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지나 바체비치
1. 개요
그라지나 바체비치는 폴란드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로, 1909년 우치에서 태어나 1969년 바르샤바에서 사망했다. 그녀는 바이올린, 피아노, 작곡을 공부했으며, 파리와 폴란드를 오가며 활동했다. 바체비치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작곡 활동을 이어갔으며, 종전 후에는 우치 국립 음악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그녀는 많은 상을 받았으며, 7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7개의 현악 사중주, 4개의 교향곡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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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자 -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
헨리크 비에니아프스키는 폴란드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로, 뛰어난 재능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한 연주 활동을 펼쳤으며, 바이올린 레퍼토리에 중요한 작품들을 남겨 비에니아프스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창설과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
폴란드의 클래식 바이올린 연주자 -
브로니스와프 후베르만
브로니스와프 후베르만은 폴란드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로, 10세에 요제프 요아힘에게 사사하고 유럽과 미국에서 연주 활동을 펼치며 팔레스타인 심포니 오케스트라 창단에 기여했으며, 강렬한 표현력으로 평가받았다. -
리투아니아계 폴란드인 -
아담 미츠키에비치
아담 미츠키에비치는 폴란드 낭만주의 문학의 선구자이자 국민 시인으로, 폴란드 독립 염원과 민족 정체성을 담은 《판 타데우시》, 《디아디》 등의 작품을 남겼으며, 반러시아 활동으로 추방 후 유럽에서 활동하다 콜레라로 사망하여 크라쿠프에 안장되었다. -
리투아니아계 폴란드인 -
L. L. 자멘호프
러시아 제국 출신 안과 의사 L. L. 자멘호프는 국제어 에스페란토를 창시하고 에스페란토 운동에 헌신하며 관련 저작물을 번역하는 데 몰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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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악기)
공은 금속으로 제작된 타악기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의식, 신호, 음악 연주 등에 사용되며, 형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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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회의
국무회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을 의장으로, 예산, 법률안, 외교, 군사 등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중요한 기관이며,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으로 구성되고, 정례회의는 매주 1회, 임시회의는 필요에 따라 소집된다.
2. 생애
바체비치는 우치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빈센티 바체비치(Wincenty Bacewicz)와 작곡가였던 비타우타스는 리투아니아인으로, 다른 형제 키에슈투트는 폴란드인으로 정체성을 가졌다.
학업을 마친 후, 독주자, 작곡가, 심사위원으로 많은 행사에 참여했다. 1936년부터 1938년까지 폴란드 국립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였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바르샤바에 살면서 비밀 지하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1936년 결혼하여 1942년 훗날 화가가 된 딸 알리나 비에르나츠카를 낳았다. 바르샤바 봉기 이후 가족과 함께 루블린으로 피난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바체비치는 우치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빈센티 바체비치(Wincenty Bacewicz)는 그라지나에게 처음으로 피아노와 바이올린 레슨을 가르쳤다. 1928년 바르샤바 음악원에 들어가 유제프 야르젭스키에게 바이올린을, 유제프 투르친스키에게 피아노를, 카지미에시 시코르스키에게 작곡을 배웠고, 1932년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로 졸업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장학금을 받아 파리의 에콜 노르말 드 뮈지크에서 1932년부터 1933년까지 나디아 불랑제(작곡)와 앙드레 투레(바이올린)에게 배웠다. 우치에서 가르치기 위해 잠시 폴란드로 돌아왔지만, 1934년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카를 플레슈에게 배우기 위해 다시 파리로 갔다.
2.2. 경력 및 작품 활동
우치에서 태어난 바체비치는 아버지 빈센티 바체비치에게 처음으로 피아노와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다. 1928년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유제프 야르젭스키에게 바이올린을, 유제프 투르친스키에게 피아노를, 카지미에시 시코르스키에게 작곡을 배웠고, 1932년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로 졸업했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장학금을 받아 파리의 에콜 노르말 드 뮈지크에서 나디아 불랑제(작곡)와 앙드레 투레(바이올린)에게 1932년부터 1933년까지 배웠다. 우치에서 잠시 가르치다가 1934년 카를 플레슈에게 배우기 위해 파리로 돌아갔다.
학업을 마친 후, 바체비치는 독주자, 작곡가, 심사위원으로 많은 행사에 참여했다. 1936년부터 1938년까지 그제고르츠 피텔베르크가 지휘하던 폴란드 국립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며 자신의 음악을 선보일 기회를 얻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바르샤바에 살면서 비밀 지하 콘서트를 열어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모음곡을 초연하는 등 작곡 활동을 계속했다.
1936년 결혼하여 1942년 화가로 인정받은 딸 알리나 비에르나츠카를 낳았다. 바르샤바 봉기 이후 가족과 함께 루블린으로 피난했다.
전쟁 후, 우치 국립 음악원 교수로 임명되었다. 이 시기에 많은 상과 의뢰를 받으며 작곡 중심으로 음악 활동을 전환했다. 1954년 교통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에는 작곡에만 전념했다. 1969년 바르샤바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2.3. 주요 수상 경력
| 연도 | 수상 내역 |
|---|---|
| 1933년 | 파리 작곡가 협회 "직업 여성 지원" 콩쿠르 1등상 (목관 5중주곡) |
| 1936년 | 폴란드 음악 출판 협회 작곡 콩쿠르 2등상 (오보에,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트리오), 가작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신포니에타) |
| 1949년 | 바르샤바 폴란드 작곡가 연맹 주최 쇼팽 작곡 콩쿠르 2등상 (피아노 협주곡, 1등상 없음), 노동 훈장 2급 |
| 1951년 | 리에주 국제 작곡 콩쿠르 1등상 (현악 4중주 4번) |
| 1953년 | 폴란드 부활 훈장 기사 십자훈장 |
| 1955년 | 폴란드 부활 훈장 사령관 십자훈장, 폴란드 인민 공화국 10주년 기념 메달 |
| 1956년 | 리에주 국제 작곡 콩쿠르 2등상 (현악 5중주 5번) |
| 1959년 | 노동 훈장 1급 |
| 1960년 | 파리 국제 작곡가 회의 3위 (현악, 트럼펫, 타악기를 위한 음악) |
| 1965년 | 브뤼셀 국제 작곡 콩쿠르 벨기에 정부상, 금메달 (바이올린 협주곡 7번) |
3. 작품 목록
그라지나 바체비치는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7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반주가 있는 바이올린 소나타 5개,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3개, 바이올린 4중주, 7개의 현악 사중주, 2개의 피아노 오중주를 작곡했다. 관현악 작품으로는 4개의 교향곡(1945, 1951, 1952, 1953), 현을 위한 교향곡(1946), 현재는 유실된 초기 교향곡 2개가 있다.
주요 작품 목록은 다음과 같다.
3.1. 기악곡
그라지나 바체비치는 바이올린을 위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관현악 작품으로는 4개의 번호가 매겨진 교향곡(1945, 1951, 1952, 1953)과 현을 위한 교향곡(1946), 그리고 현재는 유실된 초기 교향곡 2개가 있다.
피아노곡으로는 다음의 작품들이 있다.
* 피아노를 위한 네 개의 전주곡(1924)
* 피아노를 위한 어린이 모음곡(1933)
* 피아노를 위한 세 개의 그로테스크(1935)
* 피아노 소나타 1번(1949) (미출판)
* 피아노 소나타 2번 (1953년 초연)
* 피아노를 위한 론디노(1953)
* 피아노를 위한 두 개의 이중 음표 에튀드(1955)
*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나(1955)
* 피아노를 위한 10개의 콘서트 에튀드(1956)
* 피아노를 위한 작은 삼부작(1965)
* 오르간을 위한 에스키스(1966)
* 피아노를 위한 물고기(1967)
그 외에도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폴란드 기상곡(1949),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기상곡 2번(1952), 바이올린을 위한 4개의 기상곡(비올라로도 편곡됨)(1968) 등이 있다.
3.1.1. 바이올린곡
바체비치는 많은 작품에서 바이올린을 사용했다. 7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 반주의 바이올린 소나타 5개,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3개(1929년 작곡된 번호 없는 초기 소나타 포함), 바이올린 4대를 위한 사중주, 7개의 현악 사중주, 2개의 피아노 오중주 등이 있다.
바체비치의 주요 바이올린곡은 다음과 같다.
* 바이올린 소나타 1번 《실내 소나타》(1945년)
* 바이올린 소나타 4번 (1949년)
* 바이올린 소나타 5번 (1951년)
* 폴란드 무곡 (1948년)
* 멜로디와 기상곡 (1949년)
* 오베레크 1번 (1949년)
* 오베레크 2번 (1952년)
* 《파르티타》(1955년)
* 자장가
3.2. 실내악곡
그라지나 바체비치의 많은 작품에는 바이올린이 등장한다. 여기에는 7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피아노를 동반한 바이올린 소나타 5개,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3개 (1929년의 초기, 번호가 없는 소나타 포함), 4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사중주, 7개의 현악 사중주, 2개의 피아노 오중주가 있다.
3.3. 관현악곡
다음은 그라지나 바체비치의 관현악 작품 목록이다.
* 서곡 (1943)
* 교향곡 1번 (1945)
*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교향곡 (1946)
*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1948) – 1950년 폴란드 국립상 수상
*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폴란드 기상곡 (1949)
* 교향곡 2번 (1951)
* 교향곡 3번 (1952)
* 교향곡 4번 (1953) – 1955년 폴란드 문화부 장관상 수상
* 오케스트라를 위한 파르티타 (1955)
* 오케스트라를 위한 변주곡 (1957)
* 현악기, 트럼펫, 타악기를 위한 음악 (1958) – 1960년 파리 유네스코 국제 트리뷴 3등상
* Pensieri notturni, 실내 관현악 (1961)
* 교향악단을 위한 협주곡 (1962)
* 3악장의 교향곡 (1965)
* 디베르티멘토, 현악 오케스트라 (1965)
* 실내 관현악을 위한 Contradizione (1966) – 뉴햄프셔주 하노버 호프킨스 예술 센터 의뢰
* In una parte (1967)
3.4. 협주곡
바체비치는 바이올린을 위한 곡을 많이 작곡했다. 7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했으며, 주요 협주곡은 다음과 같다.
* 바이올린 협주곡 3번 (1948) – 1955년 폴란드 문화부장관상을 수상했다.
* 바이올린 협주곡 5번 (1954)
* 바이올린 협주곡 7번 (1965) – 1965년 벨기에 정부상, 금메달 –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브뤼셀)
비올라를 위한 협주곡도 작곡했다.
* 비올라 협주곡 (1968)
3.5. 성악곡 (관현악 반주)
* 《장미》(Róże, 1934)
* 《말해줘, 내 사랑》(Mów do mnie, o miły, 1936)
* 테너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세 개의 아랍 노래 (1938)
* 《여기가 밤이야》(Oto jest noc, 1947)
* 《그림자 한 줄기》(Smuga cienia, 1948)
* 1948년 런던 올림픽 예술 대회에 출품되었고 1948년 폴란드 국가상을 받은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올림픽 칸타타 (1948) - 피오트르 바리카의 17세기 희극을 바탕으로 함.
* 《작별》(Rozstanie, 1949)
* 《크고 맑은 물 위에서》(Nad wodą wielką i czystą, 1955)
* 《큰 종과 작은 종》(Dzwon i dzwonki, 1955)
* 《머리가 아파요》(Boli mnie głowa, 1955)
* 《작은 까치》(Sroczka, 1956)
* 야기엘로니안 대학교 600주년 기념 위촉 작품인 합창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칸타타 아크로폴리스 (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