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성
1. 개요
김칠성은 일제강점기 부산 출신으로 일본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경제연구소장, 한성 주식회사 경영자, 미군정 시기 경상남도 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독립촉성전국노동총동맹과 관계가 있었다. 6.25 전쟁 중 서울에서 북한군에 납북되었으며,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을 지냈다. 87세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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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09년 |
|---|---|
| 사망 | 1984년 |
| 직업 | 교육인 정치인 |
| 배우자 | 김갑순 |
| 자녀 | 5남 2녀 |
| 소속 정당 | 무소속 |
|---|---|
|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 임기 시작: 1948년 5월 31일 임기 종료: 1950년 5월 30일 |
|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 임기 시작: 1950년 5월 31일 임기 종료: 1954년 5월 20일 |
| 최종 학력 | 보성고등학교 졸업 |
|---|
| 모교 | 보성전문학교 법과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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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 | 천주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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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 | 석촌(石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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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옥우
유옥우는 자유당에서 정계 입문 후 야당에서 활동하며 여러 차례 국회의원을 지냈고, 한일협정 반대 운동 중 옥고를 치렀으며 정치 테러를 당하기도 했으나, 국가보위입법회의 참여 경력으로 비판받기도 한 정치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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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희
손병희는 조선 말 동학의 지도자이자 대한제국의 종교인, 독립운동가로서 동학을 천도교로 개칭하고 3·1 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며 인내천 사상을 강조했다. -
19세기 한국 사람 -
허영호 (정치인)
허영호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신간회 활동을 했으나, 중일전쟁 이후 친일로 전향하여 해방 후 혜화전문학교 교장과 동국대학교 학장을 역임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한국 전쟁 중 납북되어 사후 친일 행적이 드러나 건국훈장이 취소되고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되었다.
2. 생애
경상남도 부산 (현 부산광역시) 출신으로, 일본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해방 이후 1950년 제2대 총선에 부산시 병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 국회의원을 1기 역임했다. 경제연구소장, 한성 주식회사 경영자, 미군정 시기 경상남도 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독립촉성전국노동총동맹에도 관계했다。
1950년 9월 19일 정오 즈음, 서울에 있던 중 북한군에 납치되었다。1956년 7월부터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을 역임했으며, 이후 행적은 불분명하나 87세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2.2. 해방 이후 정치 활동
경상남도 부산 (현 부산광역시) 출신이다. 일본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1950년 제2대 총선에 부산시 병 선거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어 국회의원을 1기 역임했다. 그 외, 경제연구소장, 한성 주식회사 경영자, 미군정 시기의 경상남도 고문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독립촉성전국노동총동맹에도 관계가 있었다。
1950년 9월 19일 정오 즈음, 서울에 있던 중 북한군에 납치되었다。 1956년 7월부터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을 역임했으며, 그 후의 자세한 사항은 불명이나, 87세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2.3. 한국 전쟁과 납북
1950년 6.25 전쟁 발발 당시, 대부분의 관료들은 피난길에 올랐으나, 김칠성을 포함한 일부 정치인들은 서울을 지키기 위해 남아있었다.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남한의 주요 인사들을 색출하였고, 김칠성은 이 과정에서 체포되어 납북되었다. 1956년 7월부터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을 역임했으나, 이후 행적은 불분명하며, 87세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3. 역대 선거 결과
| 연도 | 선거 종류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순위 | 당락 | 비고 |
|---|---|---|---|---|---|---|
| 1950년 | 총선 | 무소속 | 9,727표 (32.21%) | 1위 | 당선 | 초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