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식 (1918년)
1. 개요
김대식은 일제강점기에 만주국군에서 복무하고, 해방 후 대한민국 해병대 사령관을 역임한 인물이다. 춘천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군에서 복무했으며, 해안경비대 소위로 임관하여 해병대 참모장, 해병대 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6.25 전쟁 중 인천 상륙 작전에 참전했고, 펀치볼 전투에서 부상당했다. 예비역 편입 후 국회의원, 사회복지 관련 단체 회장 등을 지냈다.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 씨명 | 김대식(金大植) |
|---|---|
| 출생일 | 1918년 11월 2일 |
| 사망일 | 1999년 1월 9일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강원도 춘천시 |
| 사망지 | 서울특별시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제1묘역 92호 |
| 소속 조직 | 만주국군 |
|---|---|
| 최종 계급 | 준위(만주국군) 중장(대한민국 해병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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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병 중장 -
김동하 (1918년)
김동하는 일제강점기 만주군 장교이자 대한민국 해병대 창설에 참여한 군인, 정치인으로, 5·16 군사정변에 가담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을 역임했으나 반혁명사건에 연루되었고, 만주군 복무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
대한민국 해병 중장 -
김정호 (1931년)
경상남도 고성군 출신인 김정호(1931년)는 대한민국 해병대 장성으로 해병대 사령관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을 지냈으며, 제11대 국회의원과 건양기업 및 대한중석광업 대표를 역임했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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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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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연합 당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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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연합 당원 -
이완구
이완구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국회의원과 충청남도지사를 지냈으며 국무총리를 역임했으나 성완종 리스트 사건 연루 의혹으로 사퇴 후 혈액암으로 사망했다.
3. 생애 및 경력
김대식은 1936년 춘천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광동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 만주국군에 입대하여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했다. 해방 이후에는 해안경비대와 해병대에서 복무하며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해안 분지(펀치볼)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1999년 1월 9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가 발표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군 부문에 기재되었다.
3.1. 일제강점기
1936년 춘천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광동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만주국군에 입대하였다. 만주 동부 지역 국경 감시대에서 상사(曹長)로 복무했다. 1938년 간도특설대 창설 시 훈춘 국경 감시대에서 창설 요원으로 파견되었고, 준위로 승진했다. 1940년 1월 국경사변 종군기장을 받았다. 간도특설대 제대 후에는 만주국군 군속으로 근무했다.
3.2. 대한민국 군 복무
1936년 춘천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광동학교 교원으로 근무하다가 만주국군에 입대하였다. 만주 동부 지역 국경 감시대에 상사로 복무하였고, 1938년 간도특설대 창설 시 훈춘 국경 감시대에서 창설 요원으로 파견되어 준위로 승진하였다. 1940년 1월에는 국경사변 종군기장을 받았다. 간도특설대 제대 후에는 만주국군 군속으로 근무하였다.
1946년 2월 16일, 해안경비대에 입대하여 소위로 임명되었으며(군번 80041번), 같은 해 9월 7일 해군본부 인사국장(해군 중령)이 되었다.
1950년 9월 20일 해병대에 편입되어 해병 제5대대장으로 인천 상륙 작전에 참가하였다. 같은 해 12월 16일 해병대 참모장(대령)이 되었고, 1951년 5월 2일 해병 제1연대장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8월 31일, 해안 분지(펀치볼) 전투를 지휘하던 중 지뢰에 의해 부상당해 후송되었으며, 이때 엄지발가락을 잃었다.
1951년 9월 1일 해병학교 교장, 1952년 2월 5일 해병대 참모장, 1953년 3월 5일 해병 교육단장을 역임하였고, 같은 해 4월 4일 준장으로 진급하였다.
1954년 10월 해병 제1여단장이 되었고, 1955년 1월 해병 제1여단이 사단으로 확장되면서 해병 제1사단장이 되었다. 1956년 육군대학을 졸업하고 해병대 부사령관을 거쳐 1957년 9월 해병대 사령관(해군 중장)에 올랐다.
1960년 6월 예비역으로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