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읍성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고성읍성은 가야 말로왕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으로, 고성읍성과 고성왜성의 일부가 남아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읍성의 규모가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 성벽은 대부분 훼손되었다. 정유재란 때 일본군이 쌓은 고성왜성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고성읍성은 고성 송학동 고분군 등 주변 유적과 관련이 있으며, 가야 시대부터 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명칭 혼동을 방지하고 읍성의 일반적인 사례에 따라 '고성성지'에서 '고성읍성'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지역 향토사학자들은 일제강점기 왜성의 잔재임을 지적하며 명칭 변경을 요구해왔고, 경상남도 문화재위원회는 '고성성지'를 '고성읍성'과 '고성왜성'으로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고성읍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고성읍성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고성성지
국가 대한민국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자료
번호89
지정일1983년 12월 20일
주소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성내리, 서외리, 수남리 일대
소유자고성군 외
관리자고성군 외
참고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지
면적32,060m2
수량일원
꼬리표고성 성내리
문화재청31,00890000,38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고성군 (경상남도)의 문화유산 - 고성 덕명리 공룡과 새발자국 화석산지
    고성 덕명리 공룡와 새발자국 화석산지는 중생대 백악기 공룡 및 새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는 중요한 화석 산지로, 특히 중생대 새발자국 화석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 고성군 (경상남도)의 문화유산 - 고성 송학동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은 경상남도 고성읍 무기산 구릉 주변에 있는 7기의 가야 시대 고분군으로, 소가야국의 위치를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며, 1호분을 중심으로 가야 고유 방식으로 축조되었고 동외동 조개더미 유적과 함께 당시의 장례 문화와 생활상을 보여준다.
  • 경상남도의 문화유산자료 -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601호 ~ 제700호)
    경상남도의 문화재자료 (제601호 ~ 제700호) 목록은 경상남도 지정 문화재자료 중 601호부터 665호까지의 번호, 명칭, 소재지, 관리자, 지정일을 표 형태로 제공하며, 합천 청계서원, 사천 향교, 거창 동계고택 등을 포함한다.
  • 경상남도의 문화유산자료 - 진주 남악서원
    진주 남악서원은 김유신, 최치원 등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1919년에 재건되어 경주 서악서원의 이름을 본떠 남악서원이라 이름 지었다.
  • 대한민국의 폐성 - 순천왜성
    순천왜성은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 등이 호남 공략 거점으로 삼아 순천에 약 3개월 만에 축조한 왜성으로, 남해안 왜성들을 연결하는 군사 요충지였으며 현재 전라남도기념물로 지정되어 왜교성 전투와 축성 방식으로도 주목받는다.
  • 대한민국의 폐성 - 울산왜성
    울산왜성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이 울산에 축성한 왜성으로, 도산왜성이라고도 불렸으며 현재는 학성공원으로 조성되어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7호로 지정된 석축 일부가 남아 있는 곳이다.

2. 현지 안내문

가야 말로왕의 왕궁터로 전해지고 있는 고성성지는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고, 고성읍성과 고성왜성의 일부가 남아있다.

동국여지승람 기록에 따르면 고성읍성은 둘레 3,524척, 높이 15척이며, 우물 14개와 연못 1곳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성벽은 대부분 훼손되었다.

고성왜성은 정유재란 때 일본군이 남해안에 주둔하기 위해 남해안 일대 요충지에 쌓은 성의 하나로, 현재 거의 남아있지 않다.

전체적인 구조나 규모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주변에 있는 송학동고분군(사적 제119호), 고성 동외리 조개더미, 만년사 토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가야 시대부터 성이 있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3. 명칭 변경 사유

고성군에는 읍성을 비롯하여 왜성, 남산성지 등 여러 성곽이 남아 있는데, 기존의 '고성성지'라는 명칭은 특정 성곽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어서 혼동될 우려가 있었다.

따라서 명칭 혼동을 방지하고, 조선시대 현(縣) 또는 읍(邑)의 지명에 읍성을 붙여 부르는 일반적인 방식에 따라 '고성성지'에서 '고성읍성'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4. 명칭 논란

고성읍성은 조선 세종 때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축조되었으나,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이 쌓은 고성왜성과 함께 '고성성지'로 불려왔다. 하기호 향토사연구소장을 비롯한 지역 향토사학자들은 '고성성'이라는 명칭이 일본 왜성(倭城)의 잔재임을 지적하며, 고성읍성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명칭 변경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하기호 소장은 '고성성'이 정유재란 당시 일본군 장수 깃카와 히로이에 등이 쌓은 왜성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문화재 명칭으로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성읍성과 고성왜성의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우리 지역 성곽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과 체계화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경상남도 문화재위원회는 '고성성지'를 '고성읍성'과 '고성왜성'으로 분리하고, 왜성은 별도 지정을 추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는 일제 잔재 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고, 지역 주민들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