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미천서원
1. 개요
나주 미천서원은 허목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숙종 16년(1690)에 세워졌으며, 숙종 19년(1693)에 사액서원으로 지정되어 '미천'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정조 23년(1799)에는 채제공을 추가로 배향했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892년에 복원되었다.
| 이름 | 나주 미천서원 |
|---|---|
| 한자 표기 | 羅州 眉泉書院 |
| 위치 | 전라남도 나주시 안창동 383번지 |
| 지정 | 1977년 10월 20일 |
|---|---|
| 종류 | 전라남도 기념물 |
| 지정 번호 | 2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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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 필암서원
장성 필암서원은 1590년 김인후를 기리기 위해 창건되어 여러 차례 이건과 사액을 거쳐 1672년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존속되어 1975년 사적으로 지정되고 2019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된 호남 유학의 중심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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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용강서원은 조광조와 교류했던 양팽손과 그의 증손 양신용을 추모하기 위해 1821년에 건립되었으며,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70년에 복원되어 현재 제사를 지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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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허목은 이조참판, 우의정 등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그림, 글씨, 문장에 모두 능하였고 특히 전서에 뛰어났다. 숙종 5년(1679) 고향인 경기도 연천으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미천서원이 폐쇄되었으나, 고종 29년(1892) 현재 위치에 복원되었다. 경내에는 사당, 강당, 목판 보관을 위한 장판각, 서원 관리인이 생활하던 고사 등이 있다. 사당인 영정각은 허목과 채제공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강당은 교육 및 유림 회합 장소로 사용되었고, 가운데 마루와 양 옆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는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매년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2.1. 건립과 사액
허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숙종 16년(1690)에 서원을 건립하였다. 허목은 이조참판, 우의정 등의 여러 벼슬을 거쳤으며, 그림, 글씨, 문장에 모두 능하였는데 특히 전서에 뛰어났다. 숙종 5년(1679) 고향인 경기도 연천으로 돌아와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숙종 19년(1693) '미천'이라는 이름으로 사액서원이 되었다. 정조 23년(1799)에는 조선 후기 무신 채제공을 추가로 모셨다.
2.2. 훼철과 복원
숙종 16년(1690)에 미천서원이 세워졌고, 숙종 19년(1693)에 '미천'이라는 이름으로 사액서원이 되었다. 정조 23년(1799)에는 채제공이 추가로 모셔졌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다가, 고종 29년(1892)에 현재 위치에 복원되었다.
3.1. 허목
허목(1595∼1682)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그림, 글씨, 문장에 모두 능하였으며, 특히 전서에 뛰어났다. 여러 벼슬을 거쳐 이조참판과 우의정을 역임하였다. 숙종 5년(1679)에는 경기도 연천의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3.2. 채제공
채제공(1720∼1799)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다. 정조 23년(1799)에 허목을 모시는 미천서원에 추가로 모셔졌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다가 고종 29년(1892) 복원될 때 채제공도 함께 복원되었다. 현재는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사당인 영정각에 채제공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4. 건물
경내에는 사당, 강당, 장판각, 고사 등의 건물이 있다. 장판각은 목판을 보관하는 곳이며, 고사는 서원 관리인이 생활하던 곳이다. 사당인 영정각은 허목과 채제공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강당은 교육 및 유림 회합 장소로 사용되었다. 강당은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옆에 온돌방을 배치한 구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