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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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유옥우는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 출신의 정치인으로, 광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신한자원개발 회장, 염업조합연합회 회장, 목포일보 사장을 역임했다. 1954년 자유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으며, 이후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활동했다. 4·19 혁명과 5·16 군사 정변으로 인해 정치적 시련을 겪었으며, 1971년 신민당 소속으로 서울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10월 유신으로 인해 국회가 해산되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 시기에는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참여했고, 민주한국당 전국구 의원으로 제11대 국회에 입성하여 5선 의원을 지냈다. 1956년 국회에서 '방귀' 발언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의 손자는 배우 유지태이다.

유옥우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유옥우
한자 표기劉沃祐
출생일1914년 12월 4일
출생지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면
사망일1984년 3월 15일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본관강릉
종교유교(성리학) → 개신교
직업정치인, 기업가
학력
학교광주고등보통학교 졸업
정치 경력
정당자유당, 민주당, 신민당, 민주한국당
주요 경력자유당 상임위원
민주당 전임위원
신민당 최고위원
민주한국당 상임고문
민주한국당 부총재
의원 선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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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 출신 정치인이다. 1954년 제3대 총선에서 자유당 후보로 무안군에서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했으나, 사사오입 개헌 이후 탈당하여 민주당과 신민당 등 야당에서 주로 활동했다. 4·19 혁명, 5·16 군사 정변, 10월 유신 등 한국 현대사의 격동기를 거치며 여러 차례 의원직을 상실하는 시련을 겪었다. 특히 1965년 한일기본조약 반대 발언으로 재판을 받았고, 1971년에는 괴한에게 피습당하는 등 야당 정치인으로서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1980년에는 전두환 정권 하에서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참여했으며, 이후 민주한국당 소속으로 제11대 국회에 전국구 의원으로 진출하여 5선 의원이 되었다. 국회의원 임기 중 별세하였다. 국회의원 외에도 전라남도 의회 의원, 목포일보 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여러 정당에서 주요 당직을 맡았다.

2.1. 초기 생애 및 정치 입문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도에서 태어났다. 광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신한자원개발 회장, 한국염업조합연합회 회장, 목포일보 사장 및 전라남도 의회 의원을 역임했다.

1954년 제3대 총선에서 무안군 선거구에 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중앙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그러나 사사오입 개헌 파동 이후 김영삼 등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자유당 탈당 성명서에 서명하며 독재에 항거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활동하며 두 차례 더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제5대 국회에서는 농림분과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4·19 혁명과 5·16 군사 정변 등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국회의원 임기를 온전히 채우지는 못했다.

2.2. 자유당 탈당과 민주당 활동

1954년 대한민국 3대 총선에서 무안군 선거구에 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그러나 이듬해 이승만 정권의 장기 집권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이 강행되자, 이에 반발하여 김영삼 등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자유당 탈당 성명서에 서명하며 자유당을 나왔다.

이후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겨 활동했으며, 두 차례 더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제5대 국회에서는 농림분과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4·19 혁명과 5·16 군사 정변 등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서의 임기는 길지 못했다.

2.3. 야당 정치인으로서의 시련

1954년 대한민국 3대 총선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당선되었으나, 사사오입 개헌 이후 김영삼 등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자유당을 탈당하며 야당 정치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56년 8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이승만 정권 하 내무부 장관 이익흥의 아첨 행태("이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말했다")를 폭로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이 발언은 이후 권력자에 대한 아첨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한편, 이익흥은 훗날 인터뷰에서 유 의원이 자신에 대한 불신임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후 민주당 소속으로 두 차례 더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4·19 혁명과 5·16 군사 정변으로 인해 의원 임기를 제대로 마치지 못하는 등 정치적 격변기를 겪었다.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야당 정치인으로서 더욱 힘든 시기를 보냈다. 1965년에는 전직 의원 신분으로 한일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발언을 했다가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또한 집 근처에서 폭발물이 터지거나 괴한의 습격을 당하는 등 순탄치 않은 의원 생활을 이어갔다.

1971년 대한민국 8대 총선에서 신민당 소속으로 서울에서 당선되었으나, 10월 유신으로 또다시 1년여 만에 국회가 해산되는 시련을 겪었다. 특히 1971년 11월 13일에는 괴한들에게 피습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소속 정당이었던 신민당은 이를 제3공화국 정권에 의한 계획적인 정치 테러라고 주장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2.4. 전두환 정권과의 관계

1980년 전두환이 설치한 국가보위입법회의에 참가하였고, 민주한국당 전국구 1번 후보로 대한민국 제11대 국회에 들어가 5선 의원이 되었다. 제11대 국회 임기 중 별세했다.

3. "방귀" 발언 일화

1956년 8월 1일, 국회 본회의에서 내무부 장관 이익흥에 대해 "이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폭로했으며, 이 말은 이후 권력자에 대한 아첨의 대명사로 회자되었다. 한편, 이익흥은 1966년 4월 2일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유 의원이 내무부 장관 불신임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4. 가족 관계

* 손자: 유지태 - 영화배우, 영화감독.
* 손자며느리: 김효진 - 유지태의 배우자이며 영화배우.

5. 학력

* 전라남도 광주고등보통학교 졸업

6. 약력

전라남도 무안군 (현 신안군 비금도) 출신으로, 광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신한자원개발 회장, 한국염업조합연합회 회장, 목포일보 사장 등을 지냈다.

전라남도 도의회 의원을 거쳐 정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1954년 제3대 총선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으나, 이승만 정권의 사사오입 개헌 강행 이후 김영삼 등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자유당을 탈당하는 소신을 보였다. 이후 민주당에 합류하여 1958년 제4대, 1960년 제5대 총선에서 연이어 당선되었고, 제5대 국회에서는 농림분과위원장을 맡았다.

5·16 군사 정변 이후 정치 활동이 규제되었다가 풀린 뒤에는 민중당에 참여하여 무안지구 당위원장을 지냈고, 1971년 제8대 총선에서는 신민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4선 의원이 되었다. 신민당에서는 중앙당 기율위원장, 정책위원회 의장, 중앙상임위원회 의장, 전당대회 의장 등 주요 당직을 역임했다.

10월 유신으로 국회가 해산된 후 야인으로 지내다가, 12·12 군사 반란 이후 들어선 신군부 하에서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의원으로 참여하였다. 제5공화국 출범과 함께 치러진 1981년 제11대 총선에서는 관제 야당 격인 민한당 소속으로 당선되어 5선 고지에 올랐으며, 민한당 부총재와 고문 등을 지냈다. 이후 민주정의당에서도 정책심의 부의장, 중앙당기위원회 의장 등을 맡았다.

7. 역대 선거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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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선거 종류대수직책선거구소속 정당득표수 (득표율)순위결과비고
1954총선3대국회의원무안군 을자유당20,969 (44.61%)1위당선초선
1958총선4대국회의원무안군 을민주당16,311 (50.26%)1위당선재선
1960총선5대국회의원무안군 을민주당16,973 (55.66%)1위당선3선
1960대선4대대통령대한민국민주당1 (2.59%)7위낙선
1963총선6대국회의원전남 무안군민정당24,612 (32.09%)2위낙선
1967총선7대국회의원전남 무안군신민당40,376 (40.57%)2위낙선
1971총선8대국회의원서울 동대문구 을신민당75,046 (50.43%)1위당선4선
1973총선9대국회의원서울 동대문구신민당23,679 (8.74%)4위낙선
1978총선10대국회의원목포시·무안군·신안군무소속16,491 (9.58%)5위낙선
1981총선11대국회의원전국구민주한국당3,495,829 (21.6%)전국구 1번당선5선


초선인 제3대 총선에서는 자유당 소속으로 당선되었으나, 사사오입 개헌 이후 김영삼 등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탈당 성명서에 서명하며 자유당을 탈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