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쿠치 가네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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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기쿠치 가네토모는 1407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기쿠치 씨의 당주가 된 인물이다. 그는 무로마치 막부로부터 히고 슈고직에 임명되었으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막부에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다. 쇼니 미쓰사다와 연합하여 오오치 모리미를 공격하기도 했다. 장남 모치토모와의 갈등으로 가독을 빼앗기고 사시키로 추방되었으며, 실의 속에 1444년에 사망했다. 한편, 《조선왕조실록》에는 가네토모 시대에 조선과 외교 관계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기록이 있다.

기쿠치 가네토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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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오에이 13년(1407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독(家督)을 이어받아 기쿠치 씨의 당주가 되었다. 남북조 합일 이후 무로마치 막부는 그를 히고 슈고로 임명했지만, 그는 막부에 대해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다. 에이쿄 2년(1431년)에는 쇼니 미쓰사다(少弐満貞)와 연합하여 오우치 모리미(大内盛見)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막부에 대한 태도 문제와 차남 다다치카(忠親) 편애 문제로 장남 모치토모(持朝)와 대립하다 가독을 빼앗기고 아시키타군(蘆北郡) 사시키(佐敷)로 추방되었다. 실의에 빠진 가네토모는 분안 원년(1444년) 3월 8일에 사망했다.

한편, 한국의 《조선왕조실록》 태종 17년(1417년) 기록에는 가네토모가 보낸 사신이 조선 조정을 방문했다는 내용이 남아 있어, 당시 조선과의 교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1. 가독 상속과 막부와의 관계

오에이 13년(1407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가독을 상속받아 기쿠치 씨의 당주가 되었다.

남북조 합일 이후 무로마치 막부히고 슈고였던 아소 씨(阿蘇氏)가 기쿠치 씨에게 세력에서 밀리는 상황을 고려하여 가네토모를 히고 슈고직에 임명하였다. 그러나 가네토모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무로마치 막부에 대해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다. 에이쿄 2년(1431년)에는 쇼니 미쓰사다(少弐満貞)와 연합하여 오우치 모리미(大内盛見)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이후 막부에 대한 태도를 둘러싼 의견 대립과 차남 다다치카(忠親)를 편애하면서 장남 모치토모(持朝)와 대립하게 되었다. 결국 모치토모에게 가독을 빼앗기고 아시키타군(蘆北郡) 사시키(佐敷)로 쫓겨났다. 가네토모는 실의에 빠져 분안 원년 3월 8일에 사망했다.

2.2. 아들들과의 갈등 및 최후

무로마치 막부에 대한 태도를 둘러싸고 장남 모치토모와 대립하였다. 또한 차남인 타다치카(忠親)를 편애하여 모치토모와의 갈등이 깊어졌고, 결국 모치토모와 다투어 가독(家督)을 빼앗기고 아시키타군 사시키로 추방당했다. 실의 속에 분안 원년(1444년) 3월 8일에 사망하였다.

2.3. 조선과의 관계

한국의 《조선왕조실록》 태종 17년(1417년) 6월 11일(을미) 기록에는 국지전(菊池殿, 기쿠치도노)의 사송인(使送人)이 조선 조정의 조아례(朝衙禮)에 참여하고 돌아갔다는 내용이 있다. 이 기록에 등장하는 '국지전'은 당시 기쿠치 가문의 당주였던 가네토모를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