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마자와 히데아키
1. 개요
구마자와 히데아키는 1943년 기후현 출생으로,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67년 농림성에 들어가 농림수산성 사무차관을 역임한 일본의 관료이다. 2001년 농림수산성 사무차관으로 재직 중 소해면상뇌증(BSE) 문제로 인해 2002년 퇴직했다. 퇴임 후에는 일본 농협공제회연구소 이사장, 체코 주재 특명전권대사를 역임하며 일본 문화 소개에 힘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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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구마자와 히데아키 |
|---|---|
| 한자 표기 | 熊澤 英昭 |
| 출생 | 1943년 |
| 출생지 | 일본 기후현 |
| 학력 | 도쿄 대학 법학부 |
| 전 직업 | 농림수산사무차관 |
|---|---|
| 직위 | 농림수산사무차관 |
| 취임일 | 2001년 1월 6일 |
| 퇴임일 | 2002년 |
| 직위 2 | 농림수산심의관 |
| 취임일 2 | 1998년 |
| 퇴임일 2 | 2001년 |
| 직위 3 | 농림수산성 경제국장 |
| 직위 4 | 농림수산성 축산국장 |
| 직위 5 | 농림수산성 대신관방 총무심의관 |
| 기타 직책 1 | 체코 주차 특명전권대사 |
| 취임일 6 | 2005년 |
| 퇴임일 6 | 2008년 |
| 기타 직책 2 | 농협공제종합연구소 이사장 |
| 기타 직책 3 | 전국미곡거래·가격형성센터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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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농림관료 -
와다 히로오
와다 히로오는 일본 농림성 관료 출신으로 요시다 시게루 내각에서 농림상으로 제2차 농지 개혁을 주도하고, 이후 일본사회당에서 당내 좌파를 이끌며 현실주의 노선을 추구한 정치인이다. -
일본의 농림관료 -
이토 마사요시
이토 마사요시는 농림성 관료 출신으로 중의원 의원을 9선 지냈으며, 내각관방장관과 외무대신을 역임하고 총리 임시대리를 맡기도 한 일본의 정치인이다. -
기후현 출신 -
오시마 히로시
오시마 히로시는 일본 육군 중장으로, 주독일 대사로 활동하며 반 코민테른 조약 및 삼국 동맹 조약 체결에 기여했고, 독일의 전쟁 정보를 일본에 보고했으나 연합군에 의해 해독되었으며, A급 전범으로 기소되어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
기후현 출신 -
이토 준지
이토 준지는 독특한 그림체와 심리적, 바디, 우주적 공포를 결합한 스타일로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은 일본의 공포 만화가이다. -
도쿄 대학 동문 -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는 1925년 도쿄에서 태어나 소설, 희곡, 평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갈등을 작품에 담아낸 20세기 일본 문학의 중요한 인물이며, 1970년 자위대에서 쿠데타를 시도하다 실패하고 할복 자살했다. -
도쿄 대학 동문 -
김상협
김상협은 삼양그룹 창업주의 아들이자 독립운동가의 조카로, 도쿄대 졸업 후 고려대 교수와 총장, 문교부 장관, 국무총리, 대한적십자사 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교육자이며,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요구된다.
2. 생애
기후현 출신으로, 기후 고등학교를 거쳐 1967년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해 농림성에 들어갔다. 농림성이 농림수산성으로 개편될 당시 농수산장관 관방실과 총무심의관실에서 근무했다. 1983년부터 농림수산성 식품유통국 기획과장, 물가정책실장, 경제국 국제부 국제기획과장, 축산국 경마감독과장, 식품유통국 사탕당류담당, 농림수산장관 관방실 비서과장, 경제국 국제부장, 관방실 총무심의관 등을 역임했다.
1998년 농림수산성 심의관이 되었고, 2001년 1월 6일 농림수산성 사무차관에 발탁되었다. 2001년 12월 발생한 소해면상뇌증(광우병)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02년 12월 26일 퇴직하였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제4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제7대 일본 농협공제회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5년에는 제2대 주체코 일본국 특명전권대사를 역임했다.
2.1. 관료 생활
1943년 기후현에서 태어나, 도쿄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1967년 농림성에 들어갔다. 농림성이 농림수산성으로 개편된 후에는 대신관방 총무심의관, 축산국장, 경제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83년 농림수산성 식품유통국 기획과장 및 물가정책실장, 이듬해 경제국 국제부 국제기획과장, 1986년 축산국 경마감독과장, 식품유통국 사탕당류담당, 1991년 농림수산장관 관방실 비서과장, 1993년 경제국 국제부장, 1995년 관방실 총무심의관을 역임했다. 1998년 농림수산심의관에 취임하여 다카기 유키 사무차관을 보좌했다. 2001년 1월 6일 농림수산성 사무차관에 발탁되었다. 그러나 2001년 12월 발생한 소해면상뇌증(광우병)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02년 12월 26일 사무차관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농림수산대신 다케베 하지메는 "감염원 해명은 낙농가에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그렇게 서두를 필요는 없습니다. 또 다시 BSE가 발각될 테니까" 등의 망언을 하여 참의원에서 문책 결의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2.2. 퇴임 후
2002년 12월 26일 농림수산성 사무차관에서 퇴직하였다. 퇴임 직후, 일본 식육 협의회 회장인 세키야 슌사쿠로부터 농림 수산 행정 경험에 대한 조언을 요청받고 촉탁 취임을 제의받았으나, 이를 거절했다. 2004년~2005년 제4대, 2007년~2010년 제7대 일본 농협공제회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했다. 2004년에는 전국미곡거래·가격형성센터의 회장으로도 취임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체코 주재 특명전권대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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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 재임 중 2005년은 '일 EU 시민 교류의 해'에 해당하여, 오니타이코자의 일본 전통 북공연, 씨름 선수를 초청한 스모 이벤트 'Japonske Sumo v Praze', 아악·무악·성명의 공연 '창조하는 전통 2005' 등을 기획하여, 일본 문화를 소개하는 데 힘썼다. 또한, 오랫동안 체코에서 일본 문화를 소개해 온 동양학자인 비엔체슬라바 하드리치코바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서훈을 위해 노력했다. 하드리치코바의 욱일소수장 수훈에 즈음하여 "양국 관계의 긴밀화를 상징하는 일"이라는 축사를 했다. 2007년은 일 체코 국교 회복 50주년에 해당하므로, 대통령바츨라프 클라우스 등이 방일하는 등 주요 인사들의 왕래가 잇따랐다. 또한, 아시아 13개국의 주체코 대사관이 협력하여, 합동으로 각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이벤트 'Many Colours of Asia'를 처음으로 개최했다.
일본과 체코 간에 주재원을 파견하는 기업, 및 개인의 사회 보험료 부담 경감을 위해, 2007년 6월부터 체코의 노동 사회성과의 협상을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노동 사회 대신을 겸임하는 부총리페트르 네차스와의 사이에서 '사회 보장에 관한 일본국과 체코 공화국 간의 협정' 체결에 성공했다.
3. 약력
| 연도 | 내용 |
|---|---|
| 1943년 | 기후현에서 출생 |
| 1967년 | 도쿄 대학교 법학부 졸업, 농림성 입성 |
| 1976년 | 농림성 식품유통국 설탕류과 과장보좌 |
| 1977년 | 농림성 농림경제국 및 식품유통국 총무과 과장보좌 |
| 1978년 | 주미국 일본 대사관 1등 서기관 |
| 1981년 | 농림수산성 대신관방 문서과 과장보좌 |
| 1982년 | 경제기획청 조정국 조사관 |
| 1983년 | 농림수산성 식품유통국 기획과 물가대책실장 |
| 1984년 | 농림수산성 경제국 국제부 국제기획과장 |
| 1986년 | 농림수산성 축산국 경마감독과장, 식품유통국 설탕류과장 |
| 1991년 | 농림수산성 대신관방 비서과장 |
| 1993년 | 농림수산성 경제국 국제부장 |
| 1995년 | 농림수산성 대신관방 총무심의관, 축산국장 |
| 1997년 | 농림수산성 경제국장 |
| 1998년 | 농림수산심의관 |
| 2001년 | 농림수산사무차관 |
| 2002년 | 광우병 문제의 책임을 지고 농림수산성 퇴관 |
| 2004년 | 농협공제종합연구소 이사장 |
| 2005년 | 주체코 특명전권대사 |
| 2008년 | 농협공제종합연구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