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기 플료로프
1. 개요
게오르기 플료로프는 러시아의 핵물리학자로, 1913년 로스토프나도누에서 태어나 1990년 사망했다. 그는 1940년 콘스탄틴 페트르자크와 함께 자발 핵분열을 발견했으며, 1942년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핵분열 연구의 중요성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 소련의 핵무기 개발에 기여했다. 1957년에는 플료로프 핵반응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두 개의 전이 금속 원소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플료로프는 사회주의 노동 영웅 칭호를 받았으며, 레닌상, 스탈린상 등을 수상했고, 그의 업적을 기려 원자번호 114번 원소는 플레로븀으로 명명되었다.
| 기본 정보 | {"alt":"러시아에서 2013년에 발행한 플료로프 기념 우표","caption":"플료로프 기념 우표","image_file":"RUSMARKA-1660.jp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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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게오르기 플료로프 |
|---|---|
| 원어 이름 | 'Георгий Флёров' |
| 로마자 표기 | Georgy Nikolayevich Flyorov |
| 출생일 | 1913년 3월 2일 |
| 출생지 | 로스토프나도누, 러시아 제국 |
| 사망일 | 1990년 11월 19일 |
| 사망지 | 모스크바, 소비에트 연방 |
| 안장 장소 | 노보데비치 묘지, 모스크바 |
| 국적 | 소비에트 연방 |
| 민족 | 러시아인 |
| 분야 | 물리학 |
|---|---|
| 직장 | JINR LFTI 소련 과학 아카데미 |
| 출신 학교 | 레닌그라드 폴리테크닉 대학교 |
| 제자 | 유리 오가네시안 |
| 주요 업적 | 자발 핵분열 발견 소련 핵무기 개발 계획 참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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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 | 사회주의 노동 영웅 (194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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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상 수상자 -
라술 감자토프
다게스탄 공화국 출신 아바르인 시인 라술 감자토프는 캅카스 산맥의 자연과 풍속, 사랑, 우정을 소재로 시를 썼으며, 소련과 러시아에서 여러 훈장을 받으며 문학적 업적과 사회적 공로를 인정받았다. -
스탈린상 수상자 -
스뱌토슬라프 크누셰비츠키
스뱌토슬라프 크누셰비츠키는 러시아의 첼리스트이자 교육자이며, 오이스트라흐 트리오를 결성하여 활동했고,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하다가 알코올 중독으로 사망했다. -
소련의 물리학자 -
올레크 로세프
올레크 로세프는 1903년 러시아에서 태어나 1942년 사망한 과학자이며, 접촉식 수정 검출기 연구와 탄화 규소 다이오드에서 빛 방출 현상을 발견하여 LED 연구에 기여했으며, 음저항 다이오드를 활용한 고체 전자 공학 분야에서도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
소련의 물리학자 -
안드레이 사하로프
안드레이 사하로프는 소련의 물리학자이자 인권 운동가로서 수소폭탄 개발에 기여했으나 핵실험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인권 문제를 비판하며 반체제 활동을 펼쳤으며, 핵무기 감축과 민주주의 확산을 주장하고 인권 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 페레스트로이카 시대에는 소련 민주화에 기여했다. -
1급 조국전쟁 훈장 수훈자 -
바실리 자이체프
바실리 자이체프는 제2차 세계 대전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활약하며 225명 이상의 독일군을 사살하고 독자적인 저격 전술을 개발한 소련군 저격수로, 소련 영웅 칭호를 받았고 그의 활약상은 선전에 활용되었으며 일부 기록에 대한 논쟁이 존재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여러 대중문화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
1급 조국전쟁 훈장 수훈자 -
에리히 밀케
에리히 밀케는 독일 공산당 당원, NKVD 활동, 스페인 내전 참전을 거쳐 1957년부터 1989년까지 동독 국가보안부 수장으로 재임하며 동독 사회를 감시하다가,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살인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2000년 사망한 슈타지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2. 생애
게오르기 플료로프는 1913년 러시아 제국 로스토프나도누에서 태어나 과학자의 길을 걸었다. 초기에는 자동차 정비공, 전기 기술자로 일하며 기술적인 경험을 쌓았고, 이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 공과대학과 아브람 요페 그룹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며 학문적 기반을 다졌다. 이고르 쿠르차토프와 함께 핵분열 연구를 진행, 자발 핵분열을 발견하는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핵무기 개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편지를 보내 소련 원자 폭탄 계획에 참여했다. 1957년에는 플료로프 핵반응 연구소를 설립하여 핵 연구를 이끌었으며, 시보기움과 보륨 발견을 주장하기도 했다. 1990년 11월 19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게오르기 플료로프는 1913년 3월 2일 러시아 제국 로스토프나도누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러시아 정교회 사제였고, 어머니는 유대인이었다. 1929년 학업을 마친 후, 자동차 정비공 및 전기 기술자로 훈련받아 키로프 공장에서 기술자로 일했다. 1933~1934년 레닌그라드 공과대학(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 공과대학)에서 수학했고, 1939년 아브람 요페 그룹에서 물리학 전문 학위를 받았다. 요페 연구소(당시 LFTI)에 취업하여 이고르 쿠르차토프 밑에서 일했다. 1939년 미하일 루시노프와 함께 핵분열 응용 분야에서 일했고, 1940년 콘스탄틴 페트르자크와 함께 자발 핵분열을 발견했다.
2.2. 핵물리학 연구 및 업적
플료로프는 아브람 요페 연구소(당시 LFTI로 알려짐)에서 이고르 쿠르차토프 밑에서 일했다. 1939년 미하일 루시노프와 함께 핵분열 응용 분야에서 일했으며, 1940년 콘스탄틴 페트르자크와 함께 자발 핵분열을 발견했다.
1942년 4월 소련 공군 중위였던 플료로프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편지를 써서 미국, 영국, 독일에서 핵분열 분야의 연구가 중단된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플료로프는 "지체 없이 우라늄 폭탄을 제조하라"고 촉구했고, 이는 결국 소련 원자 폭탄 계획의 개발로 이어졌다.
1970년대에 그는 시보기움과 보륨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1957년 두브나에 있는 러시아연방핵연구소의 주요 연구소 중 하나인 플료로프 핵반응 연구소(FLNR)를 설립하고 1989년까지 소장으로 재직했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소련 과학 아카데미의 과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3. 수상 경력 및 영예
게오르기 플료로프는 사회주의 노동 영웅(1949), 레닌 훈장 2회(1949, 1983), 10월 혁명 훈장(1973), 노동 적기 훈장 3회(1959, 1963, 1975), 애국 전쟁 훈장 1등급(1985), 레닌상(1967), 스탈린상/소련 국가상 2회(1946, 1949), 마리안 스몰루호프스키 메달(1974), 소련 국가상(1975) 등을 수상했다.
3.1. 훈장 및 상
4. 플료로프의 유산과 현대적 평가
플료로프는 핵분열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특히 1940년 콘스탄틴 페트르자크와 함께 자발 핵분열을 발견한 것은 핵물리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1942년 4월, 그는 소련 공군 중위로서 스탈린에게 편지를 써서 미국, 영국, 독일에서 핵분열 연구가 중단된 것을 지적하며, "지체 없이 우라늄 폭탄을 제조하라"고 촉구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은 결국 소련 원자 폭탄 계획의 개발로 이어졌다.
1957년, 플료로프는 두브나에 있는 러시아연방핵연구소의 주요 연구소 중 하나인 플료로프 핵반응 연구소(FLNR)를 설립하고 1989년까지 소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또한 소련 과학 아카데미의 과학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1970년대에 그는 두 개의 전이 금속 원소인 시보기움(seaborgium)과 보륨(bohrium)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2012년, 114번 원소는 116번 원소 리버모륨(Livermorium)과 함께 그의 이름을 따 플레로븀(Flerovium)으로 명명되었다. 이는 그의 과학적 업적과 핵물리학 분야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은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