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천
1. 개요
김영천은 일제강점기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후 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 법무부 차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대검찰청 차장검사 등을 역임한 법조인이다. 한국 보이스카우트 연맹 부총재, 민주공화당 인권옹호위원장, 헌법위원 등을 지냈으며, 2000년 8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김영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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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천
| 출생 | 1959년 1월 15일 |
|---|---|
| 출생지 | 대한민국 경상남도 하동군 |
| 사망 | 2023년 12월 29일 (향년 64세) |
| 사망지 | 대한민국 |
| 본관 | 김해 김씨 |
학력
| 최종 학력 |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박사 |
|---|
경력
| 주요 경력 |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원장 국민경제자문회의 지원단장 |
|---|
수상
| 수상 내역 | 홍조근정훈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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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에서 태어났다.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였으며, 1933년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하고 1936년에는 조선변호사시험에 합격하였다.
법무부 차관으로 재직하던 1960년 10월 2일, 출근 준비 중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되었던 친동생이 찾아오자 자수를 권유했다. 동생이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자 즉시 경찰에 신고하였다.
주요 경력은 다음과 같다.
공직에서 물러나면서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부인 김미영과의 사이에 아들 김어진과 김하진을 두었다. 대상그룹 창업주 임대홍의 셋째 남동생 임수홍의 장남 임병선을 사위로 맞았다.
2000년 8월 7일 노쇠로 사망하였다. 향년 86세였다.
3. 경력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반직 공무원 시험과 조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주요 공직 경력은 다음과 같다.
| 기간 | 직책 |
|---|---|
| 1945년 |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 1949년 2월 3일 ~ 1951년 8월 28일 | 제2대 광주지방검찰청 검사장 |
| 1954년 | 대검찰청 검사 |
| 1955년 |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
| 1956년 | 법무부 법무국장 |
| 1960년 7월 1일 ~ 1960년 9월 29일 | 제11대 법무부 차관 |
| 1960년 9월 29일 ~ 1962년 3월 18일 | 제12대 법무부 차관 |
| 1962년 5월 7일 ~ 1963년 5월 6일 | 제4대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
| 1963년 5월 4일 ~ 1964년 1월 3일 | 대검찰청 차장검사 |
| 1963년 12월 31일 ~ 1964년 3월 15일 | 제6대 광주고등검찰청 검사장 |
| 1964년 3월 17일 ~ 1971년 8월 23일 | 제8대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 |
| 1971년 8월 24일 ~ 1973년 4월 2일 | 대검찰청 차장검사 |
이 외에도 청주지방검찰청 검사장, 한국 보이스카우트 연맹 부총재, 공화당 중앙위 인권옹호위원장, 헌법위원회 상임위원(1973년), 변호사 등으로 활동하였다.
2000년 8월 7일 노쇠로 사망하였다. 향년 86세였다.
4.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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