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실
1. 개요
강효실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평양 출신의 배우이다. 아버지 강홍식과 어머니 전옥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946년 평양극장에서 연극으로 데뷔했다. 최무룡과 결혼하여 배우 최민수를 낳았으나, 최무룡의 불륜으로 이혼했다. 1960년대에는 극단 '산하'에서 활동했으며, 1970년 백상예술대상 TV 연기상과 동아연극상 여자 연기상을 수상했다. 1996년 사망하여 경기도 천안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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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수상자 -
윤소정 (배우)
윤소정은 1961년 연극으로 데뷔하여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인 대한민국의 배우로, 《왕의 남자》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다수의 연극 및 영화상을 수상했으나 SBS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 출연 중 패혈증으로 별세했다. -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수상자 -
황정순
황정순은 1940년 연극배우로 데뷔하여 1941년 영화계에 데뷔한 대한민국의 배우로, 다양한 영화, 드라마, 광고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한국 영화사에 족적을 남겼고, 청룡영화상, 부일영화상, 대종상영화제 등에서 수상하며 연기력과 공헌을 인정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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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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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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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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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평양 출신으로, 부모는 가수 겸 배우 강홍식과 "눈물의 여왕"으로 불린 배우 전옥이다. 평양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46년 평양극장에서 연극으로 데뷔했으며 극단 '신협'에서 본격적인 무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극예술연구회 활동 중 배우 최무룡을 만나 1954년 결혼했고, 1955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죽음의 상자》에 부부가 함께 출연하며 영화계에도 데뷔했다.
슬하에 배우 최민수를 포함한 1남 4녀를 두었으나, 남편 최무룡과 배우 김지미의 불륜 관계로 인해 1962년 간통 재판 끝에 이혼했다. 이혼 후에도 연기 활동을 이어가 1960년대에는 극단 '산하(山河)'에서 활동했다. 평생 연극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개성적인 배우"로 평가받았다.
1996년 11월 2일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유해는 경기도 천안에 안장되었다.
2.1. 출생과 가족
강효실은 1932년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유명 가수이자 배우였던 강홍식이며, 어머니는 비극적인 여주인공 연기로 "눈물의 여왕"이라 불렸던 배우 전옥이다. 부모가 이혼한 후 북한으로 건너가 배우가 된 여동생이 있었다.
강효실은 평양제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머니 전옥의 연기를 보고 훈련을 받으며 큰 영향을 받았으며, 영화보다는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여 "개성적인 배우"로 평가받았다. 1946년, 17세의 나이로 평양극장에서 연극 데뷔를 했고, 이후 극단 신협에 들어가 본격적인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극예술연구회(공연예술연구협회) 활동 중 배우 최무룡을 만나 21세에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부부는 김기영 감독의 1955년 영화 《죽음의 상자》에 함께 출연하며 영화계에 데뷔했으며, 강효실은 이 영화에서 '전진희'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강효실과 최무룡 사이에는 아들 최민수를 포함하여 1남 4녀를 두었다. 그러나 최무룡이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 김지미와 불륜 관계를 맺었으며, 이로 인해 1962년 간통죄로 고소당하고 결국 이혼했다. 최무룡은 이후 김지미와 재혼했으나 6년 만에 다시 이혼했다.
강효실은 1996년 11월 2일 지병으로 사망했으며, 유해는 경기도 천안시에 안장되었다.
2.2. 연기 활동
어머니이자 "눈물의 여왕"으로 불린 배우 전옥의 연기를 보고 훈련을 받으며 연기자의 길에 들어섰다. 강효실은 영화보다는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동했으며, "개성적인 배우"라는 평가를 받았다. 17세였던 1946년 평양극장에서 공연한 연극으로 데뷔했고, 이후 극단 신협에 들어가 본격적인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공연예술연구회(극예술연구회) 공연에서 만난 최무룡과 결혼했으며, 1955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죽음의 상자》에 남편 최무룡과 함께 출연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이 영화에서는 '전진희'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2.3. 최무룡과의 결혼과 이혼
강효실은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동하며 "개성적인 배우"로 평가받았다. 극단 신협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했으며, 공연예술연구협회(극예술연구회)가 제작한 공연에서 훗날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인기를 얻은 영화 배우가 된 최무룡을 만났다. 강효실은 21세였던 1954년, 어머니 전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무룡과 결혼했다.
결혼 후 부부는 김기영 감독의 1955년 영화 《죽음의 상자》에 함께 출연하며 영화 배우로 데뷔했다. 강효실은 이 영화에서 '전진희'라는 예명을 사용했다. 강효실과 최무룡은 슬하에 아들 하나와 딸 넷을 두었는데, 그중에는 배우 최민수도 있었다.
그러나 최무룡이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 김지미와 불륜 관계를 맺으면서 결혼 생활은 파탄났다. 결국 1962년 간통 혐의 재판 끝에 두 사람은 이혼했다. 최무룡은 이혼 후 곧바로 김지미와 재혼했지만, 이 결혼 역시 6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3. 작품 및 평가
개성적이고 독특한 연기로 무대 배우로서 각광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차범석 작 《열대어(熱帶魚)》, 베른슈타인의 《키부츠의 처녀》(1972)가 있다. 특히 극단 '드라마센터'의 《루브(Luv)》에서 신구·민승원과 출연하여 개성을 발휘한 열연을 보여 주었다.
3.1. 영화
| 연도 | 제목 |
|---|---|
| 1955 | 죽음의 상자 |
| 1959 | 오! 나의 고향 |
| 1959 | 조춘 |
| 1959 | 추억의 목걸이 |
| 1964 | 명동에 밤이 오면 |
| 1974 | 2박 3일 |
| 1977 | 초년 |
| 1977 | 고도를 향하여 |
| 1992 | 결혼 이야기 |
3.2. 수상 경력
* 1970년, 제14회 백상예술대상: TV 연기상 (문기와 수미)
* 1970년, 동아연극상: 여자 연기상
4.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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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효실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유명 가수이자 배우였던 강홍식이며, 어머니는 비극적인 여주인공 연기로 "눈물의 여왕"이라 불렸던 배우 전옥이다. 부모 이혼 후 북한으로 건너가 배우가 된 여동생이 있다.
극단 신협 활동 중 만난 배우 최무룡과 1954년 결혼하였다. 당시 강효실은 21세였으며, 어머니 전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강행했다. 부부는 김기영 감독의 1955년 영화 《죽음의 상자》에 함께 출연하며 영화계에 데뷔했다. 강효실과 최무룡 사이에는 아들 최민수를 포함하여 1남 4녀를 두었다.
그러나 배우 김지미와 최무룡의 불륜 관계로 인해 1962년 간통죄 재판 끝에 이혼하며 결혼 생활은 파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