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 독락정
1. 개요
나성 독락정은 1437년 부안 임씨 임난수의 아들 임목이 건립한 정자이다. 금강을 앞에 두고 나성을 등진 위치에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팔작지붕 형태를 갖추고 있다. 고려 시대 전서 벼슬을 지낸 임난수가 조선 건국 후 벼슬을 사양하고 은거한 곳으로, 임목이 아버지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지었다.
| 이름 | 나성 독락정 |
|---|---|
| 로마자 표기 | Naseong Dongnakjeong |
| 위치 |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 101 |
| 국가 | 세종특별자치시 |
|---|---|
| 유형 | 문화재자료 |
| 지정 번호 | 8 |
| 지정일 | 2012년 12월 31일 |
| 시대 | 조선시대 |
| 면적 | 72.3m2 |
| 수량 | 1동 |
| 명칭 | 독락정 |
|---|---|
| 국가 | 충청남도 |
| 유형 | 문화재자료 |
| 지정 번호 | 264 |
| 지정일 | 1984년 12월 29일 |
| 해제일 | 2012년 7월 1일 |
| 재지정일 | 2012년 12월 21일 |
2. 역사
1437년(세조 19년) 부안 임씨 중시조 전서공 임난수의 둘째 아들 부사공 임목이 독락정을 건립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독락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평면에 후열 가운데 칸에 창호를 달아 마루를 만들고 나머지는 개방하였다. 기단은 화강석 장대석이며, 8각 장초석에 원형 기둥을 세웠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2.1. 건립 배경
1437년(세조)에 부안 임씨 중시조인 전서공 임난수 장군의 둘째 아들인 부사공 임목이 독락정을 건립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독락정은 망망한 들 한가운데 있는 나성을 등지고 낙락장송이 우거져 있으며, 앞에는 금강이 흐르고 있다.
임난수 장군은 고려 때 전서 벼슬을 지냈으나, 조선 건국 후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뜻을 품고 벼슬을 사양하였다. 이후 금강 월봉 아래서 은거하며 16년을 지내다가 타계하였다. 독락정은 그의 아들 임목이 선인의 절의를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로, 밀직양양도호부사를 지낸 임목이 낙향하여 여생을 보내던 곳이다.
2.2. 임목과 독락정
1437년(세조 19년)에 부안임씨 중시조인 전서공 임난수 장군의 둘째 아들인 부사공 임목이 독락정을 건립한 후 여러 차례 고쳐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독락정은 망망한 들 한가운데 있는 나성을 등지고 낙락장송이 우거져 있으며, 앞에는 금강이 흐르고 있다.
독락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후열 가운데 간에 창호를 달아 마루바닥을 만들고 나머지 부분은 개방하였다. 기단은 화강석 장대석이며 8각 장초석에 원형기둥을 두었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조성하였다.
임난수 장군은 고려 때 전서의 벼슬을 지냈으나, 조선 건국 후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뜻을 품고 벼슬을 사양하였다. 이후 금강 월봉 아래서 은거하며 16년을 지내다가 타계하였다. 독락정은 그의 아들 임목이 선인의 절의를 지킨 뜻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정자이며, 밀직양양도호부사를 지낸 임목이 낙향하여 여생을 보내던 곳이다.
3. 건축
1437년(세조 19년) 부안 임씨 중시조 전서공 임난수의 둘째 아들 부사공 임목이 건립한 후 여러 차례 고쳐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임난수는 고려 때 전서 벼슬을 지냈으나 조선 건국 후 벼슬을 사양하고 금강 월봉 아래서 은거하다 타계하였다. 독락정은 그의 아들 임목이 선친의 절의를 기리기 위해 건립한 정자로, 밀직양양도호부사를 지낸 임목이 낙향하여 여생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