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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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상진은 1977년생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1996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로 활동했다. 199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완투승을 거두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1998년 위암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다 1999년 6월 10일, 2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는 선동열과 비교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갖춘 투수로 평가받았으며, KIA 타이거즈는 그의 기일을 기리고 있다.

김상진 (1977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선수명김상진
본명김상진
영어 표기Kim Sang-Jin
국적대한민국
출신지광주광역시
생년월일1977년 4월 26일
사망일1999년 6월 10일
사망지서울특별시 서초구 강남성모병원
利き腕
打席
수비 위치투수
프로 입단 연도1996년
드래프트 순위1996년 고졸우선지명 (해태 타이거즈)
첫 출장KBO / 1996년 4월 14일 광주 대 쌍방울전 구원 등판 (3이닝 5실점)
최종 출장KBO / 1998년 9월 19일 잠실 대 OB
계약금1억 2000만원 (1996년)
연봉3000만원
경력
소속 구단해태 타이거즈 (1996년 ~ 1999년)
기타
한글 표기김상진
한자 표기金相辰
가타카나 표기키상진
로마자 표기Kim Sa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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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광주진흥고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진학이 유력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1996년 고졸우선지명을 받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 한국시리즈에서 좋은 활약을 펼쳤으나, 1998년 시즌 후 위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 1999년 6월 10일 23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2.1. 선수 시절

광주진흥고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진학이 유력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1996년 고졸우선지명을 받아 계약금 100, 연봉 20에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하여 곧바로 프로로 선회했다. 199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 선발 투수로 출전하여, 9이닝 동안 2안타 1실점(서용빈에게 적시타 허용)으로 완투승을 거두며 해태 타이거즈의 한국시리즈 9번째 우승을 이끌었고,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 기록도 세웠다. 그의 실력은 입단 전년까지 해태에서 활약하며 "한국 야구계 최고 투수"라고 불리던 선동열과 자주 비교되었는데, 당시 해태 배터리 코치였던 장채근한국어도 "제구력은 선동렬보다 낫다"고 평가하며 그의 미래를 촉망했다.

2.2. 투병과 사망

1997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해 9이닝 2안타 1실점으로 한국시리즈 최연소 완투승을 기록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1998년 시즌 후 위암 판정을 받았다. 1998년 9월 19일 OB 베어스와의 경기 중 목 통증으로 강판되었고, 정밀 검사 결과 위암 말기(4기)였다. 이후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받았지만 병세가 악화되어 1999년 6월 10일 강남성모병원에서 2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2.2.1. 투병 일지

* 1998년 9월 19일 -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OB 베어스와의 경기 2회말 투구 중 목 통증을 호소하며 자진 강판되었다.
* 1998년 10월 8일 - 광주 시내에서 친구들과 저녁 식사 도중 머리 뒤쪽 통증을 호소한 뒤 기절, 전남대학교병원에 입원했다.
* 1998년 10월 16일 - 경추 3번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 1998년 10월 23일 - 전남대학교병원에서 위암 4기 진단을 받았다.
* 1998년 10월 26일 - 중앙대학교 부속 용산병원 입원, 재검사 결과 전남대학교병원과 동일한 진단을 받았다.
* 1998년 10월 30일 - 서울중앙병원에 입원, 방사선 치료와 함께 4주 간격으로 항암제 투여를 받았다.
* 1999년 3월 6일 - 각혈로 서울중앙병원에 입원, 암세포로 인한 천공이 원인으로 밝혀졌다.
* 1999년 3월 8일 - 천공 부분 봉합 수술을 받았다.
* 1999년 6월 2일 - 병세 악화로 강남성모병원에 입원, 산소호흡기에 의존했다.
* 1999년 6월 10일 - 오후 3시 55분 - 강남성모병원에서 위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23세)

3. 평가

김상진은 요절한 탓에 선수 생활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선동열에 비교되는 실력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해태 타이거즈의 포수였던 장채근은 제구력이 선동열보다 뛰어났다고 평가하였다.

4. 추모

KIA 타이거즈에서는 김상진을 기리기 위해 김상진이 숨진 날인 매년 6월 10일 경기일에 검은색 리본을 달고 경기에 임한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비경기일인 월요일이었던 2013년을 제외하고 김상진의 기일에 열린 경기에서 KIA 타이거즈는 2016년 6월 10일에 정동현이 연패를 끊을 때까지 계속 연패를 당했다.

5. 출신 학교

* 광주서림초등학교 졸업
* 광주진흥중학교 졸업
* 광주진흥고등학교 졸업

6. 통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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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소속 팀평균자책점경기 수세이브이닝피안타볼넷사구탈삼진실점자책점
1996해태4.2929950123.2115523646259
19973.60309101147.21355417916059
19983.87256111121.0120428696352
통산3.908424262392.137014828224185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