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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선생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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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도선생안은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까지 경상도 지역의 행정 수장 역할을 수행한 인물들의 명단을 기록한 문서이다. 고려 시대에는 관찰사, 조선 시대에는 관찰사, 일제강점기에는 도지사,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도지사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각 시대별 주요 인물들의 이름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경상도 관찰사가 지방 행정, 사법, 군사권을 모두 행사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 고려 시대

고려 시대의 관찰사 명단은 다음과 같다.


  • '''문종'''

이제원(李齊元), 미상(口口口), 노사상(盧師像), 김수(金壽), 김의중(金義仲), 백거정(白居靖), 임연소(任延邵), 왕승명(王承命), 강백지(康白之), 김충눌(金忠訥)

  • '''순종'''

양영충(梁榮沖), 조난충(趙蘭沖)

  • '''선종'''

박수향(朴收向), 최인(崔인), 이순원(李順元), 남궁란(南宮蘭), 김우정(金禹廷), 홍석민(洪錫民), 최유근(崔推讓), 유장(柳장), 송덕선(宋德先), 김정운(金鼎雲), 최양훈(崔楊訓), 문경신(文景臣), 최공익(崔公翊), 이계응(李繼應), 송공보(宋公甫), 권양(權暢), 유장(柳장), 최방준(崔方俊), 윤계형(尹繼衡), 미상(口口口), 박상부(朴尙夫)

  • '''헌종'''

최수신(崔守臣), 석숭현(石崇現), 이계응(李繼應)

  • '''숙종'''

송덕선(宋德先), 최공익(崔公翊), 양유간(楊儒間), 고영신(高令臣), 이견수(李堅守), 문관(文冠), 양호(楊顥), 이재(李載), 허경(許景), 안자공(安子公), 이선영(李善英), 박현원(朴現元), 김자정(金子廷), 한상(韓相), 미상(口口口), 최복유(崔福儒), 박상부(朴尙夫), 이기(李琦), 한준(韓俊), 최복유(崔福儒)

  • '''예종'''

윤우상(尹禹相), 서우(徐祐), 지록연(智祿延), 윤해(尹諧), 이진경(李晉卿), 고진명(高晉明), 박신현(朴申現), 이총린(李寵隣), 이유인(李惟인), 허지기(許之奇), 최유(崔儒), 윤해(尹諸), 한중(韓仲), 최자성(崔資成), 이유인(李惟인), 최유(崔儒), 민세린(閔世隣), 이진경(李晉卿), 유양현(劉楊現), 양영(梁永), 김보신(金輔臣), 송담(宋琰), 정응문(鄭應文), 김보신(金輔臣), 백이종(白易宗), 이상(李像), 양영(梁永), 진숙(陳叔), 백이종(白易宗), 최홍략(崔弘略), 이장양(李장陽), 정준후(鄭俊候), 안직숭(安稷崇)

  • '''인종'''

임존(林存), 박경린(朴景麟), 이이(李이), 양제보(梁齊寶), 서남영(徐南永), 최홍략(崔弘略), 노원숭(盧元崇), 강영준(康英俊), 황보양(皇南讓), 정점(鄭漸), 임원순(任元順), 이중(李仲), 안식(安軾), 최홍원(崔弘元), 윤언이(尹彦頤), 김택(金擇), 이지저(李之氐), 하기(河器), 황보허(皇甫許), 정준의(鄭俊宜), 정지상(鄭知常), 황보양(皇甫讓), 최윤숙(崔允叔), 이인실(李仁實), 문공윤(文公允), 안식(安載), 김영석(金永錫), 왕정섭(王廷燮), 원준(元俊), 이원미(李元美), 이인실(李仁實), 김함(金成), 김정(金靖), 윤의(尹誼), 유봉(劉逢), 김함(金咸), 최술중(崔述中), 이중제(李仲齊), 최자영(崔子英), 곽동순(郭東珣), 이양승(李陽升), 최칭(崔稱), 김구부(金龜夫), 고영부(高瑩夫), 최사영(崔思永), 안정수(安正脩), 조진약(曺晉若), 임중(林 仲)

  • '''의종'''

임경(林敬), 김유(金諭), 이원장(李元長), 조가인(趙可仁), 최사영(崔思永), 신숙(申叔), 이광승(李光升), 신숙(申叔), 고영부(高瑩夫), 민각(閔角), 허순(許純), 김양(金陽), 최수전(崔守全), 윤인첨(尹鱗瞻), 김인유(金仁兪), 서공(徐公), 이지심(李知深), 최루백(崔婁伯), 이양신(李陽伸), 김황문(金黃文), 김사효(金思孝), 최루백(崔婁伯), 서공(徐恭), 오중정(吳中正), 김존부(金存夫), 김광중(金光中), 박육화(朴育和), 오중정(吳中正), 박회준(朴懷俊), 김우명(金遇明), 윤인첨(尹鱗瞻), 이문저(李文著), 이돈(李敦), 김존부(金存夫), 정인수(鄭仁壽), 고진준(高陳俊), 허세수(許勢脩), 한 경(韓 經), 한뢰필(韓賴弼), 미상(口口口), 조화(趙華), 김광서(金光敍), 장사우(張思祐), 박상요(朴상堯), 김필단(金必端), 소양우(蘇良遇), 이문저(李文著), 이자선(李子先), 양문영(梁文瑩)

  • '''명종'''

서취(敍諏), 박진(朴晉), 이유(李유), 이경백(李景伯), 김의린(金義鱗), 김신려(金臣礪), 최광세(崔光世), 김주(金柱), 전신영(田臣永), 현이후(玄利候), 이장(李璋), 손응시(孫應時), 이익(李 益), 임정식(林正植), 송정후(宋正厚), 오세공(吳世功), 이준선(李俊善), 소광빈(邵光賓), 우영필(于英弼), 조인경(趙인卿), 진사룡(陳士龍), 이성(李成), 황보탁(皇甫卓), 이장(李章), 최신경(崔信卿), 최문청(崔文淸), 이세강(李世康), 윤광보(尹光甫), 최기후(崔碁厚), 유택승(柳擇升), 최효저(崔孝著), 최적완(崔迪完), 채보문(蔡甫文), 오돈신(吳敦信), 이계장(李桂長), 최충헌(崔忠獻), 박중(朴仲), 최돈례(崔敦禮), 소양미(蘇良美), 이거정(李居正), 이중리(李仲利), 김평(金平), 주유저(周惟底), 현덕수(玄德秀), 정득광(鄭得光), 유원의(庾元義), 김적후(金迪候), 송위(宋偉), 김광제(金光齊), 송홍적(宋弘迪), 서영수(徐英守), 최광재(崔光宰), 이극보(李克甫), 반취정(播就正), 김유(金儒), 김봉모(金鳳毛), 최광저(崔光著)

  • '''신종'''

최효사(崔孝思), 김진(金晉), 장윤문(張允文), 교이필(俠利弼), 이유(李 侑), 손공례(孫公禮), 전을균(田乙均), 강순의(康純義), 최보순(崔輔淳), 정양신(鄭良臣), 지자심(池資深), 노식(盧軾), 백여주(白汝舟)

  • '''희종'''

박인석(朴仁碩), 김광려(金光麗), 조진공(趙晉公), 공영필(孔永弼), 채정(蔡靖), 박돈미(朴敦美), 이일(李佾), 이적(李積), 이의(李儀), 전천존(全千存), 백수정(白守貞), 현군제(玄君悌), 이연수(李延壽), 김중귀(金仲龜), 안현(安現), 임광주(林光柱), 송안국(宋安國)

  • '''강종'''

송안국(宋安國), 정공수(丁公壽), 이대명(李大明)

  • '''고종'''

이양승(李陽升), 김공량(金公亮), 안석정(安石貞), 김주정(金周鼎), 황용필(黃龍弼), 김온주(金온珠), 김숙룡(金叔龍), 김숙룡(金叔龍), 김군수(金君綏), 이적(李勣), 최종번(崔宗蕃), 김극수(金克脩), 이공로(李公老), 유승단(兪升旦), 이(李口口), 이정(李정), 잡보구(雜甫龜), 유탄현(庾誕玄), 이(李口口), 송순(宋恂), 김광서(金光서), 권응경(權應經), 최숭조(崔崇操), 심문준(沈文濬), 선대유(鮮大有), 백돈구(白敦구), 이희예(李希乂), 최임수(崔林壽), 한영인(韓令仁), 조(趙口口), 전(田口口), 이방무(李方茂), 강보(康保), 이세화(李世華), 김취성(金就成), 민인균(閔仁均), 윤복규(尹復珪), 손습경(孫襲聊), 안영연(安永延), 홍균(洪鈞), 유석(庾碩), 김효인(金孝印), 설모(薛模), 신선(申宣), 최춘명(崔椿命), 노(盧口口), 왕해(王諧), 박(朴口口), 박(朴口口), 박(朴口口), 박(朴口口), 박(朴口口), 박(朴口口), 박경필(朴景弼), 최(崔口口), 이양준(李陽俊), 이계효(李繼孝), 이요첨(李堯瞻), 김지대(金之岱), 김광재(金光宰), 권위(權위), 이응(李凝), 이희(李禧), 최윤개(崔允愷), 손회(孫회), 전(田口口), 한굉(韓굉), 임인(任絪), 박수(朴隨), 홍희(洪熙), 김지석(金祗錫), 송언상(宋彦庠), 이(李口口), 이(李口口), 김(金口口), 김(金口口), 박견(朴堅)

  • '''원종'''

왕(王口口), 홍정(洪정), 김지석(金祗錫), 한천안(韓千顔), 장(張口口), 장(張口口), 이(李口口), 이(李口口), 민광(閔광), 곽(郭口口), 주열(朱悅), 홍자번(洪子潘), 김(金口口), 박항(朴恒), 최소(崔沼), 김지경(金之卿), 최유(崔儒), 이숙정(李叔貞), 김지경(金之卿), 최유후(崔有候), 노(盧口口), 최유부(崔有浮), 여(呂口口), 엄(嚴口口), 박감(朴珹), 금훈(琴熏)

  • '''충렬왕'''

반부(潘阜), 김(金口口),2. 1. 고려 시대 관찰사 제도의 변천 고려 시대에는 지방 행정 조직이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문종 대에 처음으로 관찰사 제도가 도입된 이후, 여러 왕조를 거치며 그 명칭과 기능이 조금씩 달라졌다.

문종 대에는 이제원(李齊元) 등이 관찰사로 임명되었다. 순종 대에는 양영충(梁榮沖)과 조난충(趙蘭沖)이, 선종 대에는 박수향(朴收向), 최인(崔인) 등이 임명되었다. 헌종 대에는 최수신(崔守臣) 등이, 숙종 대에는 송덕선(宋德先) 등이 관찰사 직을 수행했다.

예종 대에는 윤우상(尹禹相) 등이, 인종 대에는 임존(林存) 등이, 의종 대에는 임경(林敬) 등이 관찰사로 활동했다. 명종 대에는 서취(敍諏) 등과 더불어 최충헌(崔忠獻)이, 신종 대에는 최효사(崔孝思) 등이 관찰사로 임명되었다.

희종 대에는 박인석(朴仁碩) 등이, 강종 대에는 송안국(宋安國) 등이, 고종 대에는 이양승(李陽升) 등과 김주정(金周鼎)이 임명되었다. 원종 대에는 왕(王口口) 등이, 충렬왕 대에는 반부(潘阜) 등이 관찰사 직을 맡았다.

충선왕 대에는 육희쇄(陸希쇄) 등이, 충숙왕 대에는 박리(朴理) 등이 관찰사로 임명되었다. 충혜왕 대에는 김주휘(金朱暉)가 임명되었고, 충숙왕 복위 후에는 박송생(朴松生) 등이 활동했다. 충혜왕 복위 후에는 박충좌(朴忠佐) 등이, 충목왕 대에는 박윤문(朴允文) 등이, 충정왕 대에는 이몽정(李蒙正) 등이 관찰사로 임명되었다.

공민왕 대에는 김한룡(金漢龍) 등과 더불어 정몽주(鄭夢周)가, 우왕 대에는 윤방언(尹邦彦) 등이, 공양왕 대에는 장하(張夏) 등이 관찰사로 활동하며 고려 지방 행정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 2. 역대 고려 관찰사 명단

문종 대에는 이제원(李齊元) 등 10명의 관찰사가 확인된다. 순종 대에는 양영충(梁榮沖)과 조난충(趙蘭沖)이 관찰사를 역임했다. 선종 대에는 박수향(朴收向)을 비롯한 21명의 관찰사가 기록되어 있다. 헌종 대에는 최수신(崔守臣) 등 3명이 관찰사로 재임했다.

숙종 대에는 송덕선(宋德先) 등 19명이 관찰사로 활동했다. 예종 대에는 윤우상(尹禹相) 등 29명이 관찰사를 역임했다. 인종 대에는 임존(林存) 등 44명의 관찰사가 확인된다. 이지저(李之氐), 정지상(鄭知常) 등이 이 시기에 관찰사로 활동했다.

의종 대에는 임경(林敬) 등 46명이 관찰사로 재임했다. 윤인첨(尹鱗瞻), 서공(徐公), 최루백(崔婁伯) 등이 이 시기에 관찰사로 활동했다. 명종 대에는 서취(敍諏) 등 59명이 관찰사를 역임했다. 최충헌(崔忠獻), 김봉모(金鳳毛) 등이 이 시기에 관찰사로 활동했다.

신종 대에는 최효사(崔孝思) 등 13명의 관찰사가 확인된다. 지자심(池資深), 백여주(白汝舟) 등이 이 시기에 관찰사로 활동했다. 희종 대에는 박인석(朴仁碩) 등 16명이 관찰사로 재임했다. 백수정(白守貞)이 이 시기에 관찰사로 활동했다. 강종 대에는 송안국(宋安國) 등 3명이 관찰사를 역임했다.

고종 대에는 이양승(李陽升) 등 69명이 관찰사로 활동했다. 김주정(金周鼎), 이공로(李公老), 유승단(兪升旦), 선대유(鮮大有), 백돈구(白敦구), 김효인(金孝印), 최춘명(崔椿命), 김지대(金之岱) 등이 이 시기에 관찰사로 재임했다. 원종 대에는 왕(王口口) 등 23명이 관찰사로 확인된다. 박감(朴珹)이 이 시기에 관찰사로 활동했다.

충렬왕 대에는 반부(潘阜) 등 53명이 관찰사를 역임했다. 권단(權㫜), 조간(趙簡), 황경(黃瓊) 등이 이 시기에 관찰사로 활동했다. 충선왕 대에는 육희쇄(陸希쇄) 등 6명이 관찰사로 재임했다. 이눌(李訥)이 이 시기에 관찰사로 활동했다.

충숙왕 대에는 박리(朴理) 등 15명의 관찰사가 확인된다. 설문우(薛文遇), 김영후(金永煦) 등이 이 시기에 관찰사로 활동했다. 충혜왕 대에는 김주휘(金朱暉)가 관찰사로 재임했다. 충숙왕(복위) 대에는 박송생(朴松生) 등 10명이 관찰사로 활동했다. 충혜왕(복위) 대에는 박충좌(朴忠佐) 등 9명이 관찰사를 역임했다. 백문보(白文寶)가 이 시기에 관찰사로 활동했다.

충목왕 대에는 박윤문(朴允文) 등 8명이 관찰사로 확인된다. 충정왕 대에는 이몽정(李蒙正) 등 7명이 관찰사로 재임했다. 공민왕 대에는 김한룡(金漢龍) 등 41명이 관찰사로 활동했다. 우현보(禹玄寶), 정몽주(鄭夢周) 등이 이 시기에 관찰사로 재임했다.

우왕 대에는 윤방언(尹邦彦) 등 27명이 관찰사를 역임했다. 백군영(白君瑛)이 이 시기에 관찰사로 활동했다. 공양왕 대에는 장하(張夏) 등 5명이 관찰사로 확인된다.

3. 조선 시대

조선 시대 지방 행정은 관찰사가 담당하였다. 관찰사는 각 도에 파견되어 행정, 사법, 군사권을 행사하며 지방 통치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태조 때부터 최운사, 심효생, 민개, 최유경, 한상질, 이지 등이 관찰사로 임명되었다. 정종 대에는 임경, 조한이 임명되었다. 태종 대에는 전백영, 안노생, 허주, 이문화, 정부, 남재, 안원, 박자안, 김희선, 함부림, 안성, 권진, 이원, 안순, 안등, 한옹, 이귀산, 이은, 이지강, 박습, 우균 등이 관찰사직을 수행했다.

세종 대에는 신상, 이발, 최이, 서선, 최사강, 김겸, 이숙무, 하연, 신개, 최부, 이승직, 홍여방, 심도원, 조치, 이맹진, 신인손, 김효정, 박규, 민의생, 조서강, 이선, 남지, 조극관, 권맹손, 성염조, 이희, 성봉조, 유수강, 이계린, 김조, 민공 등이 재임하였다. 문종 대에는 이인손이, 단종 대에는 이숭지, 김순, 황효신이 관찰사를 역임했다.

세조 대에는 원효연, 조효문, 이극배, 김순, 김연지, 노숙동, 권개, 이효장, 이함장, 윤흠, 정문형, 함우치, 강윤범, 김질이 임명되었고, 예종 대에는 김겸광이 관찰사였다.

성종 대에는 김종순, 윤자, 이서장, 오백창, 윤필상, 정효상, 김영유, 윤호, 유지, 윤효손, 박건, 안관후, 윤계겸, 김자행, 이철견, 김자정, 한한, 이륙, 이극기, 손순효, 이세좌, 성숙, 김여석, 정괄, 정숭조, 이극돈, 이계남, 이극균 등이 재임하였다. 연산군 대에는 김제신, 이의, 안처량, 김심, 허침, 김수동, 김응기, 안윤덕, 이점, 권주, 홍자아, 임유겸 등이 관찰사로 임명되었다.

중종 대 관찰사는 김감, 장순손, 윤순, 강혼, 윤금손, 송천희, 안당, 한형윤, 조계상, 홍숙, 손중돈, 김안국, 한세환, 문근, 김극성, 신공제, 한효원, 김굉, 방유녕, 성세창, 김당, 김희수, 신상, 성운, 박호, 이기, 최세절, 임추, 김인손, 윤인경, 윤은필, 남효의, 이사균, 권예, 이현보, 송겸, 권벌, 강현, 김정국, 심연원, 송순, 이청, 임백령, 이언적 등이었다. 인종 대에는 권응창이 관찰사를 역임했다.

명종 대에는 상진, 안현, 임호신, 정만종, 심통원, 조사수, 이몽량, 정응두, 정언각, 권철, 조광원, 유강, 김광진, 오겸, 이감, 홍담, 남궁침, 정종영, 심수경, 오상, 이우민, 이택, 송찬, 강사상, 유창문 등이 관찰사로 재임했다.

선조 대에는 박계현, 정유길, 강섬, 이양원, 박대립, 송찬, 임열, 노진, 김계휘, 윤근수, 박근원, 박소립, 이린, 유홍, 최옹, 정지연, 허엽, 정언지, 홍성민, 윤탁연, 유훈, 유성룡, 권극례, 이산보, 유영립, 권극지, 김수, 한효순, 김성일, 김륵, 홍이상, 서성, 이용순, 윤승훈, 정경세, 유영경, 한준겸, 김신원, 이시발, 이시언, 유영순, 정석호 등이 관직을 역임했다.

광해군 대에는 이상신, 최관, 신경진, 강첨, 이정신, 윤방, 송영구, 윤휘, 권반, 장만, 심돈, 성진선, 윤훤, 박경신, 정조가 관찰사였다. 인조 대에는 김지남, 민성휘, 이민구, 김치, 원탁, 정온, 김시양, 홍방, 이명, 조희일, 오숙, 정세구, 홍명구, 이기조, 유백증, 심연, 이경여, 이경증, 이명웅, 구봉서, 정태화, 임담, 원두표, 유철, 허적, 목성선, 조수익이 임명되었다.

효종 대에는 이만, 민응협, 남선, 유심, 조계원, 권우, 홍처후, 서원리, 임의백 등이 관찰사를 지냈다. 현종 대에는 홍위, 홍처후, 민희, 정만화, 이상진, 임의백, 김휘, 민점, 이태연, 남용익, 심재, 민시중, 이숙 등이 역임했다.

숙종 대에는 이관징, 정중휘, 김덕원, 정박, 이단석, 박신규, 윤지완, 이익, 이수언, 권시경, 서문중, 이규령, 박태손, 이세화, 이현석, 오시대, 이담명, 민창도, 이현기, 이서우, 이인환, 이선보, 이언기, 김세익, 이세재, 최석항, 조태동, 박권, 김연, 이야, 홍만조, 이사상, 유명홍, 이의현, 이탄, 홍우녕, 권업, 이집, 오명항 등이 관찰사였다. 경종 대에는 조태억, 홍우전, 유명응, 이정제, 이세근, 김동필 등이 재임했다.

영조 대 관찰사는 권이진, 조영복, 유척기, 황선, 박문수, 조현명, 김시형, 김재로, 민응수, 윤양래, 이기진, 조명겸, 정익하, 심성희, 김상성, 김상로, 권혁, 남태량, 민백상, 조재호, 윤동도, 이이장, 이익보, 이성중, 조운규, 조엄, 황인검, 김상철, 정존겸, 김응순, 조돈, 이은, 김한기, 이미, 이명식, 이담, 김화진, 민홍렬, 윤양후 등이었다.

정조 대에는 김재순, 이연상, 이성원, 이재간, 홍낙빈, 조시준, 이문원, 이병모, 정창순, 김상집, 김광묵, 홍억, 이조원, 정대용, 조진택, 이태영, 이형원, 이의강 등이 관찰사로 임명되었다.

순조 대 관찰사는 신기, 김이영, 남공철, 김희순, 윤광안, 정동관, 정만석, 김회연, 김노응, 이존수, 김노경, 김이재, 이재수, 김상휴, 이지연, 조인영, 이학수, 정기선, 이면승, 박기수, 김양순, 서희순 등이었다. 헌종 대에는 조병현, 윤성대, 권돈인, 김도희, 홍재철, 이경재, 홍종영, 이계조, 김공현 등이 재임했다.

철종 대에는 김대근, 서기순, 이정신, 이기연, 홍열모, 조석우, 김학성, 신석우, 조병준, 심경택, 홍우길, 김세균, 이돈영 등이 관찰사였다. 고종 대에는 서헌순, 이삼현, 오취선, 김세호, 유치선, 홍완, 박제인, 이근필, 윤자승, 조강하, 남일우, 이호준 등이 관찰사로 임명되었다.

3. 1. 조선 시대 관찰사 제도

조선 시대 지방 행정은 관찰사가 담당하였다. 관찰사는 각 도에 파견되어 행정, 사법, 군사권을 행사하며 지방 통치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태조 때부터 최운사, 심효생, 민개, 최유경, 한상질, 이지 등이 관찰사로 임명되었다. 정종 대에는 임경, 조한이 임명되었다. 태종 대에는 전백영, 안노생, 허주, 이문화, 정부, 남재, 안원, 박자안, 김희선, 함부림, 안성, 권진, 이원, 안순, 안등, 한옹, 이귀산, 이은, 이지강, 박습, 우균 등이 관찰사직을 수행했다.

세종 대에는 신상, 이발, 최이, 서선, 최사강, 김겸, 이숙무, 하연, 신개, 최부, 이승직, 홍여방, 심도원, 조치, 이맹진, 신인손, 김효정, 박규, 민의생, 조서강, 이선, 남지, 조극관, 권맹손, 성염조, 이희, 성봉조, 유수강, 이계린, 김조, 민공 등이 재임하였다. 문종 대에는 이인손이, 단종 대에는 이숭지, 김순, 황효신이 관찰사를 역임했다.

세조 대에는 원효연, 조효문, 이극배, 김순, 김연지, 노숙동, 권개, 이효장, 이함장, 윤흠, 정문형, 함우치, 강윤범, 김질이 임명되었고, 예종 대에는 김겸광이 관찰사였다.

성종 대에는 김종순, 윤자, 이서장, 오백창, 윤필상, 정효상, 김영유, 윤호, 유지, 윤효손, 박건, 안관후, 윤계겸, 김자행, 이철견, 김자정, 한한, 이륙, 이극기, 손순효, 이세좌, 성숙, 김여석, 정괄, 정숭조, 이극돈, 이계남, 이극균 등이 재임하였다. 연산군 대에는 김제신, 이의, 안처량, 김심, 허침, 김수동, 김응기, 안윤덕, 이점, 권주, 홍자아, 임유겸 등이 관찰사로 임명되었다.

중종 대 관찰사는 김감, 장순손, 윤순, 강혼, 윤금손, 송천희, 안당, 한형윤, 조계상, 홍숙, 손중돈, 김안국, 한세환, 문근, 김극성, 신공제, 한효원, 김굉, 방유녕, 성세창, 김당, 김희수, 신상, 성운, 박호, 이기, 최세절, 임추, 김인손, 윤인경, 윤은필, 남효의, 이사균, 권예, 이현보, 송겸, 권벌, 강현, 김정국, 심연원, 송순, 이청, 임백령, 이언적 등이었다. 인종 대에는 권응창이 관찰사를 역임했다.

명종 대에는 상진, 안현, 임호신, 정만종, 심통원, 조사수, 이몽량, 정응두, 정언각, 권철, 조광원, 유강, 김광진, 오겸, 이감, 홍담, 남궁침, 정종영, 심수경, 오상, 이우민, 이택, 송찬, 강사상, 유창문 등이 관찰사로 재임했다.

선조 대에는 박계현, 정유길, 강섬, 이양원, 박대립, 송찬, 임열, 노진, 김계휘, 윤근수, 박근원, 박소립, 이린, 유홍, 최옹, 정지연, 허엽, 정언지, 홍성민, 윤탁연, 유훈, 유성룡, 권극례, 이산보, 유영립, 권극지, 김수, 한효순, 김성일, 김륵, 홍이상, 서성, 이용순, 윤승훈, 정경세, 유영경, 한준겸, 김신원, 이시발, 이시언, 유영순, 정석호 등이 관직을 역임했다.

광해군 대에는 이상신, 최관, 신경진, 강첨, 이정신, 윤방, 송영구, 윤휘, 권반, 장만, 심돈, 성진선, 윤훤, 박경신, 정조가 관찰사였다. 인조 대에는 김지남, 민성휘, 이민구, 김치, 원탁, 정온, 김시양, 홍방, 이명, 조희일, 오숙, 정세구, 홍명구, 이기조, 유백증, 심연, 이경여, 이경증, 이명웅, 구봉서, 정태화, 임담, 원두표, 유철, 허적, 목성선, 조수익이 임명되었다.

효종 대에는 이만, 민응협, 남선, 유심, 조계원, 권우, 홍처후, 서원리, 임의백 등이 관찰사를 지냈다. 현종 대에는 홍위, 홍처후, 민희, 정만화, 이상진, 임의백, 김휘, 민점, 이태연, 남용익, 심재, 민시중, 이숙 등이 역임했다.

숙종 대에는 이관징, 정중휘, 김덕원, 정박, 이단석, 박신규, 윤지완, 이익, 이수언, 권시경, 서문중, 이규령, 박태손, 이세화, 이현석, 오시대, 이담명, 민창도, 이현기, 이서우, 이인환, 이선보, 이언기, 김세익, 이세재, 최석항, 조태동, 박권, 김연, 이야, 홍만조, 이사상, 유명홍, 이의현, 이탄, 홍우녕, 권업, 이집, 오명항 등이 관찰사였다. 경종 대에는 조태억, 홍우전, 유명응, 이정제, 이세근, 김동필 등이 재임했다.

영조 대 관찰사는 권이진, 조영복, 유척기, 황선, 박문수, 조현명, 김시형, 김재로, 민응수, 윤양래, 이기진, 조명겸, 정익하, 심성희, 김상성, 김상로, 권혁, 남태량, 민백상, 조재호, 윤동도, 이이장, 이익보, 이성중, 조운규, 조엄, 황인검, 김상철, 정존겸, 김응순, 조돈, 이은, 김한기, 이미, 이명식, 이담, 김화진, 민홍렬, 윤양후 등이었다.

정조 대에는 김재순, 이연상, 이성원, 이재간, 홍낙빈, 조시준, 이문원, 이병모, 정창순, 김상집, 김광묵, 홍억, 이조원, 정대용, 조진택, 이태영, 이형원, 이의강 등이 관찰사로 임명되었다.

순조 대 관찰사는 신기, 김이영, 남공철, 김희순, 윤광안, 정동관, 정만석, 김회연, 김노응, 이존수, 김노경, 김이재, 이재수, 김상휴, 이지연, 조인영, 이학수, 정기선, 이면승, 박기수, 김양순, 서희순 등이었다. 헌종 대에는 조병현, 윤성대, 권돈인, 김도희, 홍재철, 이경재, 홍종영, 이계조, 김공현 등이 재임했다.

철종 대에는 김대근, 서기순, 이정신, 이기연, 홍열모, 조석우, 김학성, 신석우, 조병준, 심경택, 홍우길, 김세균, 이돈영 등이 관찰사였다. 고종 대에는 서헌순, 이삼현, 오취선, 김세호, 유치선, 홍완, 박제인, 이근필, 윤자승, 조강하, 남일우, 이호준 등이 관찰사로 임명되었다.

3. 2. 역대 조선 관찰사 명단

태조 때부터 고종 때까지 경상도 관찰사를 역임한 인물들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 '''태조'''

:** 최운사(崔云嗣), 심효생(沈孝生), 민개(閔開), 최유경(崔有慶), 한상질(韓尙質), 이지(李至)

  • '''정종'''

:** 임경(林敬), 조한(趙璞)

  • '''태종'''

:** 전백영(全伯英), 안노생(安魯生), 허주(許周), 이문화(李文和), 정부(鄭符), 남재(南在), 안원(安瑗), 박자안(朴子安), 김희선(金希善), 함부림(咸傳霖), 안성(安省), 권진(權軫), 이원(李原), 안순(安純), 안등(安騰), 한옹(韓雍), 이귀산(李貴山), 이은(李殷), 이지강(李之剛), 박습(朴習), 우균(禹均)

  • '''세종'''

:** 신상(申商), 이발(李潑), 최이(崔이), 서선(徐 選), 최사강(崔士康), 김겸(金謙), 이숙무(李叔畝), 하연(河演), 신개(申槪), 최부(崔府), 이승직(李繩直), 홍여방(洪汝方), 심도원(沈道源), 조치(曺致), 이맹진(李孟畛), 신인손(辛引孫), 김효정(金孝貞), 박규(朴葵), 민의생(閔義生), 조서강(趙瑞康), 이선(李宣), 남지(南智), 조극관(趙克寬), 권맹손(權굶孫), 성염조(成念祖), 이희(李희), 성봉조(成奉祖), 유수강(柳守剛), 이계린(李季린), 김조(金조), 민공(閔恭)

  • '''문종'''

:** 이인손(李仁孫)

  • '''단종'''

:** 이숭지(李崇之), 김순(金淳), 황효신(黃孝身)

  • '''세조'''

:** 원효연(元孝然), 조효문(曺孝門), 이극배(李克培), 김순(金淳), 김연지(金連技), 노숙동(盧叔仝), 권개(權愷), 이효장(李孝長), 이함장(李誠長), 윤흠(尹欽), 정문형(鄭文炯), 함우치(咸禹治), 강윤범(姜允範), 김질(金질)

  • '''예종'''

:** 김겸광(金謙光)

  • '''성종'''

:** 김종순(金從舜), 윤자(尹慈), 이서장(李恕長), 오백창(吳伯昌), 윤필상(尹弼商), 정효상(鄭孝常), 김영유(金永濡), 윤호(尹壕), 유지(柳지), 윤효손(尹孝孫), 박건(朴楗), 안관후(安寬厚), 윤계겸(尹繼謙), 김자행(金自行), 이철견(李鐵堅), 김자정(金自貞), 한한(韓한), 이륙(李陸), 이극기(李克基), 손순효(孫舜孝), 이세좌(李世佐), 성숙(成숙), 김여석(金礪石), 정괄(鄭괄), 정숭조(鄭崇祖), 이극돈(李克墩), 이계남(李季男), 이극균(李克均)

  • '''연산군'''

:** 김제신(金悌臣), 이의(李誼), 안처량(安處良), 김심(金諶), 허침(許琛), 김수동(金壽童), 김응기(金應箕), 안윤덕(安潤德), 이점(李점), 권주(權柱), 홍자아(洪自阿), 임유겸(任由謙)

  • '''중종'''

:** 김감(金勘), 장순손(張順孫), 윤순(尹珣), 강혼(姜渾), 윤금손(尹金孫), 송천희(宋千喜), 안당(安당), 한형윤(韓亨允), 조계상(曺繼商), 홍숙(洪淑), 손중돈(孫仲暾), 김안국(金安國), 한세환(韓世桓), 문근(文瑾), 김극성(金克成), 신공제(申公濟), 한효원(韓效元), 김굉(金굉), 방유녕(方有寧), 성세창(成世昌), 김당(金당), 김희수(金希壽), 신상(申상), 성운(成雲), 박호(朴壕), 이기(李기), 최세절(崔世節), 임추(任樞), 김인손(金麟孫), 윤인경(尹仁鏡), 윤은필(尹殷弼), 남효의(南孝義), 이사균(李思鈞), 권예(權예), 이현보(李賢輔), 송겸(宋겸), 권벌(權벌), 강현(姜顯), 김정국(金正國), 심연원(沈連源), 송순(宋純), 이청(李淸), 임백령(林百齡), 이언적(李彦迪)

  • '''인종'''

:** 권응창(權應昌)

  • '''명종'''

:** 상진(尙震), 안현(安玹), 임호신(任虎臣), 정만종(鄭萬種), 심통원(沈通源), 조사수(趙士秀), 이몽량(李夢亮), 정응두(丁應斗), 정언각(鄭彦慤), 권철(權轍), 조광원(費光遠), 유강(兪絳), 김광진(金光軫), 오겸(吳謙), 이감(李戡), 홍담(洪曇), 남궁침(南宮침), 정종영(鄭宗榮), 심수경(沈守慶), 오상(吳祥), 이우민(李友閔), 이택(李澤), 송찬(宋贊), 강사상(姜士尙), 유창문(柳昌門)

  • '''선조'''

:** 박계현(朴啓賢), 정유길(鄭惟吉), 강섬(姜暹), 이양원(李陽元), 박대립(朴大立), 송찬(宋贊), 임열(任說), 노진(盧진), 김계휘(金繼輝), 윤근수(尹根壽), 박근원(朴護元), 박소립(朴素立), 이린(李린), 유홍(兪泓), 최옹(崔옹), 정지연(鄭芝衍), 허엽(許曄), 정언지(鄭彦智), 홍성민(洪聖民), 윤탁연(尹卓然), 유훈(柳項), 유성룡(柳成龍), 권극례(權克禮), 이산보(李山甫), 유영립(柳永立), 권극지(權克智), 김수(金수), 홍성민(洪聖民), 김 수(金수), 한효순(韓孝純), 김성일(金誠一), 김륵(金륵), 홍이상(洪履祥), 서성(徐성), 이용순(李用淳), 윤승훈(尹承勳), 정경세(鄭經世), 유영경(柳永慶), 한준겸(韓浚謙), 김신원(金信元), 이시발(李時發), 이시언(李時彦), 유영순(柳永詢), 정석호(鄭眼湖)

:** 특히 임진왜란 시기에는 유성룡, 김성일 등 명망 있는 관찰사들이 활약하며 국난 극복에 크게 기여하였다.

  • '''광해군'''

:** 이상신(李尙信), 최관(崔瓘), 신경진(辛慶晉), 강첨(姜籤), 이정신(李廷臣), 윤방(尹昉), 송영구(宋英耉), 윤휘(尹暉), 권반(權盼), 장만(張映), 심돈(沈惇), 성진선(成晉善), 윤훤(尹暄), 박경신(朴慶新), 정조(鄭造)

  • '''인조'''

:** 김지남(金止男), 민성휘(閔聖徵), 이민구(李敏求), 김치(金緻), 원탁(元鐸), 정온(鄭蘊), 김시양(金時讓), 홍방(洪雾), 이명(李溟), 조희일(趙希逸), 오숙(吳䎘), 정세구(鄭世矩), 홍명구(洪命耉), 이기조(李基祚), 유백증(兪伯曾), 심연(沈演), 이경여(李敬與), 이경증(李景曾), 이명웅(李命雄), 구봉서(具鳳瑞), 정태화(鄭太和), 임담(林墰), 원두표(元斗杓), 임담(林墰), 유철(兪橵), 허적(許積), 목성선(睦性善), 조수익(趙壽益)

  • '''효종'''

:** 이만(李蔓), 민응협(閔應協), 남선(南銑), 유심(柳심), 조계원(趙啓遠), 권우(權우), 남선(南선), 홍처후(洪處厚), 서원리(徐元履), 임의백(任義伯)

  • '''현종'''

:** 홍위(洪위), 홍처후(洪處厚), 민희(閔凞), 정만화(鄭萬和), 이상진(李尙眞), 임의백(任義伯), 김휘(金徽), 민점(閔點), 이태연(李泰淵), 남용익(南龍翼), 심재(沈 梓), 민시중(閔著重), 이숙(李숙)

  • '''숙종'''

:** 이관징(李觀徵), 정중휘(鄭重徽), 김덕원(金德遠), 정박(鄭樸), 이단석(李端錫), 박신규(朴信圭), 윤지완(尹趾完), 이익(李翊), 이수언(李秀彦), 권시경(權是經), 서문중(徐文重), 윤지완(尹趾完), 이규령(李奎齡), 박태손(朴泰遜), 이세화(李世華), 이현석(李玄錫), 오시대(吳始大), 이담명(李聃命), 민창도(閔昌道), 이현기(李玄紀), 이서우(李瑞雨), 이인환(李寅煥), 이선보(李善溥), 이언기(李彦紀), 김세익(金世翊), 이세재(李世載), 최석항(崔錫恒), 조태동(趙泰東), 박권(朴權), 김연(金演), 이야(李야), 홍만조(洪萬朝), 이사상(李師尙), 유명홍(兪命弘), 이의현(李宜顯), 이탄(李 坦), 홍우녕(洪禹寧), 권업(權업), 이집(李집), 오명항(吳命恒)

  • '''경종'''

:** 조태억(趙泰憶), 홍우전(洪禹傳), 유명응(兪命凝), 이정제(李廷濟), 이세근(李世瑾), 김동필(金東弼)

  • '''영조'''

:** 권이진(權以鎭), 조영복(趙榮福), 유척기(兪布基), 황선(黃璿), 박문수(朴文秀), 조현명(趙顯命), 김시형(金始炯), 김재로(金在魯), 민응수(閔應洙), 유척기(兪拓基), 윤양래(尹陽來), 이기진(李箕鎭), 조명겸(趙明謙), 정익하(鄭益河), 심성희(沈聖希), 김상성(金尙星), 김상로(金尙魯), 권혁(權爀), 남태량(南泰良), 민백상(閔百祥), 조재호(趙載浩), 윤동도(尹東度), 이이장(李彛章), 이익보(李益輔), 이성중(李成中), 조운규(趙雲逵), 조엄(趙엄), 황인검(黃仁儉), 김상철(金尙喆), 정존겸(鄭存謙), 김응순(金應淳), 조돈(趙暾), 이은(李은), 김한기(金漢耆), 이미(李미), 이명식(李命植), 이담(李潭), 김화진(金華鎭), 민홍렬(閔弘烈), 윤양후(尹養厚)

:** 특히 박문수는 암행어사로 이름을 떨쳐 백성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힘썼다.

  • '''정조'''

:** 김재순(金載順), 이연상(李衍祥), 이성원(李性源), 이재간(李在簡), 홍낙빈(洪樂彬), 조시준(趙時俊), 이문원(李文源), 조시준(趙時俊), 이병모(李秉模), 정창순(鄭昌順), 김상집(金尙集), 김광묵(金光默), 홍억(洪憶), 이조원(李祖源), 정대용(鄭大容), 조진택(趙鎭宅), 이태영(李泰永), 이형원(李亨元), 이의강(李義鋼)

  • '''순조'''

:** 신기(申耆), 김이영(金履永), 남공철(南公轍), 김희순(金羲淳), 윤광안(尹光顔), 정동관(鄭東觀), 정만석(鄭晩錫), 김회연(金會淵), 김노응(金魯應), 이존수(李存秀), 김노경(金魯敬), 김이재(金履載), 이재수(李在秀), 김상휴(金相休), 이지연(李止淵), 조인영(趙寅永), 이학수(李鶴秀), 정기선(鄭基善), 이면승(李勉昇), 박기수(朴岐壽), 김양순(金陽淳), 서희순(徐熹淳)

:** 조인영은 세도 정치기 유력한 가문 출신으로 관찰사를 역임했다.

  • '''헌종'''

:** 조병현(趙秉鉉), 윤성대(尹聲大), 권돈인(權敦仁), 김도희(金道喜), 홍재철(洪在喆), 이경재(李景在), 홍종영(洪鍾英), 이계조(李啓朝), 김공현(金公鉉)

  • '''철종'''

:** 김대근(金大根), 서기순(徐箕淳), 이정신(李鼎臣), 이기연(李紀淵), 홍열모(洪說謨), 조석우(趙錫雨), 김학성(金學性), 신석우(申錫愚), 조병준(趙秉駿), 심경택(沈敬澤), 홍우길(洪祐吉), 김세균(金世均), 이돈영(李敎榮)

  • '''고종'''

:** 서헌순(徐憲淳), 이삼현(李參鉉), 오취선(吳取善), 김세호(金世鎬), 유치선(兪致善), 홍완(洪玩), 박제인(朴齊寅), 이근필(李根弼), 윤자승(尹滋承), 조강하(趙康夏), 남일우(南一祐), 이호준(李鎬俊)

  • '''경상도 및 대구부ㆍ안동부ㆍ진주부ㆍ동래부 관찰사''' (1888.6~1897.10)

:** 김명진(金明鎭), 민정식(閔正植), 이헌영(李헌永), 이용직(李容直), 조병호(趙秉鎬), 이중하(李重夏), 김석중(金奭中), 이남규(李南珪), 이재곤(李載崑), 이성렬(李聖烈), 허진(許璡), 조병필(趙秉弼), 이항의(李恒儀), 지석영(池錫永)

  • '''경상북도 관찰사'''

:** 이성렬(李聖烈), 민형식(閔亨植), 엄세영(嚴世永)

  • '''경상남도 관찰사'''

:** 이항의(李恒儀), 조시영(曺始永)

4. 일제강점기

4. 1. 일제강점기 도장관/도지사 제도

4. 2. 역대 경상북도/경상남도 도장관/도지사 명단

대한제국 시기 경상북도와 경상남도에는 관찰사가 임명되었다. 경상북도 관찰사로는 조한국, 김직현, 이성렬, 이유인, 조기하, 이헌영, 김종규, 이근교, 윤용식, 이윤용, 이재극, 윤헌, 장승원, 이용익, 정주영, 이중하, 이근호, 신태휴, 이근상, 이재곤, 이원긍, 한진창, 이충구, 박중양 등이 재임하였다. 특히 박중양은 일제 강점기 친일 관료로 활동하며 조선총독부의 식민 통치에 적극 협력한 인물로, 그의 친일 행적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경상남도 관찰사로는 이근용, 박용대, 김영덕, 이재현, 이윤용, 민형식, 김학수, 성기운, 민영선, 조민희, 김사묵, 이규식, 김재풍, 황철 등이 재임하였다.

5. 대한민국

5. 1.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도지사 제도

5. 2. 역대 경상북도/경상남도 도지사

6. 평가 및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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