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세르 알다마르지
1. 개요
나세르 알다마르지는 프랑스령 튀니지 시대에 태어난 튀니지의 연쇄 살인범이다. 1987년부터 1989년까지 자신의 농장에서 10대 청소년들을 유인하여 성폭행하고 살해했으며, 피해자 중에는 전 약혼녀의 아들도 있었다. 1989년 체포되어 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받았고, 사면 요청이 거부된 후 1990년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그의 범행은 튀니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사형 제도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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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성애자 -
루이스 가라비토
루이스 가라비토는 1992년부터 1999년까지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200명 이상의 청소년을 강간하고 고문한 혐의로 기소되어 172건의 살인 혐의를 자백하고 징역 22년을 선고받았으며, 2023년 백혈병으로 사망한 콜롬비아 연쇄 살인범이다. -
소아성애자 -
앨버트 피시
앨버트 피시는 1870년 출생하여 1936년 사망한 미국의 연쇄 살인범으로, 1919년부터 1930년까지 최소 100명의 어린이를 성폭행, 고문, 살해했으며, 1928년 그레이스 버드 살해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되었다. -
1990년 사망 -
조영래
조영래는 한국의 인권변호사이자 민주화운동가, 문필가로서, 사회 정의 실현을 위해 변호사 활동과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으며, 글쓰기를 통해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등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990년 사망 -
윤보선
윤보선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참여, 한국민주당 창당, 서울특별시장 및 상공부 장관 역임, 제2공화국 대통령 역임, 그리고 민주화 운동 참여 등의 활동을 했다. -
사형된 연쇄살인자 -
김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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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된 연쇄살인자 -
미야자키 쓰토무
미야자키 쓰토무는 1988년부터 1989년까지 도쿄와 사이타마현에서 4명의 어린 여자아이를 유괴, 살해하고 시체를 훼손한 일본의 연쇄 살인범으로, 그의 범행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 생애
나세르 다메르지는 프랑스령 튀니지 시대 튀니스의 샤를 니콜 병원에서 자구안 출신 젊은 남성과 후리아라는 여성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유혹한 혐의로 수감되었다가 석방된 후 한 농부와 결혼하여 아들을 그의 이름으로 등록했다. 다메르지는 30년 동안 친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의사와 정신과 의사들은 그가 지적이고 프랑스어에 능숙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부르기바 어린이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농업 사업을 하여 성공했다. 1964년 사촌과 약혼 후 프랑스로 갔으나, 1968년 귀국했을 때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한 것을 알게 되었다.
1987년 6월 15일, 다마르지는 첫 희생자인 무함마드 알리에게 농장에서 아몬드 수확을 돕도록 제안했다. 다마르지는 알리를 강간하려 했고, 알리가 거부하며 도망치려 하자 그를 살해했다. 알리가 기절했다고 생각한 다마르지는 그를 침대에 6시간 동안 눕혀두었다가, 그가 죽었다는 것을 깨닫고 농장에 묻었다.
1988년 2월까지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던 다마르지는 이후 아이들을 농장으로 유인하여 강간하고 살해했다. 체포 당시 그는 10세에서 18세에 이르는 14명을 살해한 상태였다. 주목할 만한 희생자는 전 약혼녀의 13세 아들 람지였는데, 1988년 1월 26일 날카로운 물건으로 훼손 후 살해했다.
나세르 알다마르지는 체포 전까지 많은 용의자 중 한 명이었으나 증거 부족으로 석방되었다. 그는 1989년 11월 27일에 두 번째로 체포되었다. 튀니지 변호사들은 그의 변호를 거부했고, 법원은 국선 변호인을 지정했다.
자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이 사면 요청을 거부한 후, 다마르지는 1990년 11월 17일 오전 3시 15분에 튀니스 나도르 교도소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사형 집행인 암 하센은 2013년 인터뷰에서 다마르지가 일반적인 경우(4~5분)와 달리 13분 만에 사망했다고 회상했다.
2.1. 초기 생애
나세르 다메르지는 프랑스령 튀니지 시대 튀니스의 샤를 니콜 병원에서 자구안 시골 출신의 젊은 남성과 후리아라는 창녀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후리아는 그를 유혹한 혐의로 수감되었다가 석방된 후 한 농부와 결혼하여 아들을 그의 이름으로 등록했다. 다메르지는 30년 동안 친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치료한 의사와 정신과 의사들로부터 지적이고 프랑스어에 능숙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린 시절 부르기바 어린이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학업을 중단하고 농업 사업에 종사하여 경제적으로 성공했다. 사촌과 약혼한 후 1964년 프랑스로 여행을 갔으나, 1968년 귀국했을 때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2. 범행
다마르지는 1987년 6월 15일, 자신의 첫 희생자인 무함마드 알리에게 농장에서 아몬드 열매를 수확하는 것을 도와주면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들이 나무를 오르던 중, 다마르지는 알리를 강간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현했고, 알리는 거부하며 도망치려 했다. 다마르지는 알리의 입을 한 손으로 막아 비명을 지르지 못하게 하고, 다른 손으로 목을 눌러 숨지게 했다. 알리가 기절했다고 생각한 다마르지는 그를 침대에 6시간 동안 눕혀두었다가, 그가 죽었다는 것을 깨닫고 농장에 묻었다.
1988년 2월까지 다른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던 다마르지는 이후 아이들을 자신의 농장으로 유인하여 강간하고 살해하는 수법을 익혔다. 체포 당시 그는 10세에서 18세에 이르는 14명의 희생자를 살해한 상태였다. 주목할 만한 희생자 중 한 명은 그의 전 약혼녀의 13세 아들 람지였는데, 1988년 1월 26일 날카로운 물건으로 훼손한 후 살해했다. 이 사건은 그가 유죄 판결을 받은 주요 범죄였다.
2.3. 체포 및 재판
나세르 알다마르지는 체포되기 전, 나세르 본인을 포함한 많은 용의자들이 체포되었으나 증거 부족으로 석방되었다. 그는 1989년 11월 27일에 두 번째로 체포되었다. 튀니지 변호사들은 그의 변호를 거부했고, 법원은 국선 변호인을 지정했다.
2.4. 사형 집행
자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이 사면 요청을 거부한 후, 다마르지는 1990년 11월 17일 오전 3시 15분에 튀니스 나도르 교도소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그의 사형 집행인인 암 하센은 2013년 Leaders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다마르지가 일반적인 경우(4~5분)와 달리 13분 만에 사망했다고 회상했다.
3. 범행 배경 및 심리
다마르지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사회적 고립, 정신 질환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자신의 범행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전문가들은 그를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진단했다.
4. 사회적 영향
원본 소스에 나세르 알다마르지에 대한 사회적 영향 관련 내용이 없으므로, 해당 섹션은 작성할 수 없다.
4.1. 사형 제도 논란
자네 엘 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이 사면 요청을 거부한 후, 다마르지는 1990년 11월 17일 오전 3시 15분에 튀니스 나도르 교도소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되었다.
5. 대중문화
튀니지 혁명 이후 엘 히와르 엘 투니시 채널에서 방송된 TV 프로그램 '루피아트 엘 잘사'는 이 사건에 대한 두 개의 에피소드를 방영했으며, 피해자 가족, 법의학자, 심리학자, 가해자 변호사, 목격자 등이 출연했다. 그러나 가해자 변호사는 프로그램에서 그의 의뢰인이 교통사고로 인해 30%의 뇌진탕을 겪었으며, 심각한 정신 질환을 앓고 있으며 영구적인 고립 상태에 있다고 진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