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공산성
1. 개요
공주 공산성은 충청남도 공주시에 위치한 산성으로, 금강과 인접해 있다. 백제 시대에는 웅진성으로 불리며, 문주왕이 한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한 475년부터 성왕이 사비로 천도한 538년까지 왕도의 방어 시설이었다. 고려 시대부터 공산성으로 불렸으며, 조선 시대에는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성 안에는 금서루, 영은사 등 다양한 건물과 유적이 있으며,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당시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공주 10경 중 하나로 선정되었으며, 연중 관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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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공주 공산성 (公州 公山城) |
|---|---|
| 영문명 | Gongsanseong Fortress, Gongju |
| 한글 | 공산성 (공산성) |
| 한자 | 公山城 (공산성) |
| 주소 |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 2번지 |
|---|---|
| 면적 | 371,621.3m2 |
| 해발고도 | 110m |
| 시대 | 삼국 시대 |
|---|
| 지정 종류 | 사적 |
|---|---|
| 지정 번호 | 12 |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 소유 | 국유, 사유 |
| 세계유산 명칭 | 백제역사유적지구 - 공주 공산성 |
|---|---|
| 영문명 | Baekje Historic Areas |
| 불문명 | Aires historiques de Baekje |
| 국가 | 대한민국 |
| 등재 유형 | 문화유산 |
| 등재 기준 | (ⅱ), (ⅲ) |
| 지정 번호 | 1477 |
| 등재 연도 | 2015년 |
| 지역 | 아시아·태평양 |
| 회차 | 제39차 |
| 문화재청 ID | 13,00120000,34 |
|---|---|
| 설명 | 백제 시대의 성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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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괄의 난 -
흥안군 (1598년)
흥안군 이제는 선조의 열번째 서자이자 활달한 성격의 왕자였으나,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국청 없이 처형되었고, 위성원종공신 1등에 책록되었으나 작위와 시호는 철회되었으며, 묘소는 사라졌지만 흥안대로라는 지명으로 남아있다. -
이괄의 난 -
정충신
정충신은 임진왜란 때 무관으로 활동을 시작하여 이괄의 난을 진압하는 데 기여했고, 다방면에 능통했으며, 사후 충무의 시호를 받았다. -
공산성 -
공주 공북루
공주 공북루는 조선 시대에 건립되어 국방의 요충지이자 뛰어난 경관을 자랑했던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태 2층 누각으로, 현재는 터만 남아있는 건축물이다. -
공산성 -
공산성 진남루
공산성 진남루는 백제 시대 공산성의 남문으로, 현재 정문 역할을 하며 공산성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누각 건축물이다. -
충청남도의 사적 -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신부 유적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은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로, 한국 천주교 역사와 사회 변천, 신앙의 자유를 위한 저항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현장이다. -
충청남도의 사적 -
부여 나성
부여 나성은 백제 사비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 538년경에 축조된, 둘레 8km의 흙으로 쌓은 성으로, 금강과 자연 지형을 활용한 이중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현재는 일부 흔적만 남아있다.
2. 역사
공주 공산성은 공주시가지와 금강에 인접한 산에 축조된, 둘레 약 2660m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산성이다. 백제의 수도가 웅진(현재의 공주)이었던 시대의 산성으로, 475년 문주왕이 한성(현재의 서울)에서 천도했을 때 건조되었으며, 538년 성왕 16년에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64년 동안 왕도의 방어 시설이었다. 웅진성이라고도 불린다.
북쪽은 금강에 접해 있으며, 동서 800m, 남북 400m의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고려 시대부터 "공산성"으로 불렸으며, 원래는 토성이었으나, 조선 선조, 인조 시대에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구역 내에는 금서루, 진남루, 공북루, 쌍수정, 명국 삼장비, 쌍수산성 사적비, 영은사, 연지, 만하루, 임류각, 광복루 등의 건조물, 석비가 있다.
2.1. 백제 시대
475년 문주왕이 한성(현재의 서울)에서 천도했을 때 건조되었으며, 이후 538년(성명왕 16년)에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64년 동안 왕도의 방어 시설이었다. 웅진성이라고도 불린다.
북쪽은 금강에 접해 있으며, 동서 800m, 남북 400m의 직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고려 시대부터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원래는 토성이었으나, 조선 선조, 인조 시대에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2.3. 조선 시대
조선 선조, 인조 때 흙으로 쌓았던 성을 돌로 다시 쌓아 석성으로 개축했다. 성 안에는 세조 4년 (1458년)에 창건된 영은사가 있다. 명국삼장비, 쌍수정사적비 등도 이 시대에 만들어졌다.
2.3.1. 임진왜란
임진왜란 당시 영은사에서 승병들을 훈련시켰다.
2.3.2. 이괄의 난과 인조의 파천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인조는 공주로 피난하였다. 인조는 한양에 입성하여 경복궁 옛터에서 선조의 열 번째 아들 흥안군 제(興安君 瑅)를 왕으로 세웠다. 공산성 내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쌍수정에 머물러 금강 건너편을 바라보며 반란 진압 소식을 기다렸다. 인조는 7일 동안 공주에서 머물렀다.
3. 유래
강 건너 북쪽에서 보면 마치 한자의 귀인 공(公)자와 같다 하여 공산(公山)이라 이름하였다. 하지만 이는 후에 지명이 한자로 변한 다음에 생긴 이야기로 생각된다.
원래는 공주의 옛 명칭이 웅진(熊津)이어서, 곰나루(고마나루)였던 것처럼, 공산도 원래는 곰산이었다. 공주도 이런 식으로 해석해보면 곰의 고을이라는 뜻이 된다.
4. 주요 시설
공산성 구역 안에는 금서루, 진남루, 공북루, 쌍수정, 명국 삼장비, 쌍수산성 사적비, 영은사, 연지, 만하루, 임류각, 광복루 등의 건조물과 석비가 있다.
4.1. 성곽 및 성문
공산성은 공주시가지와 금강에 인접한 산에 축조된 산성으로, 둘레는 약 2,660m이다. 성벽은 북쪽으로 금강에 접해 있으며, 동서 800m, 남북 400m의 직사각형 형태를 띠고 있다. 원래는 토성이었으나, 조선 선조, 인조 시대에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성 내부에는 금서루, 진남루, 공북루, 쌍수정, 명국 삼장비, 쌍수산성 사적비, 영은사, 연지, 만하루, 임류각, 광복루 등의 건조물과 석비가 있다.
4.2. 정자 및 누각
공산성 구역 안에는 금서루, 진남루, 공북루, 쌍수정, 명국 삼장비, 쌍수산성 사적비, 영은사, 연지, 만하루, 임류각, 광복루 등의 건조물과 석비가 있다.
4.3. 사찰
성 안에는 백제 시대 추정 왕궁지와 연못 2개소가 발굴 조사되었으며, 임류각, 추정왕궁지, 연지, 쌍수정, 쌍수정사적비, 명국삼장비, 광복루, 진남루, 동문루, 금서루, 영은사, 만하루 등 수많은 신라, 고려, 조선 유적이 남아 있다. 조선 세조 4년(1458년)에 영은사가 창건되었다.
4.4. 기타
성 안에는 백제 시대 추정 왕궁지와 연못 2개소가 발굴 조사되었으며, 임류각·추정 왕궁지·연지·쌍수정·쌍수정 사적비·명국삼장비·광복루·진남루·동문루·금서루·영은사·광복루·만하루 등 수많은 신라, 고려, 조선 유적이 남아 있다. 세조 4년 (1458년)에 창건된 영은사가 있다.
5. 공주 10경
공주문화원, 공주예총, 향토사학자, 언론인, 사진작가 등으로 구성된 공주 10경 선정위원회에서 공주 10경 후보지 15개소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공산성이 공주 10경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6. 이용 안내
공주 공산성은 어른(만 19~64세), 청소년(만 13~18세), 어린이(만 7~12세)로 구분하여 입장료를 받으며, 관람 시간은 09:00~18:00(마감 30분 전까지 입장)이다. 설, 추석 당일은 휴관한다.
6.1. 입장료
| 구분 | 개인 |
|---|---|
| 어른(만 19~64세) | 3000KRW |
| 청소년(만 13~18세) | 1500KRW |
| 어린이(만 7~12세) | 600KR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