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1. 개요
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은 경상남도 거창군 농산리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석불이다. 자연석을 다듬어 조성되었으며, 머리 부분은 크고 얼굴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다. 양 어깨를 덮은 옷자락은 U자형 주름을 이루다 허리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는 우전왕(Udyana王)식 옷주름 형태를 보이며, 이는 통일신라 시대 불상의 특징이다. 광배와 받침대를 갖춘 비교적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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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상 -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김대성이 발원하여 조성된 불상으로, 이상적인 비례와 사실적인 옷 주름, 아미타정인 중 상품하생인의 수인, 주형 광배와 연화대좌를 갖추고 있으며, 명문을 통해 8세기 신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
입상 -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높이 13m의 화강암 마애불로서, 부드러운 신체 표현과 힘있는 얼굴 선이 특징이며, 과거 목조 건축물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구멍이 있고, 덕주 공주 창건 설화가 전해지나 조성 시기와 차이가 있으며, 고려 초기 지방 호족 세력의 불교 번성을 보여주는 문화재이다. -
신라의 불상 -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김대성이 발원하여 조성된 불상으로, 이상적인 비례와 사실적인 옷 주름, 아미타정인 중 상품하생인의 수인, 주형 광배와 연화대좌를 갖추고 있으며, 명문을 통해 8세기 신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
신라의 불상 -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은 굴불사에 있는 통일신라 시대의 사방불 형식 석조 조각상으로, 각 면에는 아미타불, 약사여래, 석가모니불, 미륵보살이 조각되어 있으며, 창건 설화와 함께 통일신라 시대 조각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
석불 -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은 김대성이 발원하여 조성된 불상으로, 이상적인 비례와 사실적인 옷 주름, 아미타정인 중 상품하생인의 수인, 주형 광배와 연화대좌를 갖추고 있으며, 명문을 통해 8세기 신라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
석불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2. 보물 지정 사유
이 불상은 부분적인 파손에도 불구하고 야산 구릉에서 원래 위치를 지키고 있는 귀중한 불상이다. 비교적 큰 규모와 정제된 조각 수법을 보여주며, 비슷한 사례가 많지 않아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서 가치가 충분하다.
2.1. 세부 특징
이 석불은 현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불상 양식을 따르고 있다. 입불상으로 자연석을 적당히 다듬어 윗면에 두 발을 새겨 놓은 1매의 대석과, 대석에 꽂아 세울 수 있도록 한 돌에 광배를 함께 조성한 불신 등 두 개의 돌로 구성되었다.
신체에 비하여 다소 머리 부분이 큰데, 얼굴이 부분적으로 손상되었지만 전체적으로 후덕한 느낌을 준다. 양어깨를 덮어 내린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가슴에서 U자형 옷주름을 이루다 잘록한 허리 부분으로부터 Y자형으로 갈라져 양 대퇴부에서 대칭적인 의문(衣紋)을 이루는 이른바 우전왕(優塡王, Udyana王)식 옷주름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와 같은 형태는 통일신라 700년 전후 추정의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사암제불 입상(砂岩製佛立像)을 비롯하여 719년명 감산사상(甘山寺像), 730년~760년경 추정의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 남면 불입상 등 8세기 이후 상들에서 나타나는 양식적 특징으로, 이 불상의 조성 시기를 추정하게 해 준다.
두 발은 불신과 별도로 대석 위에 조각되어 있는데 마멸과 손상이 심하여 왼쪽 발가락 일부만 형태를 유지할 뿐이다. 우측 상단부가 깨어져 나간 광배는 불신과 한 돌로 이루어진 배 모양의 주형거신광(舟形擧身光)으로 어느 정도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으나 화염문 등 구체적인 문양 표현은 알 수 없다.
부분적인 파손이 있으나 이 불상은 야산의 구릉에서 원위치를 지키고 있는 귀중한 불상으로, 규모가 비교적 크고 정제된 조각 수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슷한 예가 많지 않은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다.
3. 현지 안내문
이 불상은 광배와 받침대를 모두 갖춘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석불이다. 바위를 원추형으로 쪼아서 불상과 광배가 하나의 돌에 조각되었다. 머리 부분의 상투 모양은 높고 뚜렷하게 표현되었고, 알맞은 이목구비를 갖춘 둥근 얼굴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다. 당당한 가슴과 함께 부드러운 경사를 이룬 유연한 어깨, 잘록한 허리와 날씬한 다리, 얇은 옷자락 속에 드러난 사실적인 몸매는 불상의 뛰어난 입체감을 더해준다. 양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가슴 위로 몇 갈래의 U자형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오다가 허리 부분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고, 두 다리에 살짝 밀착되어 작은 U자를 그렸다가, 종아리 부분에서 큰 V자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옷자락 표현법은 인도의 우드야나(Udyana)왕 여래상 형식이라 불린다. 이는 석가모니가 성불한 후 도리천에서 어머니에게 설법할 때, 밧사(Batsa)국의 우드야나왕이 부처의 빈자리를 달래기 위해 150cm 크기의 여래상을 만들어 공양한 것에서 유래한다. 이 때 만들어진 불상이 최초의 부처상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여래상의 옷자락 조각 형식이 이 석조여래상과 같은 형태였다. 이러한 옷자락 표현은 한국에서는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에서 나타난다. 몸 전체를 감싼 광배에는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받침대는 심하게 마멸되었으나, 모두 통일신라 시대의 조각 솜씨를 잘 보여주고 있다.
3.1. 불상의 특징 (현지 안내문)
이 불상은 광배와 받침대를 모두 갖춘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석불이다. 바위를 원추형으로 쪼아서 불상과 광배가 하나의 돌에 조각되었다. 머리 부분의 상투 모양은 높고 뚜렷하게 표현하였다. 알맞은 이목구비를 갖춘 둥근 얼굴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다. 당당한 가슴과 함께 부드러운 경사를 이룬 유연한 어깨, 잘록한 허리와 날씬한 다리, 얇은 옷자락 속에 드러난 사실적인 몸매는 불상의 뛰어난 입체감을 더해준다. 양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가슴 위로 몇 갈래의 U자형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오다가 허리 부분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고, 두 다리에 살짝 밀착되어 작은 U자를 그렸다가, 종아리 부분에서 큰 V자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옷자락의 표현법을 인도의 우드야나(Udyana)왕 여래상 형식이라 부른다. 석가모니가 성불한 후 도리천에 올라가 그곳에서 다시 태어나 어머니에게 설법하였는데, 그 때 밧사(Batsa)국의 우드야나왕이 부처가 잠시라도 지상에 없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150cm 크기의 여래상을 만들어 공양하였다고 한다. 이 때의 불상이 최초의 부처상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그 여래상의 옷자락 조각 형식이 이 석조여래상과 같은 형태였다. 이같은 옷자락 표현은 한국에서는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에서 나타나고 있다. 몸 전체를 감싼 광배에는 불꽃무늬를 새겼고,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받침대는 심하게 마멸되었으나, 모두 통일신라 시대의 조각 솜씨를 잘 보여주고 있다.
3.2. 통일신라 시대의 조각 솜씨
이 불상은 광배와 받침대를 모두 갖춘 비교적 완전한 형태의 석불이다. 바위를 원추형으로 쪼아서 불상과 광배가 하나의 돌에 조각되었다. 머리 부분의 상투 모양은 높고 뚜렷하게 표현하였다. 알맞은 이목구비를 갖춘 둥근 얼굴은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다. 당당한 가슴과 함께 부드러운 경사를 이룬 유연한 어깨, 잘록한 허리와 날씬한 다리, 얇은 옷자락 속에 드러난 사실적인 몸매는 불상의 뛰어난 입체감을 더해준다. 양쪽 어깨에 걸친 옷자락은 가슴 위로 몇 갈래의 U자형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오다가 허리 부분에서 Y자형으로 갈라지고, 두 다리에 살짝 밀착되어 작은 U자를 그렸다가, 종아리 부분에서 큰 V자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옷자락의 표현법을 인도의 우드야나(Udyana)왕 여래상 형식이라 부른다. 석가모니가 성불한 후 도리천에 올라가 그곳에서 다시 태어나 어머니에게 설법하였는데, 그때 밧사(Batsa)국의 우드야나왕이 부처가 잠시라도 지상에 없는 허전함을 달래기 위해 150cm 크기의 여래상을 만들어 공양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불상이 최초의 부처상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그 여래상의 옷자락 조각 형식이 이 석조여래상과 같은 형태였다고 한다. 이 같은 옷자락의 표현은 한국에서는 통일신라 시대의 불상에서 나타나고 있다. 몸 전체를 감싼 광배에는 불꽃무늬를 새겼고, 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받침대는 심하게 마멸되었으나, 모두 통일신라 시대의 조각 솜씨를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