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정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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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낙천정 터는 조선 태종이 휴식을 취하던 정자가 있던 곳으로, 어사각이라고도 불렸다. 1417년에 짓기 시작하여 1419년에 완성되었으나, 현재의 낙천정은 1991년에 신축되었다. 문화재로 지정되었던 터는 실제 낙천정 위치와 200m 이상 떨어져 있고, 신축된 정자 또한 원형이 확인되지 않아 서울특별시 기념물로서의 가치를 유지하기 어려워 지정 해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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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정 터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유형 | 기념물 |
이름 | 낙천정 터 |
로마자 표기 | Nakcheonjeong teo |
주소 |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로3가길 43 (자양동) |
상세 정보 | |
지정 번호 | 12 |
지정일 | 1993년 4월 3일 |
해제일 | 2009년 10월 22일 |
문화재청 지정번호 | 23,00120000,11 |
2. 낙천정 터 문화재 지정 해제
문화재로 지정된 터는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사료에 기록된 낙천정의 실제 위치인 대산(臺山) 정상과 200m 이상 떨어져 있는 것으로 과거 항공사진 등을 통해 확인되었다. 1991년에 새로 지어진 정자 역시 낙천정의 원형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선 전기 양식이 아닌 형태로 신축되었다. 따라서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터는 서울특별시 기념물로서의 가치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어 지정 해제되었다.
2. 1. 해제 사유
문화재로 지정된 터는 조선왕조실록 등 각종 사료에 기록된 낙천정의 실제 위치인 대산(臺山) 정상과 200m 이상 떨어져 있는 것으로 과거 항공사진 등을 통해 확인되었다. 1991년에 새로 지어진 정자 역시 낙천정의 원형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조선 전기 양식이 아닌 형태로 신축되었다. 따라서 현재 문화재로 지정된 터는 서울특별시 기념물로서의 가치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되어 지정 해제되었다.3. 현지 안내문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이 왕위에서 물러나 편히 쉬던 정자가 있던 곳으로, 어사각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1417년 9월에 짓기 시작하여 세종 1년(1419)에 완성되었으나, 지금의 낙천정은 1991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1]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1]
3. 1. 안내문 내용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이 왕위에서 물러나 편히 쉬던 정자가 있던 곳으로, 어사각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1417년 9월에 짓기 시작하여 세종 1년(1419)에 완성되었으나, 지금의 낙천정은 1991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1]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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