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토 도모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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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토 도모히로는 2008년 6월 8일 일본 도쿄 아키하바라에서 7명을 살해하고 10명에게 부상을 입힌 흉기 난동 사건의 범인이다. 아오모리현 출신으로, 사건 당시 시즈오카현에 거주하며 인력 파견 회사 소속으로 도요타 자동차 계열사에서 근무했다. 체포 후 직장 문제에 대한 불만을 진술했으며, 재판 과정에서 어머니의 엄격한 훈육을 범행 동기로 언급했다. 2011년 사형을 선고받고, 2015년 사형이 확정되어 2022년 7월 26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가토 도모히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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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도모히로 (2008년 6월 8일)
본명가토 도모히로 (일본어: 加藤 智大, 로마자: Katō Tomohiro)
출생1982년 9월 28일
사망2022년 7월 26일 (39세)
사망 장소도쿄 구치소
국적일본
직업임시 직원
공장 노동자
형량사형
범죄 정보
범죄살인
발생 위치도쿄도 지요다구 아키하바라
발생 날짜2008년 6월 8일
무기
희생자 수7명 사망, 10명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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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년기

아오모리현 아오모리시 출신인 가토는 부모와 남동생 1명의 4인 가족으로, 교육열이 매우 높은 부모 밑에서 자랐다. 이웃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부모는 비교적 엄격하여, 가토가 집 밖으로 쫓겨나 있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목격되었다고 한다. 한편 가토 본인은 초등학교 졸업문집에서 자신을 성격이 급한 반면 둔감하다고 표현했다.

한편, 가토의 어머니는 가토가 1997년 고베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인 아즈마 신이치로와 같은 나이임을 의식하고 무척 두려워했다고 한다.

3. 범행 전후

가토는 시즈오카현 스소노시에 거주하며, 인력파견 업체인 닛켄소교 소속으로 도요타 자동차의 계열사인 간토자동차공업에서 근무했다. 사건 며칠 전 계약 기간 만료 통보를 받고 동요했으며, 사건 사흘 전인 6월 5일에는 작업복이 없어졌다고 당황해했다. 체포 후에는 직장 문제가 가장 큰 불만이었다고 진술했다.

범행 이틀 뒤인 6월 10일, 가토의 부모는 아오모리의 본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다., 가토의 아버지는 의연한 표정이었으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기도 했다.,

4. 체포와 재판

현장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된 가토는 "세상이 싫어졌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시즈오카에서 아키하바라까지 왔다"고 진술했으며, 아키하바라를 몇 차례 사전 답사도 했다고 한다. 가토는 비정규직에 대한 불만과 두려움을 무선 인터넷을 통해 표시해 왔으며, 조사 중 '센다이와 쓰치우라의 사건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쓰치우라의 사건'은 2008년 3월에 가나가와 마사히로가 일으킨 도리마 사건을 가리키며, '센다이의 사건'은 2005년 4월 2일에 오토모 세이지가 일으킨 차량 폭주 사건을 가리킨다. 실제로 가나가와는 가토가 자신의 범행을 본따 칼을 흉기로 사용하였음을 기뻐하기도 했다.

2010년 1월 28일, 도쿄 지방법원에서 무라야마 히로아키(村山浩昭일본어) 재판장 주재로 열린 첫 공판에서 가토는 체포 당시의 당당하고 담담히 경찰 조사를 받던 태도에서 반성, 사과하는 모습으로 변화된 태도를 보였다. 3월 9일 열린 네번째 공판에서는 최초로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증인심문이 이루어졌고, 피해자들은 가토에 대한 사형 선고를 강하게 요구했다.

7월 27일 열린 제16차 공판에서 가토는 범행의 동기에 대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내고 싶었다고 술회하며 그 배경에는 굴욕적이기까지 한 어머니의 엄격한 훈육이 있었다고 밝히며 실제의 사례를 소개했다. 공판에 앞서 비공개로 열렸던 가토의 부모에 대한 심문에서 가토의 어머니는 해당 사례들을 인정했고, 아버지는 이에 대해 자신은 자식 교육에 대해 관여할 수가 없었다고 진술했다.

2011년 3월 24일, 도쿄 지방법원은 가토 도모히로에게 사형을 선고했으며 항소했으나 2012년 9월 12일 2심인 도쿄고등법원 재판부 역시 사형을 판결했다. 2012년 9월 25일 가토 도모히로의 변호인은 정신 장애를 이유로 상고했다. 결국 2015년 2월 2일, 사형이 확정되었다.

5. 사형 집행

2022년 7월 26일 오전, 일본 법무성은 가토 도모히로의 사형을 집행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