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이 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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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가이 겐지는 일본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사진작가로, 1997년부터 APF 통신사 계약 기자로 활동하며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팔레스타인, 이라크 등 분쟁 지역을 취재했다. 2007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취재하던 중 군인에게 피격되어 사망했으며, 그의 사망 장면이 담긴 사진은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의 사망 이후 미얀마 언론 협회는 그를 기리는 상을 제정했고, 2023년에는 그가 사용하던 카메라가 반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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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이 겐지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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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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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나가이 겐지 |
출생일 | 1957년 8월 27일 |
출생지 | 일본, 에히메현, 이마바리시 |
사망일 | 2007년 9월 27일 |
사망지 | 미얀마, 양곤 |
사망 원인 | 총상 |
직업 | 보도 사진 작가 |
알려진 이유 | 사프란 혁명에서 사망한 유일한 외국 국적자 |
경력 | |
활동 기간 | 알 수 없음 |
활동 내용 | 알 수 없음 |
사생활 | |
배우자 | 없음 |
가족 관계 | 알 수 없음 |
기타 정보 | |
관련 작품 | 『반 롬사이』 『급증하는 에이즈 고아 ~타이·75000명의 아이들~』(ETV2001) 『이라크 전쟁 바그다드 함락』 『집에 불붙은 원폭의 불』 |
소속사 | 알 수 없음 |
웹사이트 | 알 수 없음 |
2. 생애
나가이 겐지는 일본 에히메현 이마바리시에서 성장했으며, 에히메현립 이마바리니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도쿄 경제 대학(東京経済大学)을 졸업하고 1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경력을 시작하기 전에 아르바이트를 했다.[3] 도쿄의 AFP 통신사에서 계약직 사진기자로 일하면서[2] 중동의 위험한 지역을 취재했다.[9] 199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팔레스타인, 이라크 등 분쟁 지역에서 활동했다.[3][4]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미얀마 군사 정권에 반대하는 비구들의 시위가 시작되기 이틀 전에 미얀마에 도착했다.[2][5] 이 시위는 연료 가격 인상으로 시작되었지만, 수만 명 규모로 확대되어 불교 승려들이 양곤에서 민주화 시위를 주도했다.[6] ''더 타임스''에 따르면, 나가이의 동료는 그가 "아무도 가고 싶어하지 않는 곳"을 취재하는 데 집요했다고 전했다.[13]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일본 에히메현 이마바리시에서 성장했으며, 에히메현립 이마바리니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도쿄 경제 대학(東京経済大学) 경제학부에 진학했고, 졸업 후 1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했다. 원래는 뮤지션을 지망했다. 일본으로 귀국하여 영상 저널리스트 (카메라맨, 리포터, 집필가의 복합 직종)로서 활동하기 전에는 아르바이트로 생활했다.[3] 니혼 TV 보도 특수 프로젝트의 디렉터 등을 거쳐, 1997년부터 APF 통신사 (도쿄도미나토구아카사카에 소재)의 계약 기자로 활동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 누군가가 가야 한다"고 말하며 팔레스타인 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공습 등을 현지 취재하며 전쟁의 본질을 포착한 영상을 계속 촬영했다.[3][4]2. 2. 저널리스트 경력
도쿄 경제 대학() 졸업 후, 1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했다. 일본으로 돌아온 후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경력을 시작했다.[3] 도쿄의 AFP 통신사에서 계약직 사진기자로 일하면서[2] 중동의 위험한 지역으로 가는 것에 익숙해졌다.[9] 199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팔레스타인, 이라크에서 임무를 수행하며 전쟁의 본질을 포착한 사진을 찍었다.[3][4]니혼 TV 보도 특수 프로젝트 디렉터 등을 거쳐, 1997년부터 APF 통신사(도쿄도미나토구아카사카 소재)의 계약 기자로 활동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곳에 누군가가 가야 한다"고 말하며 팔레스타인 분쟁,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공습 등을 현지 취재하며 전쟁의 본질을 포착한 영상을 계속 촬영했다.
3. 미얀마 민주화 운동 취재 및 사망
나가이 겐지는 1962년 쿠데타로 민주 정부를 전복한 이후 미얀마를 통치해 온 군사 정권에 반대하는 비구들을 취재하기 위해 미얀마에 도착했다.[2] 원래 시위는 정부의 연료 가격 인상으로 시작되었지만, 수만 명 규모의 시위로 확대되었고, 불교 승려들이 양곤의 거리에서 민주주의 시위를 주도했다.[6]
나가이는 일본 에히메현 이마바리시 출신으로 도쿄 경제 대학(東京経済大学)을 졸업하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도쿄의 AFP 통신사에서 계약직 사진기자로 일했다.[3][2]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팔레스타인, 이라크 등 위험 지역에서 취재 경험이 있었다.[3][4] ''더 타임스''에 따르면, 나가이의 동료는 그가 기사를 취재하는 데 있어서 "집요했다"고 말하며, "아무도 가고 싶어하지 않는 곳"으로 여행해야 한다고 믿었다고 한다.[13]
2007년 9월 27일, 나가이는 양곤 시내 쉐다곤 파고다에서 몇 블록 떨어진 트레이더스 호텔 근처에서 시위를 촬영하던 중 군인들이 시위대에 발포하여 사망했다.[7][8]
3. 1. 2007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
나가이는 2007년 9월 25일 반정부 시위를 취재하기 위해 관광 비자로 미얀마에 입국했다.[24] 이틀 뒤인 9월 27일, 양곤의 술레 샹그릴라 호텔 (구 트레이더스 호텔) 근처 술레 파고다에서 시위를 촬영하던 중 군의 치안 부대가 시위대에 발포했을 때 총에 맞아 사망했다.[24]미얀마 정부는 처음에 치안 부대가 발포했을 때 앞에서 날아온 유탄에 맞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찍힌 비디오는 군인이 뒤에서 다가와 지근 거리에서 나가이를 쏜 것으로 보이는 모습을 포착했다.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총탄은 왼쪽 허리 등 부분에서 오른쪽 윗배 부분으로 관통하여 간을 손상시켜 대량 출혈을 일으켰다.[25]
TV 보도에 따르면 정부 감시자가 나가이를 따라다니며 휴대 전화로 그의 행동을 병사에게 전달했고, 이 감시자가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지적도 있다. 나가이가 사용한 카메라는 미얀마 정부에 압수되었으며, 일본 측은 카메라 반환을 요구해왔다. 니혼 TV의 기노시타 코타 등은 "미얀마 군에 의한 나가이 씨 살해에 항의하는 모임"을 결성하여 카메라와 테이프 반환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여 13만 7천 명 이상의 서명을 주일본 미얀마 대사관에 전달했다. 반환된 유품 중 수첩은 일부가 찢겨져 있어 미얀마 정부가 기록을 은폐했다는 지적도 있다.
2008년 9월 28일, 마이니치 신문은 미얀마 군 기밀 문서를 통해 군 당국이 시위 현장의 카메라 소지자를 "최우선 사격 대상자"로 규정하고 총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보도했다.[25] 사건 발생 15년 후인 2023년 4월, 카메라가 마침내 반환되었다.[26] 영상에는 나가이가 촬영을 시작한 후 국군이 도착하고 사람들이 당황하며 움직이는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27]
3. 2. 취재 및 사망 경위
나가이 겐지는 2007년 9월 25일부터 미얀마에서 반정부 시위를 취재하고 있었다.[14] 9월 27일, 양곤 시내 쉐다곤 파고다 부근 트레이더스 호텔 근처에서 시위를 촬영하던 중, 미얀마군이 시위대에 발포하여 나가이가 사망하고 다른 외국인 기자도 부상을 입었다.[7][8]초기 보도와 미얀마 정부는 나가이가 빗나간 총알에 맞았다고 설명했다.[17] 그러나 일본 텔레비전에서 입수한 영상에는 미얀마 군인이 나가이를 땅에 밀어 넘어뜨린 후 근거리 사격으로 총을 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9] 아드리 라티프가 촬영한 사진에는 군인이 나가이 위에 서 있었고, 나가이는 바닥에 엎드린 채 카메라를 움켜쥐고 있었다. 이 사진은 2007년 9월 28일자 ''뉴욕 타임스'' 1면에 게재되었다. 이후 촬영된 사진에는 군인이 떠나간 후 나가이의 시신이 거리에 널브러져 있었다. 군인의 패치로 볼 때, 이 사건의 책임자는 당시 양곤에서 군중 통제를 담당했던 경보병 사단 (LID 66 사단으로 추정) 소속으로 보인다. 미얀마 주재 일본 대사관 의사가 나가이를 살해한 총알의 궤적을 확인한 결과, 총알은 나가이의 오른쪽 하단에서 가슴으로 들어가 심장을 관통한 후 등에서 나왔다.[9]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총탄은 왼쪽 허리 등 부분에서 오른쪽 윗배 부분으로 관통하여 간을 손상시켜 대량 출혈을 일으켰다고 한다.
10월 8일, 미얀마 군인이 쓰러진 나가이의 비디오 카메라를 압수하는 모습이 담긴 새로운 영상이 일본 뉴스 프로그램에서 공개되었다.[10][11] 아드리 라티프의 사진은 나가이가 사망하기 전 길바닥에 엎드린 모습을 담고 있으며, 2008년 퓰리처상 속보 사진 부문을 수상했다.[12]
TV 보도에 따르면, 정부 감시자가 나가이 겐지 주변을 따라다녔다고 한다. 감시자는 미얀마에서 드물게 휴대 전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복 치안 부대원으로 추정되며, 나가이의 모습을 휴대 전화 카메라로 찍는 모습도 영상에 나타났다. 시위대 일부가 총격을 받는 곳을 나무 그늘에서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감시자가 나가이의 행동을 병사에게 휴대 전화로 일일이 전달했으며, 미얀마 정부 감시자가 병사에게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지적도 있다.
나가이가 촬영에 사용한 카메라는 미얀마 정부에 압수되었고, 일본 측은 카메라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나가이와 생전 친분이 깊었던 니혼 TV의 기노시타 코타 등이 결성한 "미얀마 군에 의한 나가이 씨 살해에 항의하는 모임"은 미얀마 정부에 나가이의 카메라와 테이프 반환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여, 4주기인 2010년 9월 27일까지 총 13만 7천 명 이상의 서명을 모아 주일본 미얀마 대사관에 전달했다. 처음에는 주일본 미얀마 대사관이 서명부 제출에 무반응이었고, 이 모임은 게이트 틈새로 서명부를 투입했지만, 4주기 제출 때 처음으로 대사관 직원이 일본인 직원과 함께 게이트 밖으로 나와 직접 서명부를 받았다. 반환된 유품 중에는 수첩이 있었지만, 일부가 찢겨 있어 카메라와 함께 어떤 기록이 남아 있었고, 미얀마 정부가 이를 은폐했다는 지적이 있다.
나가이 겐지의 1주기 다음 날인 2008년 9월 28일, 마이니치 신문은 미얀마 군 기밀 문서에서 군 당국이 병사에게 시위 현장에 있는 카메라 소지자를 총격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최우선 사격 대상자"로 규정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이는 나가이의 총격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군의 조직적인 지시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25]
사건 발생 15년 후인 2023년 4월, 카메라가 마침내 반환되었다.[26] 영상에는 나가이가 교차로에서 촬영을 시작한 후, 국군이 도착하고 사람들이 당황하며 움직이고, 아이가 보도로 달려가는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27]
3. 3. 사망 이후의 상황
나가이는 2007년 9월 25일부터 미얀마에서 반정부 시위를 취재하고 있었다.[14] 9월 27일, 양곤 시내의 쉐다곤 파고다에서 몇 블록 떨어진 트레이더스 호텔 근처에서 시위를 촬영하던 중 군인들이 시위대에 발포하여 사망했다.[7][8]초기 보도에서는 빗나간 총알에 맞았거나 정면에서 총에 맞았을 수도 있다고 전해졌으나,[17] 일본 텔레비전에서 입수한 영상은 미얀마 군인이 나가이를 땅에 밀어 넘어뜨린 후 근거리 사격으로 총을 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9] 미얀마 정부는 "빗나간 총알"이라고 주장했지만, 일본 대사관에서 확인한 결과 총알은 나가이의 오른쪽 하단에서 가슴으로 들어가 심장을 관통한 후 등에서 나왔다.[9]
아드리 라티프가 촬영한 사진에는 군인이 나가이 위에 서 있었고, 나가이는 바닥에 엎드린 채 카메라를 움켜쥐고 있었다. 이 사진은 2007년 9월 28일자 ''뉴욕 타임스'' 1면에 게재되었고, 2008년 퓰리처상 속보 사진 부문을 수상했다.[12]
10월 8일, 미얀마 군인이 쓰러진 나가이의 비디오 카메라를 압수하는 모습이 담긴 새로운 영상이 일본 뉴스 프로그램에서 공개되었다.[10][11]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총탄은 왼쪽 허리 등 부분에서 오른쪽 윗배 부분으로 관통하여 간을 손상시켜 대량 출혈을 일으켰다.
TV 보도에 따르면 정부 감시자가 나가이 주변을 따라다녔으며, 휴대 전화를 가진 사복 치안 부대원으로 추정된다. 감시자는 나가이의 행동을 병사에게 휴대 전화로 전달했고, 미얀마 정부 감시자가 병사에게 사살 명령을 내렸다는 지적도 있다.
나가이가 촬영에 사용한 카메라는 미얀마 정부에 압수되었으며, 일본 측은 카메라 반환을 요구했다. 니혼 TV의 기노시타 코타 등은 "미얀마 군에 의한 나가이 씨 살해에 항의하는 모임"을 결성하여 카메라와 테이프 반환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벌여 13만 7천 명 이상의 서명을 주일본 미얀마 대사관에 전달했다.
2008년9월 28일, 마이니치 신문은 미얀마 군 기밀 문서에서 군 당국이 병사에게 시위 현장에 있는 카메라 소지자를 총격하라는 지시를 내렸으며, "최우선 사격 대상자"로 규정했다고 보도했다.[25] 이는 나가이의 총격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군의 조직적인 지시에 의한 것임을 시사한다.
사건 발생 15년이 지난 2023년 4월, 카메라가 마침내 반환되었다.[26] 영상에는 나가이가 교차로에서 촬영을 시작한 후, 국군이 도착하고 사람들이 당황하며 움직이는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27]
4. 나가이 겐지 사망에 대한 반응과 영향
사건 발생 16년 후인 2023년, 나가이 겐지의 카메라와 촬영 영상이 방콕에서 그의 여동생 노리코에게 반환되었다. 영상에는 무장 군인이 시위대에 도착하는 것을 보도하는 나가이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병사가 나가이의 가슴에 치명적인 총격을 가했다.[1]
4. 1. 국제 사회의 반응
국경 없는 기자회는 나가이의 살해를 규탄하며, 나가이가 총에 맞았을 때 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그를 언론인으로 특정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 워싱턴 D.C. 지부의 책임자인 루시 모리용은 나가이가 "거리에서 죽도록 내버려졌다"고 말했다.[13][28] 일본 외국 특파원 협회도 미얀마 정부와 치안 부대의 나가이 살해를 포함한 폭력 사용을 비난했다.[29]일본의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나가이의 죽음을 "극도로 유감스럽다"고 애도했고, 마치무라 노부타카 관방장관은 애도와 조의를 표했다.[17] 마치무라 장관은 "우리는 미얀마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며 (사망에 대한) 조사를 요구한다. 우리는 (미얀마가) 그 나라에 있는 일본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14] 고무라 마사히코 일본 외무상은 일본이 나가이 겐지의 죽음에 대해 미얀마에 책임을 묻는다고 밝혔다. 고무라에 따르면, 미국의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그에게 "국제 사회는 평화로운 시위대가 살해되거나 부상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14] 1988년 9월 28일, 고무라 마사히코는 유엔 본부에서 미얀마 외무상 냔 윈을 만났을 때 나가이 살해에 대해 항의했다. 회담에서 냔 윈은 나가이의 죽음에 대해 사과했다.[15]
냔 윈은 공식적으로 사과했지만, 1988년 10월 13일 정부 소유의 신문인 ''미러''에 실린 기사는 사건에 대한 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기사는 나가이가 적절한 언론 비자 대신 관광 비자를 사용하여 입국했으며, 미얀마 내에서 뉴스 취재 허가를 받지 못한 사진기자를 비난했다. 기사는 계엄령이 내려진 시기에 사건이 발생했으며, 군인들이 아시아인 외모의 유사성 때문에 미얀마 시민과 일본인을 구별할 수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16] 미얀마 국영지 치에몬은 1988년 10월 13일 자 기사에서 "관광 비자로 입국했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 언론인으로 활동하려면 적절한 신청을 해야 했다"라고 비판했다.
나가이의 아버지 히데오는 언론에 "나는 미얀마 당국과 정부가 그런 조치에 의존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나는 그들이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막기를 바란다"고 말했다.[17] 고무라 마사히코 일본 외무상에 따르면, 일본은 미얀마에 대한 개발 원조를 줄이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9][18][19]
"미얀마 군대의 나가이 씨 살해에 항의하는 그룹"은 나가이의 살해에 항의하고 그의 카메라와 테이프 반환을 청원하기 위해 일본 언론인, 지식인, 유명인사에 의해 설립되었다. 1988년 11월까지 이 그룹은 주로 일본에서 2만 명의 서명을 수집했다. 1988년 11월 26일, 이 그룹은 웹사이트에 영어 버전의 서한을 게시하고 국제적으로 서명을 수집하기 시작했다.[20]
1988년 12월 7일, 유엔 인권 이사회의 Paulo Sérgio Pinheiro|파울루 세르지우 피네이루영어 특별 보고관은 미얀마 군사 정권의 민주화 요구 시위 무력 탄압으로 인한 희생자를 나가이를 포함하여 31명으로 발표하고, 군사 정권이 발표한 15명이라는 숫자를 부정했다.
1988년 4월 7일, 로이터 통신 사진 작가 아드리스 라티프가 촬영한 사진으로 나가이가 사살된 장면이 퓰리처상(속보 사진 부문)에 선정되었다.[30]
4. 2. 나가이 겐지 상 제정
미얀마 언론 협회는 나가이 겐지를 기리는 상을 제정했다. 이 상은 미얀마에 대한 진실을 보도한 개인에게 수여한다. 2009년 첫 번째 상은 미얀마 여성 언론인 에인트 카잉 우에게 수여되었다.[21]5. 영상 작품
- https://web.archive.org/web/20070927144416/http://www.apfnews.com/video/iraq1mac.asx 나가이의 이라크 전쟁 다큐멘터리 영상. 파트 1 (비디오) – http://www.apfnews.com/ APF 통신사
- http://www.dailymotion.com/video/x3302m_kenji-nagai-shot-by-burmese-soldier_news 나가이 겐지, 미얀마 군인에게 피격 (비디오) at 데일리모션
- "반롬사이" (2000년, 13분)
: 부모로부터 HIV에 감염된 고아들이 사는 타이 치앙마이 교외의 시설 "반롬사이"를 방문하여 아이들과 시설 스태프의 생활을 취재한 다큐멘터리 작품.
- ETV2001 "급증하는 에이즈 고아 ~ 타이 · 75000명의 아이들 ~" (2001년, 44분)
: 위 작품과 동일한 테마를 직접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스튜디오에서 해설, 보고하는 프로그램.
- "이라크 전쟁 바그다드 함락" (2003년, 54분)
: 미군에 의한 바그다드 진공 전후의 시가지를 촬영한 현지 보고. 수술을 받은 이라크 소년을 위해 암만에서 바그다드까지 대량의 기저귀를 운반하는 에피소드가 포함되어 있다.
- "집에 켜진 원폭의 불" (2004년, 16분)
: 원폭 투하 후 히로시마에서 불을 손난로로 옮겨 가져온 전직 병사를 찾아가 피폭 당시의 상황과 피폭자 자신의 전후 갈등에 대해 취재한 다큐멘터리 작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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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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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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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anmar Troops Kill 9 More Prote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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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oops take back control in Myanm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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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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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footage of journalist shot in Burma shows soldier leaving scene with cam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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ミャンマー:警官カメラ持ち去る…長井さん銃撃直後の映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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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ent salt destroying the Soup (Pyipannyo cho chin lyet, Sarr ka ma phyet a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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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senverhaftungen in Burma – Major verweigert Schießbefeh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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撮影中の長井さん、至近距離から狙い撃ち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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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F社長が長井さん遺体確認、医師「至近距離から被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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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 POST - SHOCKING FOTOG-S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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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Pulitzer Prize-BREAKING NEWS PHOTOGRAPHY, 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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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뉴스
真相究明へ特使 至近距離で被弾か ミャンマー邦人死亡
http://www.asahi.com[...]
朝日新聞
2007-09-28
[32]
뉴스
藪中審議官ミャンマー軍事政権幹部と会談へ、日本政府は厳格な措置を検討
https://www.afpbb.co[...]
AFP
2007-10-01
[33]
뉴스
ミャンマー外相が陳謝 高村外相抗議、「流れ弾でない」
http://www.asahi.com[...]
朝日新聞
2007-09-29
[34]
뉴스
長井さん、至近距離から銃撃 ミャンマー 警視庁が鑑定
http://www.asahi.com[...]
朝日新聞
2008-01-11
[35]
뉴스
미얀마 "일본 기자 사망 사과"…일, 특사 급파
http://news.sbs.co.k[...]
SBS 뉴스
2007-09-29
[36]
뉴스
아시아 기자협회 총회 개막
http://www.cbs.co.kr[...]
CBS 노컷뉴스
2007-11-30
[37]
뉴스
長井さん射殺:「カメラ所持者撃て」ミャンマー軍秘密指令
https://web.archive.[...]
마이니치신문
200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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