이에 친왕의 아들로, 고메이 천황의 황위 계승자로 입적되었으나 승려가 된 후 환속하여 쇼고인노미야를 거쳐 기타시라카와노미야로 개칭되었으며, 17세에 사망했다. -
전전 일본의 남성 황족 -
후시미노미야 구니이에 친왕
후시미노미야 구니이에 친왕은 고카쿠 천황의 유자로서 친왕 선하를 받고 후시미노미야를 상속했으나, 아들에게 가독을 물려주고 은거했다가 환속하여 후시미노미야를 재계승했으며, 국사어용달에 임명된 후 가독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은거한 뒤 사망했다. -
가초노미야 -
가초노미야 히로쓰네 친왕
후시미노미야 구니이에 친왕의 아들로 태어나 승려가 되었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 환속하여 가초노미야를 창설하고 미국 유학 후 해군에 복무했으나 젊은 나이에 병사한 일본의 황족이다. -
가초노미야 -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왕
후시미노미야 히로야스 왕은 일본의 황족이자 해군 군인으로, 후시미노미야 23대 당주, 해군 대장, 해군 군령부 총장을 역임하며 러일 전쟁과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고 함대파 지지, 워싱턴 해군 군축 조약 파기 주장 등 태평양 전쟁 개전 직전까지 일본 해군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다. -
1875년 출생 -
이승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독재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도 받으며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서거하였다. -
1875년 출생 -
길버트 뉴턴 루이스
길버트 뉴턴 루이스는 열역학, 화학 결합, 산-염기 반응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긴 미국의 물리화학자이다.
2. 생애
카쵸노미야 히로츠네 친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76년 아버지 히로츠네 친왕이 사망하자, 1세 3개월의 어린 나이에 카쵸노미야 가문을 계승했다. 본래 신적강하 대상이었으나, 메이지 천황의 뜻에 따라 황족 신분을 유지했다.
1883년 2월 15일, 메이지 천황의 양자가 되어 친왕 선하를 받았으나 같은 날 디프테리아로 인해 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히로아쓰 친왕은 친왕 선하를 받은 가장 어린 인물이었다.
후사가 없었기 때문에 후시미노미야 가문의 히로야스 왕이 가문을 이었으나, 히로야스 왕이 본가인 후시미노미야를 계승하게 되면서 그의 차남 히로타다 왕이 최종적으로 가초노미야를 계승하게 되었다.
2.1. 가문 계승
카쵸노미야 히로츠네 친왕의 장남이자, 후시미노미야 쿠니이에 친왕의 손자이다. 어머니는 난부 도시히사 백작의 장녀인 이쿠코이다.
1876년 (메이지 9년) 5월 24일, 아버지 히로츠네 친왕이 사망하면서 1세 3개월의 나이에 카쵸노미야의 가독(家督)을 계승했다. 메이지 시대 초기에 정해진 황족의 범위 및 사성황족(賜姓皇族) 방침에 따르면, 히로아쓰 친왕은 신적강하(臣籍降下) 대상이었으나, 아리스가와노미야 타루히토 친왕의 청원에 따른 메이지 천황의 의향으로 황족 신분을 유지하며 가문을 상속받을 수 있었다.
1883년 (메이지 16년) 2월 15일, 메이지 천황의 유자(猶子)가 되어 친왕 선하(親王宣下)를 받았으나, 같은 날 디프테리아로 인해 8세의 어린 나이로 사망했다.
히로아쓰 친왕은 어린 나이에 후사(後嗣) 없이 사망했기 때문에, 후시미노미야 가문에서 히로야스 왕이 들어와 가초노미야를 상속했다. 그러나 이후 히로야스 왕은 본가인 후시미노미야를 상속해야 할 구니카 왕이 병약하여 후시미노미야로 복귀하여 가문을 상속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가초노미야는 히로야스 왕의 차남인 히로타다 왕이 계승하게 되었다.
또한, 히로아쓰 친왕은 친왕 선하에 의해 친왕의 지위를 받은 가장 어린 인물이며, 친왕 선하를 받은 인물로서는 마지막에서 두 번째이다.
2.2. 친왕 선하와 사망
1883년 (메이지 16년) 2월 15일, 메이지 천황의 유자(양자)가 되어 친왕 선하를 받았다. 그러나 같은 날 디프테리아에 걸려 8세의 어린 나이로 사망했다. 이로써 히로아쓰 친왕은 친왕 선하를 받은 가장 어린 인물이 되었다 (친왕 선하를 받은 인물 중에서는 마지막에서 두 번째이다).
2.3. 사후
1883년 2월 15일, 메이지 천황의 양자가 되어 친왕 선하를 받은 같은 날, 디프테리아로 인해 8세의 어린 나이로 사망했다.
친왕은 매우 어린 나이로 사망했기 때문에 후사는 없었고, 후시미노미야 가문에서 히로야스 왕이 들어와 카쵸노미야를 상속했다. 그러나 이후 본가인 후시미노미야를 계승하기로 했던 쿠니카 왕이 병약하여, 히로야스 왕은 다시 후시미노미야로 돌아가 가독을 상속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카쵸노미야는 히로야스 왕의 차남 히로타다 왕이 계승하게 되었다.
3. 가계도
* 조부: 후시미노미야 쿠니이에 친왕
* 부친: 카쵸노미야 히로츠네 친왕
* 모친: 이쿠코 (백작 난부 토시히사의 장녀)
* 양부: 메이지 천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