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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18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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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김영배(金永培, 1886년 4월 7일 ~ 1943년 11월 9일)는 일제강점기의 경찰 출신 관료입니다. 일본식 이름은 고해광(古海洸)입니다.
생애 및 활동:


  • 1886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출생했습니다.
  • 1911년 충청북도 청풍군 군서기를 시작으로, 1919년까지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도서기를 지냈습니다.
  • 1920년 경상북도 고등경찰과 경부, 1923년 경상북도 경찰부 형사과장, 보안과장을 거쳐 1925년 도경시로 승진했습니다.
  • 1926년 조선총독부 군수로 발령받아 평안북도 운산군수를 시작으로 1939년까지 평안북도 지역의 군수를 역임했습니다. (박천군수, 강계군수, 용천군수, 의주군수 등)
  • 1939년 황해도 참여관 겸 도사무관으로 산업부장이 되었고, 황해도지방미곡통제조합연합회 회장, 황해도농회 회장 등을 겸직했습니다.
  • 중일전쟁 발발 후 군수물자 공출, 국방헌금 및 애국기 헌납자금 모집, 시국강연회 등 일제 침략전쟁에 협력했습니다.
  • 1940년 일본 정부로부터 훈5등 쌍광욱일장을 받았습니다.
  • 1941년 충청북도 참여관 겸 산업부장, 1942년 전라남도 참여관 겸 산업부장을 역임하며, 각 도의 미곡통제조합연합회 회장, 임금위원회 위원 등을 겸직했습니다.


김영배는 일제강점기 동안 경찰 및 관료로서 일제의 식민 통치와 침략 전쟁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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