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르메드 남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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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규르메드 남걀은 1717년 아버지 차도르 남걀의 사망으로 시킴 왕국의 왕위를 계승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부탄군의 잦은 침공으로 인해 수도 라브덴체의 요새화를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촌족에게 강제 노동을 부과했다. 이에 촌족은 림부족의 영역으로 도망쳤으며, 규르메드 남걀은 1733년 사망하며, 사후 아들 푼초 남걀 2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규르메드 남걀
기본 정보
존호초걀
통치 기간1716년 – 1733년
계승 순서시킴 왕국의 군주
이전차크도르 남걀
이후푼초그 남걀 2세
자녀푼초그 남걀 2세
왕조남걀 왕조
아버지차크도르 남걀
어머니알려지지 않음
출생일1707년
출생 장소알려지지 않음
사망일1733년
사망 장소알려지지 않음
매장일알려지지 않음
매장 장소알려지지 않음
서명알려지지 않음
종교불교
배우자알려지지 않음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초걀 규르메드 남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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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1717년 아버지 차도르 남걀이 사망하자 왕위를 계승했다. 부탄의 잦은 침공으로 수도 라브덴체를 요새화하려 했으나, 이 과정에서 촌족에게 강제 노동을 부과하여 반발을 샀다. 결국 촌족은 동족인 림부족 지역으로 도망쳤다.

1733년 적자 없이 사망했으나, 비구니가 임신 중이었고 사후에 아들 푼초 남걀 2세가 태어나 왕위를 계승했다.

2.1. 즉위

1717년 아버지 차도르 남걀이 사망하자 시킴 왕국의 왕위를 계승했다.

2.2. 부탄과의 갈등

규르메 남걀의 통치 기간 동안 부탄 군대가 자주 침공했기 때문에, 수도 라브덴체를 요새화하려고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촌족에게 강제 노동을 부과했고, 그들은 동족인 림부족 지역으로 도망쳤다.

2.3. 라브덴체 요새화

규르메드 남걀의 치세 동안 부탄 군이 자주 침공했기 때문에, 수도 라브덴체의 요새화를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촌족에게 강제 노동을 부과했고, 그들은 동족인 림부족의 영역으로 도망쳤다.

2.4. 촌족의 이탈

1717년 아버지 차도르 남걀이 사망하여 왕위를 계승한 규르메드 남걀은 수도 라브덴체를 요새화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촌족에게 강제 노동을 부과했고, 이에 반발한 촌족들은 동족인 림부족의 영역으로 도망쳤다.

2.5. 사망과 후계

1733년 규르메 남걀은 적자를 남기지 않고 사망했다. 그러나 규르메 남걀의 비구니가 임신 중이었고, 사후에 태어난 아들 푼초 남걀 2세가 왕위를 계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