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치아 관구
1. 개요
갈리치아 관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 독일이 점령한 지역으로, 현재의 서우크라이나 지역에 해당한다. 원래는 폴란드 제2공화국의 르부프 주로,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 이후 나치 독일에 점령되어 폴란드 총독부의 관할 하에 놓였다. 1944년 소련에 의해 다시 점령되었다. 관구는 한스 프랑크의 처남 카를 라쉬와 오토 베히터가 통치했으며, 리비우를 친위대 제14무장척탄병사단 모병 거점으로 활용했다. 또한 르부프와 스타니스와부프에 유대인 게토를 세워 폴란드 홀로코스트의 일환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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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노필주의 역사 -
적러시아
적러시아는 15세기 이후 서유럽 기록에서 처음 등장한 지명으로,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남동부에 걸쳐 있던 역사적 지역을 가리키며, 폴란드 왕국, 리투아니아 대공국 등의 지배를 받았고, 렌디안족, 백크로아티아인, 루신인 등이 거주했으며, 주요 도시로 리비우 등이 있다. -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의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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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총독부 -
총독부 (나치 독일)
총독부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한 후 설치한 행정 구역으로, 폴란드 영토의 일부를 포함하며 인종 차별 정책을 시행하고 유대인 학살을 자행하다가 소련군의 진격으로 붕괴되었다. -
폴란드 총독부 -
한스 프랑크
한스 프랑크는 아돌프 히틀러의 변호사이자 나치당 핵심 인물로서 제2차 세계 대전 중 폴란드 점령지 총독으로 재임하며 홀로코스트를 포함한 전쟁 범죄와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고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나치 독일의 법률가이자 정치인이다.
2. 역사
갈리치아 관구는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대부분 폴란드 제2공화국의 르부프 주(현재의 서우크라이나 지역)에 속했다.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련이 밀려나면서 나치 독일이 이 지역을 장악했고, 폴란드 총독부에 편입되었다. 1944년에는 소련의 공세로 다시 소련 지역으로 넘어갔다.
2.1. 나치 독일의 점령
갈리치아 관구는 원래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대부분 폴란드 제2공화국의 르부프 주(현재의 서우크라이나 지역)에 속해 있었다.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으로 소련이 밀려나면서 나치 독일이 이 지역을 장악하였고, 한스 프랑크 총독이 다스리는 폴란드 총독부 산하로 들어갔다. 1944년에는 소련의 공세로 다시 소련 지역으로 넘어갔다.
이 관구는 1941년 8월 1일부터 1942년 1월 6일까지 한스 프랑크의 처남인 카를 라쉬가 통치했고, 1942년 1월 6일부터 1943년 9월까지는 SS 여단지도자 오토 베히터가 통치했다. 베히터는 관구 수도인 리비우를 친위대 제14무장척탄병사단 모병 거점으로 삼았다. 또한 침공 이후부터 시작된 폴란드의 홀로코스트의 일환으로 르부프와 스타니스와부프에 폴란드 유대인 게토를 세웠다.
2.2. 나치 독일의 통치자
| 순서 | 사진 | 통치자 | 임기 시작 | 임기 종료 | 재임 기간 |
|---|---|---|---|---|---|
| 1 | -- | Karl Lasch독일어 | 1941년 8월 1일 | 1942년 1월 6일 | |
| 2 | -- | 오토 바흐터 | 1942년 1월 22일 | 1944년 8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