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미자
1. 개요
김구미자는 일본에서 활동한 한국계 배우이다. 도쿄 경제 대학 단기 대학부를 졸업하고, 극단 68/71 흑색 텐트와 신주쿠 량산박에서 활동하며 연극 배우로 경력을 시작했다. 영화 《애란》과 《미친 사랑의 노래》에 출연하여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며, 이후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여 통역 없이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신주쿠 량산박 퇴단 후에도 다양한 무대, 드라마, 영화에 출연했으나 위암으로 투병하다 2004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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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김구미자 |
|---|---|
| 원어명 | 金久美子 |
| 본명 | (확인 필요) |
|---|---|
| 출생일 | 1958년 10월 11일 |
| 출생지 | 일본 나가노현 |
| 사망일 | 2004년 10월 1일 (향년 45세) |
| 사망지 | (확인 필요) |
| 국적 | 대한민국 |
| 직업 | 배우 |
| 활동 기간 | (확인 필요) |
| 배우자 | (확인 필요) |
|---|---|
| 자녀 | (확인 필요) |
| 민단 신문 기사 | 미소로 질주한 45년 김구미자 씨 억울한 죽음(04.10.20) |
|---|---|
| 가네무라 구미코 (일본어 표기) | 金村久美子 (かねむら・くみ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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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경제대학 동문 -
스가 시카오
스가 시카오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음악 프로듀서, DJ, 라디오 진행자이며, 펑크, 소울,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융합한 음악 스타일로 활동하며, SMAP, KAT-TUN, 아라시 등 다른 아티스트에게 곡을 제공하는 작사, 작곡가로도 활동했다. -
도쿄 경제대학 동문 -
나가이 겐지
나가이 겐지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사진작가로, 분쟁 지역을 취재하다가 미얀마 민주화 운동 취재 중 군인에게 피격되어 사망했으며, 그의 사망 장면 사진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
재일 한국인 배우 -
조민화
조민화는 도지샤 대학 럭비부 출신 일본 배우로, 드라마와 영화에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
재일 한국인 배우 -
홍인순
일본 효고현 출신 배우 홍인순은 오사카 예술 대학 졸업 후 NHK 아침 드라마 "아구리"로 데뷔하여 연극 "언덕 위의 집"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며, 드라마, 영화, 라디오 드라마와 NHK 교육 텔레비전 "안녕하세요! 한글 강좌" 등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했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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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2. 생애 및 경력
도쿄 경제 대학 단기 대학부를 졸업하고, 1978년부터 사토 신이 주재하는 극단 68/71 흑색 텐트에서 활동했다. 1987년 김수진이 주재하는 극단 신주쿠 량산박에 참가하여 『천년의 고독』 등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1990년 한국 영화 《미친 사랑의 노래》에 출연하여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영화 《애란》 출연을 계기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하여, 1년 정도 만에 통역이 필요 없어졌다.
1996년 신주쿠 량산박을 퇴단한 후에도 다양한 무대와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에 출연했다. 2003년 암이 발견되어 위 절제 수술을 받았다. 2004년 3월, 정의신이 쓴 연극 아시안 스위츠에 출연했으나, 이것이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같은 해 10월 1일 위암으로 사망했다.
정의신은 재일 한국인 가족을 그린 자신의 작품인 연극 야키니쿠 드래곤의 서울 공연(2008년) 때, 김구미자의 영정을 가지고 방한했다.
2.1. 초기 활동
도쿄 경제 대학 단기 대학부를 졸업하고, 1978년부터 사토 신이 주재하는 극단 68/71 흑색 텐트에서 활동하였다. 1987년 김수진이 주재하는 극단 신주쿠 량산박에 참가하여 중심적인 배우로서 『천년의 고독』 등의 작품에 주연했다.
2.2. 신주쿠 량산박 활동
도쿄 경제 대학 단기 대학부를 졸업하고, 1978년부터 사토 신이 이끌던 극단 68/71 흑색 텐트에서 활동했다. 1987년에는 김수진이 이끌던 극단 신주쿠 량산박에 합류하여, 『천년의 고독』 등의 작품에서 주연을 맡는 등 중심 배우로 활동했다.
2.3. 한국 영화 출연 및 수상
1990년 한국 영화 《미친 사랑의 노래》에 출연하여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4. 신주쿠 량산박 퇴단 이후
1996년, 김수진이 이끌던 극단 신주쿠 량산박을 퇴단했다. 퇴단 이후에도 다양한 무대와 텔레비전 드라마, 영화에 출연하며 활동을 이어갔다.
2003년 암이 발견되어 위 절제 수술을 받았다. 2004년 3월, 김구미자의 복귀를 바라는 연극인들이 기획하고, 흑색 텐트 시절부터 함께 활동했던 정의신이 쓴 연극 아시안 스위츠를 통해 무대에 섰으나, 이 작품이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같은 해 10월 1일,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의신은 재일 한국인 가족을 소재로 한 자신의 희곡 야키니쿠 드래곤의 2008년 서울 공연 당시, 김구미자의 영정을 가지고 한국을 방문했다.
2.5. 투병과 사망
2003년에 암이 발견되어 위를 절제했다. 이듬해 3월, 김구미자의 부활을 바라는 연극인들이 기획하고, 흑색 텐트 시대부터 동료였던 정의신이 쓴 『아시안 스위츠』에 출연했는데, 이것이 마지막 무대가 되었다。 2004년 10월 1일에 위암으로 사망했다。
정의신은 재일 한국인 가족을 그린 자신의 작품인 연극 『야키니쿠 드래곤』의 서울 공연(2008년) 때, 김구미자의 영정을 가지고 방한했다。
3. 수상 내역
| 연도 | 상 이름 | 작품 |
|---|---|---|
| 1990년 | 제35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최우수 여우주연상 | 미친 사랑의 노래 |
| (수상 연도 미상) | 제17회 청구상 | (수상 작품 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