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회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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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주 회진성은 백제 시대에 축조되어 조선 초기까지 이 지역의 정치·경제 중심지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성이다. 전남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를 통해 5세기 말~6세기 초에 사용되었고 통일신라 말에 대대적으로 보수되었음이 밝혀졌다. 백제의 축성 기법과 이후 수축 양상을 보여 한국 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산 능선을 이용하여 흙으로 쌓았으며, 둘레는 2.4km에 달한다.

나주 회진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나주 회진성
한자 표기羅州 會津城
유형기념물
지정 번호87
지정일1986년 2월 17일
주소전라남도 나주시 다도면 신풍리 산8-1번지 외
면적76,034평
둘레약 2.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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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리적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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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회진리에서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계곡을 감싸고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3. 구조 및 특징

나주 회진성은 영산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계곡과 그 계곡을 감싸며 쌓은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능선의 평탄한 곳에는 4개의 문을 만들었던 자리가 확인되며, 남쪽의 낮은 계곡에는 수문(水門)이 있던 자리가 확인된다.

3.1. 축성 기법

성벽 둘레는 2.4km에 달하는데, 전남 지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삼국시대 토성 가운데서도 매우 큰 규모이다. 계곡 주변의 3면을 둘러싸고 있는 산지는 급경사의 절벽을 깎아내어 성벽을 만들었고, 계곡에는 폭 6m, 높이 6m 정도로 흙을 한층 한층 다져 성벽을 만드는 방식(판축 기법)이 사용되었다.

이곳은 기록에 백제의 ‘두힐현’이었다고 하므로, 백제 때 축조되어 조선 초기까지 이 지역 정치·경제의 중심지 노릇을 해왔던 곳으로 추정된다. 백제의 축성기법을 알아볼 수 있고 그 후 수축의 양상도 남아있어 우리나라 성곽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4. 역사적 의의

이곳은 기록에 백제의 ‘두힐현’이었다고 하므로, 백제 때 축조되어 조선 초기까지 계속 이 지역 정치·경제의 중심지 노릇을 해왔던 곳으로 추정된다. 백제의 축성기법을 알아볼 수 있고 그후 수축의 양상도 남아있어 우리나라 성곽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성(城)이란 일정지역을 보호하고 행정이나 군사의 중심지로 활용하기 위해 돌이나 흙으로 쌓은 건축물을 말한다. 이 성은 산 능선을 이용하여 쌓은 것으로 성벽은 한 채 한 채 흙을 넣고 다졌다. 둘레 2.4km에 달하고 아래 부분은 폭이 14m나 된다. 그 후 무너진 곳을 돌로 수리했던 흔적을 볼 수 있다. 산능선의 평탄한 곳을 이용해 만든 4개의 문과 남쪽의 낮은 계곡에 물 나오는 구멍이 있었던 흔적도 있다. 이 성은 그동안 백제의 토성으로만 추정되어 왔다. 그러나 1994년 전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복암리 고분군과 함께 5세기말~6세기초에 사용된 후 통일신라 말에 대대적으로 보수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 성곽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5. 현지 안내문

성(城)은 일정 지역을 보호하고 행정이나 군사의 중심지로 활용하기 위해 돌이나 흙으로 쌓은 건축물이다. 회진성은 산 능선을 이용하여 쌓았으며, 성벽은 한 채 한 채 흙을 넣고 다졌다. 둘레는 2.4km이고 아래 부분 폭은 14m이다. 이후 무너진 곳을 돌로 수리한 흔적이 있다. 산 능선의 평탄한 곳을 이용해 만든 4개의 문과 남쪽의 낮은 계곡에 물 나오는 구멍이 있었던 흔적도 있다. 회진성은 그동안 백제의 토성으로만 추정되었다. 그러나 1994년 전남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 결과, 복암리 고분군과 함께 5세기말~6세기초에 사용된 후 통일신라 말에 대대적으로 보수되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한국 성곽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