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공북루
1. 개요
공주 공북루는 1603년(선조 36년)에 관찰사 유근이 쌍수산성을 고쳐 세우면서 지어진 누각으로, 공산성의 북문 역할을 한다. 금강에서 성 안으로 들어오는 문 위에 세워졌으며, 아래는 통행로, 위는 누마루로 사용되었다. 팔작지붕 형태이며, 송시열의 기록을 비롯한 여러 글이 걸려 있어 경관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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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공북루 (拱北樓) |
|---|---|
| 위치 | 충청남도 공주시 |
| 종류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
|---|---|
| 지정 번호 | 37 |
| 지정일 | 1976년 1월 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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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3년 작품 -
천인청원
천인청원은 1801년 잉글랜드 국교회 내 천주교 신자들이 교회 정치 및 재정 개혁을 요구한 탄원서로, 교회 개혁 운동의 촉매제이자 잉글랜드 내전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며 현대 사회에 비판적 사고와 합리적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시사한다. -
공산성 -
공주 공산성
공주 공산성은 충청남도 공주시에 있는 산성으로, 백제 시대 웅진성으로 시작하여 고려 시대 공산성으로 불렸으며, 조선 시대 석성으로 개축되었고, 금강과 인접해 있으며 다양한 건물과 유적이 존재한다. -
공산성 -
공산성 진남루
공산성 진남루는 백제 시대 공산성의 남문으로, 현재 정문 역할을 하며 공산성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누각 건축물이다. -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
청양 모덕사 최익현 초상
청양 모덕사 최익현 초상은 채용신이 1909년에 이모한 작품으로, 73세 최익현의 오사모와 단령 차림의 전신좌상이며, 구한말 유학자의 풍모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모덕사에 소장되어 최익현의 삶과 정신을 기리고 채용신의 초상화 기법을 보여준다. -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 -
여민루
여민루는 조선 시대 아산군 관아 입구에 세워진 문루 건물로, 백성의 뜻을 취한다는 의미를 담은 현판이 걸려 있으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에 익공 양식의 공포를 갖춘 다락 형식의 건물이다.
2. 역사
공산성의 북문으로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남북통로의 길이다. 조선 선조 36년(1603년)에 관찰사 유근이 쌍수산성을 고쳐 세우면서, 이 자리에 있었던 망북루를 다시 지어 공북루로 고쳐 부르고, 그 옆에 월파당을 지었다. 현종 4년(1663년) 관찰사 오정위가 낡은 것을 다시 지었으며 기록은 송시열이 하였다. 월파당은 효종 5년(1654년)에 붕괴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2.1. 건립 배경
조선 선조 36년(1603년)에 관찰사 유근이 쌍수산성을 고쳐 세우면서, 이 자리에 있었던 망북루를 다시 지어 공북루로 고쳐 부르고 그 옆에 월파당을 지었다고 한다. 현종 4년(1663년) 관찰사 오정위가 낡은 것을 다시 지었으며 기록은 송시열이 하였다. 월파당은 효종 5년(1654년)에 붕괴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2.2. 조선시대
공북루는 공주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남북 통로이다. 조선 선조 36년(1603년)에 관찰사 유근이 쌍수산성을 고쳐 세우면서, 이 자리에 있었던 망북루를 다시 지어 공북루로 고쳐 부르고, 그 옆에 월파당을 지었다. 현종 4년(1663년) 관찰사 오정위가 낡은 것을 다시 지었으며 기록은 송시열이 하였다. 월파당은 효종 5년(1654년)에 붕괴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앞면 5칸·옆면 2칸으로 규모가 큰 누각 건축이어서, 윗층에는 누마루를 깔았고 아랫층은 통행로로 쓰고 있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공북루(拱北樓)’라고 쓴 현판은 성의 안쪽에 해당하는 추녀 밑에 걸려있다.
공북루는 송시열이 쓴 기록을 비롯해 여러 글이 걸려 있어 멋스러운 경치를 더해 주는 건물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루이다.
3. 건축
조선 선조 36년(1603년)에 관찰사 유근이 쌍수산성을 고쳐 지으면서 망북루가 있던 자리에 공북루를 짓고, 그 옆에 월파당을 지었다. 현종 4년(1663년)에 관찰사 오정위가 낡은 공북루를 다시 지었으며, 관련 기록은 송시열이 하였다. 월파당은 효종 5년(1654년)에 무너져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앞면 5칸·옆면 2칸의 큰 누각으로, 윗층에는 누마루를 깔았고 아랫층은 통행로로 사용한다. 지붕 옆면은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공북루(拱北樓)’ 현판은 성 안쪽 추녀 밑에 걸려있다. 공북루에는 송시열의 기록을 비롯한 여러 글이 걸려 있어, 경치를 더욱 멋스럽게 만드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루이다.
3.1. 구조
공산성의 북문으로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남북통로이다. 조선 선조 36년(1603년)에 관찰사 유근이 쌍수산성을 고쳐 세우면서, 이 자리에 있었던 망북루를 다시 지어 공북루로 고쳐 부르고, 그 옆에 월파당을 지었다. 현종 4년(1663년) 관찰사 오정위가 낡은 것을 다시 지었으며 기록은 송시열이 하였다. 월파당은 효종 5년(1654년)에 붕괴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앞면 5칸·옆면 2칸으로 규모가 큰 누각 건축이어서, 윗층에는 누마루를 깔았고 아랫층은 통행로로 쓰고 있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고, ‘공북루(拱北樓)’라고 쓴 현판은 성의 안쪽에 해당하는 추녀 밑에 걸려있다.
공북루는 송시열이 쓴 기록을 비롯해 여러 글이 걸려 있어 멋스러운 경치를 더해 주는 건물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루이다.
3.2. 특징
공산성의 북문으로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남북통로이다. 1603년(조선 선조 36년)에 관찰사 유근이 쌍수산성을 고쳐 세우면서, 이 자리에 있었던 망북루를 다시 지어 공북루로 고쳐 부르고, 그 옆에 월파당을 지었다. 1663년(조선 현종 4년) 관찰사 오정위가 낡은 것을 다시 지었으며 기록은 송시열이 하였다. 월파당은 1654년(조선 효종 5년)에 붕괴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
앞면 5칸·옆면 2칸으로 규모가 큰 누각 건축이어서, 윗층에는 누마루를 깔았고 아랫층은 통행로로 쓰고 있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고, ‘공북루(拱北樓)’라고 쓴 현판은 성의 안쪽에 해당하는 추녀 밑에 걸려있다.
공북루는 송시열이 쓴 기록을 비롯해 여러 글이 걸려 있어 멋스러운 경치를 더해 주는 건물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