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1. 개요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은 충청북도 제천시 덕주사에 있는 고려 시대 초기에 조성된 마애불이다. 높이 13m의 거대한 화강암 절벽에 조각되었으며, 신라 경순왕의 딸 덕주 공주가 신라 멸망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통통한 얼굴에 눈, 코, 입, 턱 등을 과장되게 표현하고 얼굴 아랫부분은 선으로 간략하게 새기는 등 고려 초기 불상 조각 양식의 특징을 보여준다. 머리에는 육계가 솟아 있으며, 머리 양옆의 구멍은 원래 나무 구조물이 있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 이름 |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
|---|---|
| 로마자 표기 | Jecheon Deokjusa Mae Yeoraeipsang |
| 영어 이름 | Rock-carved Standing Buddha of Deokjusa Temple, Jecheon |
| 유형 | 보물 |
| 지정 번호 | 406 |
| 지정일 | 1964년 9월 3일 |
| 소재지 |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1번지 덕주사 |
| 시대 | 고려시대 |
| 소유자 | 덕주사 |
| 수량 | 1좌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문화재청 ID | 12,04060000,33 |
|---|
-
제천시의 문화유산 -
배론성지
배론성지는 신유박해 이후 천주교 신자들이 찾던 성지로, 황사영 백서 집필 토굴, 한국 최초 신학교, 최양업 신부 묘 등을 통해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와 신앙의 자유, 한국 천주교 성립과 발전의 역사적 의미를 보여준다. -
제천시의 문화유산 -
의림지
충청북도 제천시에 위치한 의림지는 삼한시대 3대 수리시설 중 하나로, 현재까지 관개 기능을 유지하며 아름다운 제림과 주변 경관으로 뛰어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명승지이다. -
충청북도의 보물 -
두시언해
두시언해는 두보의 시를 번역한 것으로, 조선 성종 때 초간본이 간행되었으며, 한국어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총 52부로 구성되어 있다. -
충청북도의 보물 -
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
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은 삼국시대 청주에 만들어진 불상들로, 석조여래삼존상은 6세기 중반 양식을 반영하며 고대 삼국 경계 지역에서 발견되어 역사적,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다. -
고려의 불상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
고려의 불상 -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국보)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국보)은 고려 시대에 제작되어 한일협정으로 반환된 흰 대리석 보살상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되며, 한송사 폐사지 조사에서 화강암 대좌가 발견되었다.
2. 역사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은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월악산 덕주사 동쪽 암벽에 새겨져 있으며, 신라 경순왕의 둘째 딸 덕주공주(또는 덕지 왕자)가 신라 멸망의 슬픔을 달래고자 이 불상을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 초에는 지방 세력이 강성하여 거대한 불상을 많이 만들었는데, 이 불상 역시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유행하던 불상 조성 양식은 얼굴을 과장되게 표현하고 신체를 간략하게 묘사하는 방식인데, 이 불상에서도 그러한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2.1. 건립 배경
신라 경순왕의 둘째 딸 덕주공주(또는 덕지 왕자)가 세운 절이라고 전해지는 월악산 덕주사의 동쪽 암벽에 새겨져 있다. 덕주공주가 신라 멸망의 슬픔을 불심으로 달래고자 이 불상을 조성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2. 고려 초기의 불상 조성 양식
고려 초기에 지방 세력이 강성하여 거대한 불상을 많이 만들었다.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역시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얼굴을 과장되게 표현하고 신체를 간략하게 묘사하는 방식은 당시 유행하던 불상 조성 양식의 특징이다. 살찐 얼굴과 하체로 내려갈수록 간략해진 조형 수법, 입체감이 거의 없는 평면적인 신체 등이 이러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3. 특징
경순왕의 둘째 아들 덕지 왕자(또는 덕주 공주)가 세운 절이라고 전해지는 월악산 덕주사의 동쪽 암벽에 새겨진 불상이다. 거대한 화강암벽 남쪽면에 조각되었으며, 전체 높이는 13m이다. 얼굴 부분은 도드라지게 표현되었고 신체는 선으로만 새겨졌다. 불상 머리 부분 양쪽 옆 바위에는 네모 모양의 구멍들이 남아 있는데, 원래는 나무로 만들어진 구조물(아마도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3.1. 전체적인 모습
경순왕의 둘째 아들 덕지 왕자(또는 덕주 공주)가 세운 절이라고 전해지는 월악산 덕주사의 동쪽 암벽에 새겨진 불상이다. 거대한 화강암벽의 남쪽면에 조각한 불상은 전체 높이가 13m나 되는데, 얼굴 부분은 도드라지게 튀어나오게 조각하였고 신체는 선으로만 새겼다.
민머리 위에는 반원형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솟아 있으며, 살찐 얼굴에는 눈·코·턱 등이 강조되어 있다. 이와 같이 얼굴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은 고려시대의 거대한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이다. 목에 있어야 할 3줄의 삼도(三道)는 가슴 위에 선으로 조각하였다. 선으로 조각한 살찐 신체는 인체의 조형적 특징이 무시되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축 늘어져 힘이 없으며 선으로 된 옷주름 역시 생동감이 떨어진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었고, 왼손은 손등을 보이고 있다. 좌우로 벌린 발은 지나치게 크고 발가락도 굵고 길게 표현되었으며 양 발 아래에는 연꽃잎을 새겨 대좌(臺座)로 삼았다.
3.2. 얼굴 표현
민머리 위에는 반원형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솟아 있으며, 살찐 얼굴에는 눈·코·턱 등이 강조되어 있다. 이와 같이 얼굴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은 고려시대의 거대한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이다.
3.3. 신체 표현
민머리 위에는 반원형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솟아 있으며, 살찐 얼굴에는 눈·코·턱 등이 강조되어 있다. 이와 같이 얼굴을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은 고려시대의 거대한 불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이다. 목에 있어야 할 3줄의 삼도(三道)는 가슴 위에 선으로 조각하였다. 선으로 조각한 살찐 신체는 인체의 조형적 특징이 무시되었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입은 옷은 축 늘어져 힘이 없으며 선으로 된 옷주름 역시 생동감이 떨어진다.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었고, 왼손은 손등을 보이고 있다. 좌우로 벌린 발은 지나치게 크고 발가락도 굵고 길게 표현되었으며 양 발 아래에는 연꽃잎을 새겨 대좌(臺座)로 삼았다.
3.4. 손과 발
오른손은 가슴까지 들어 엄지와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었고, 왼손은 손등을 보이고 있다. 좌우로 벌린 발은 지나치게 크고 발가락도 굵고 길게 표현되었으며, 양 발 아래에는 연꽃잎을 새겨 대좌(臺座)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