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레오 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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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오 5세는 903년 선출된 교황이다. 아르데아 인근 프리아피 출신으로, 로마의 사제였으나 교황 베네딕토 4세의 사망 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으로 재임하는 동안 볼로냐의 의전사제들에게 세금 면제 교서를 발표했으나, 3개월 만에 대립교황 크리스토포로에게 폐위되어 투옥되었다. 이후 904년 초 옥중에서 사망했으며, 크리스토포로, 교황 세르지오 3세, 또는 투스쿨룸 백작 테오필락트 1세의 지시로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교황 레오 5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레오 5세
출생 이름레오
직책로마 주교
교회가톨릭 교회
재임 기간
재임 시작903년 7월 말
재임 종료903년 9월 중순 또는 904년 2월경
선임자베네딕토 4세
후임자세르지오 3세
개인 정보
출생지교황령 아르데아 근처의 프리아피
사망일904년 2월
사망지교황령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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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레오 5세는 출신지가 불분명하다. 903년 선대 교황인 베네딕토 4세가 서거하자 새로운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사제에 불과했던 레오 5세의 선출에 대립교황 크리스토포로가 반발했다. 당시 로마 교회는 교황이 암살되거나 당내 파벌 싸움이 벌어지는 등 불안정한 시기였고, 레오 5세는 이러한 혼란을 억누를 수 없었다. 결국 크리스토포로에 의해 같은 해에 폐위되어 투옥되었고, 904년 초 옥중에서 살해되었다.

2.1. 교황 선출과 재위

레오 5세는 아르데아 인근 프리아피라고 불리는 곳에서 태어났다. 로마의 성직자단이나 추기경이 아닌 외딴 시골의 일개 사제였음에도 불구하고, 교황 베네딕토 4세가 선종한 후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으로 즉위한 후, 레오 5세는 볼로냐의전사제들에게 특별히 세금 납부를 면제하는 교황 교서 《epistola tuitionis》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교황으로 재임한 지 3개월 만에 산 로렌초 인 다마소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인 크리스토포로에게 사로잡혀 감옥에 갇혔다. 크리스토포로는 레오 5세를 감금한 다음 스스로 교황좌에 올랐다. 크리스토포로는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교황으로 선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립교황으로 분류된다.

2.2. 대립교황과의 갈등, 그리고 죽음

레오 5세는 교황으로 즉위한 후, 볼로냐의전사제들에게 특별히 세금 납부를 면제하는 교황 교서 《epistola tuitionis》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교황으로 재임한 지 3개월 만에 산 로렌초 인 다마소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인 크리스토포로에게 사로잡혀 감옥에 갇혔다. 크리스토포로는 레오 5세를 감금한 다음 스스로 교황좌에 올랐다. 이렇듯 크리스토포로는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교황으로 선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립교황으로 분류된다.

레오 5세는 감옥에서 풀려나지 못하고 선종하였다. 아마도 대립교황 크리스토포로의 지시로 살해되었거나 그를 폐위하여 처형하고 즉위한 교황 세르지오 3세의 지시로, 또는 투스쿨룸 백작 테오필락트 1세의 지시로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역사학계에서는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