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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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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신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위치한 종각으로, 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도시의 랜드마크이자 시간을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1398년(태조 7년) 한양에 처음 종을 건 이후 여러 차례의 화재와 중건을 거쳐 1895년 '보신각'이라는 편액을 얻었다. 1953년 재건 이후 매년 1월 1일 자정에 33번 타종하는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대한민국 대표적인 새해맞이 행사로 자리 잡았으며, 삼일절, 광복절 등 국경일에도 타종 행사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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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신각 - [지명]에 관한 문서
위치 정보
기본 정보
이름보신각
한글 표기보신각
한자 표기普信閣
로마자 표기Bosingak
로마자 표기 (매큔-라이샤워)Posin'gak
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54 (03189)
대중교통지하철 1호선 종각역 4번 출구에서 63m (도보 1분)
완공일1396년
문화재 정보
지정 국가서울특별시
유형기념물
2024년 4월의 모습
문화재 이름보신각 터
문화재 한자 이름普信閣 터
지정 번호10
지정 연월일1990년 6월 18일
소재지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54
소유자서울특별시
제작 시기조선
비고면적 2,906.8m²
추가 정보
관련 정보옛 보신각 동종
문화재청 링크문화재청
한국학중앙연구원 링크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관광공사 링크한국관광공사

2. 역사



1968년 10월 단청 새칠 및 보수공사 준공식


1985년 8월 보신각 새 종 수송식


조선 시대 때 한양에 종을 처음 건 것은 1398년(태조 7년)으로, 광주에서 주조한 종을 청운교 서쪽 종루에 걸었다.[4] 1413년(태종 13년)에 종루를 통운교(지금의 종로네거리)로 옮기고 1458년(세조 4년)에는 새로운 종을 주조하여 달았으나 임진왜란으로 종루는 소실되고 종도 파괴되었다. 그 후 1619년(광해군 11년)에 종각을 다시 짓고 종을 걸었는데 이때 세운 종각은 임진왜란 전의 2층 종루가 아니고 1층 종각이었으며 여기에 건 종은 명례동(지금의 명동 인근) 고개에 있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

보신각종은 본래 원각사에 있던 종으로 세조 때에 주조한 것인데 1536년(중종 31년)에 숭례문 안으로 옮겨 놓았다가 1597년(선조 30년) 명례동 고개로 옮겼던 것을 광해군 때 종각을 복구하면서 이전한 것이다. 그 후 조선 후기까지 4차례나 화재와 중건이 있다가 1895년(고종 32년)에 종각에 '보신각'이란 편액이 걸린 이후 종도 보신각종이라 부르게 되었다. 6·25전쟁으로 종각이 파손된 것을 1953년 중건하였다가 1979년 다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2층 종루로 복원하였고, 원래의 종을 보존하기 위해 1985년에 새로운 종을 주조하여 지금에 이른다.

2. 1. 조선 시대

조선 시대 때 한양에 종을 처음 건 것은 1398년(태조 7년)으로, 광주에서 주조한 종을 청운교 서쪽 종루에 걸었다.[4] 1413년(태종 13년)에 종루를 통운교(지금의 종로네거리)로 옮기고 1458년(세조 4년)에는 새로운 종을 주조하여 달았으나 임진왜란으로 종루는 소실되고 종도 파괴되었다. 그 후 1619년(광해군 11년)에 종각을 다시 짓고 종을 걸었는데 이때 세운 종각은 임진왜란 전의 2층 종루가 아니고 1층 종각이었으며 여기에 건 종은 명례동(지금의 명동 인근) 고개에 있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

보신각종은 본래 원각사에 있던 종으로 세조 때에 주조한 것인데 1536년(중종 31년)에 숭례문 안으로 옮겨 놓았다가 1597년(선조 30년) 명례동 고개로 옮겼던 것을 광해군 때 종각을 복구하면서 이전한 것이다. 그 후 조선 후기까지 4차례나 화재와 중건이 있다가 1895년(고종 32년)에 종각에 '보신각'이란 편액이 걸린 이후 종도 보신각종이라 부르게 되었다.

2. 2.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조선 시대 때 한양에 종을 처음 건 것은 1398년(태조 7년)으로, 광주에서 주조한 종을 청운교 서쪽 종루에 걸었다.[4] 1413년(태종 13년)에 종루를 통운교(지금의 종로네거리)로 옮기고 1458년(세조 4년)에는 새로운 종을 주조하여 달았으나 임진왜란으로 종루는 소실되고 종도 파괴되었다. 그 후 1619년(광해군 11년)에 종각을 다시 짓고 종을 걸었는데 이때 세운 종각은 임진왜란 전의 2층 종루가 아니고 1층 종각이었으며 여기에 건 종은 명례동(지금의 명동 인근) 고개에 있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

보신각종은 본래 원각사에 있던 종으로 세조 때에 주조한 것인데 1536년(중종 31년)에 숭례문 안으로 옮겨 놓았다가 1597년(선조 30년) 명례동 고개로 옮겼던 것을 광해군 때 종각을 복구하면서 이전한 것이다. 그 후 조선 후기까지 4차례나 화재와 중건이 있다가 1895년(고종 32년)에 종각에 '보신각'이란 편액이 걸린 이후 종도 보신각종이라 부르게 되었다. 6·25전쟁으로 종각이 파손된 것을 1953년 중건하였다가 1979년 다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2층 종루로 복원하였고, 원래의 종을 보존하기 위해 1985년에 새로운 종을 주조하여 지금에 이른다.

3. 한국 사찰 종의 상징성 (Symbolism of Korean Temple Bells)

한국 사찰의 종은 한국 불교와 전통 문화에서 중요한 상징성을 지닌다.

범종(beomjong)이라 불리는 한국 사찰의 종은 음향 과학적으로도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어 '한국 종'으로 분류된다. 이 종들은 오랫동안 아름다운 형태를 유지하며, 매혹적인 파동 현상 덕분에 먼 거리까지 울려 퍼지는 웅웅거리는 소리(woong-woong-woong)를 낸다.[5]

과학적인 연구에 따르면 종의 두께 차이가 지속적인 공명과 관련이 있지만, 정확한 두께 비율은 현대 과학 기술로도 계산하기 어렵다. 1000년 전 고대 한국인들은 이 놀라운 업적을 달성하여 그들의 청각적 미스터리에 대한 숙련된 기술을 남겼다.[6]

사찰의 종은 기능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깊은 영적 및 문화적 의미를 지닌다.

==== 깨달음의 상징 ====

범종 소리는 부처의 목소리를 상징하며, 모든 중생에게 지혜와 깨달음을 전파하는 것으로 여겨진다.[7] 범종을 칠 때는 마음을 정화하고 진리와 마음챙김에 눈뜨게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7]

==== 우주와의 연결 ====

종의 형태와 디자인은 우주를 상징한다. 넓은 상단 부분은 하늘을, 가느다란 허리는 인간 세계를, 넓은 하단 부분은 지구를 나타낸다. 울리는 종소리는 우주와 조화를 이룬다고 여겨진다.[7]

==== 수행과 명상 ====

보신각의 종을 치는 과정에는 특정 의식이 포함된다. "범종(beomjong)"이라고 불리는 나무망치로 종을 치는 행위는 마음챙김과 집중을 필요로 하며, 명상의 한 형태이자 내적 평화를 기르는 수단으로 기능한다.[5]

==== 보호와 축복 ====

종은 부정적인 기운을 몰아내고 축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어진다. 종소리는 악령을 쫓고 긍정적인 기운을 불러들여 조화로운 환경을 만든다고 한다.[8]

==== 문화 유산 ====

한국 사찰의 종은 문화재로 여겨진다.[5] 이 종들은 뛰어난 장인정신을 보여주며, 종종 정교한 무늬, 조각, 그리고 명문으로 장식되어 고대 한국 장인들의 예술적, 기술적 기량을 반영한다.[8] 사찰의 종은 불교 가르침을 상기시켜주고, 수행을 돕는 역할을 하며, 심오한 철학적, 영적 의미를 담고 있는 한국 문화유산의 중요한 부분이다.

3. 1. 깨달음의 상징

범종 소리는 부처의 목소리를 상징하며, 모든 중생에게 지혜와 깨달음을 전파하는 것으로 여겨진다.[7] 범종을 칠 때는 마음을 정화하고 진리와 마음챙김에 눈뜨게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7]

3. 2. 우주와의 연결

종의 형태와 디자인은 우주를 상징한다. 넓은 상단 부분은 하늘을, 가느다란 허리는 인간 세계를, 넓은 하단 부분은 지구를 나타낸다. 울리는 종소리는 우주와 조화를 이룬다고 여겨진다.[7]

3. 3. 수행과 명상

보신각의 종을 치는 과정에는 특정 의식이 포함된다. "범종(beomjong)"이라고 불리는 나무망치로 종을 치는 행위는 마음챙김과 집중을 필요로 하며, 명상의 한 형태이자 내적 평화를 기르는 수단으로 기능한다.[5]

3. 4. 보호와 축복

종은 부정적인 기운을 몰아내고 축복을 가져다준다고 믿어진다. 종소리는 악령을 쫓고 긍정적인 기운을 불러들여 조화로운 환경을 만든다고 한다.[8]

3. 5. 문화 유산

한국 사찰의 종은 문화재로 여겨진다.[5] 이 종들은 뛰어난 장인정신을 보여주며, 종종 정교한 무늬, 조각, 그리고 명문으로 장식되어 고대 한국 장인들의 예술적, 기술적 기량을 반영한다.[8] 사찰의 종은 불교 가르침을 상기시켜주고, 수행을 돕는 역할을 하며, 심오한 철학적, 영적 의미를 담고 있는 한국 문화유산의 중요한 부분이다.

4. 보신각종의 역사적 배경

조선 시대 때 한양에 종을 처음 건 것은 1398년(태조 7년)으로, 광주에서 주조한 종을 청운교 서쪽 종루에 걸었다. 1413년(태종 13년)에 종루를 통운교(지금의 종로네거리)로 옮기고 1458년(세조 4년)에는 새로운 종을 주조하여 달았으나 임진왜란으로 종루는 소실되고 종도 파괴되었다.

그 후 1619년(광해군 11년)에 종각을 다시 짓고 종을 걸었는데 이때 세운 종각은 임진왜란 전의 2층 종루가 아니고 1층 종각이었으며 여기에 건 종은 명례동(지금의 명동 인근) 고개에 있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

보신각종은 본래 원각사에 있던 종으로 세조 때에 주조한 것인데 1536년(중종 31년)에 숭례문 안으로 옮겨 놓았다가 1597년(선조 30년) 명례동 고개로 옮겼던 것을 광해군 때 종각을 복구하면서 이전한 것이다. 그 후 조선 후기까지 4차례나 화재와 중건이 있다가 1895년(고종 32년)에 종각에 '보신각'이란 편액이 걸린 이후 종도 보신각종이라 부르게 되었다.

6·25전쟁으로 종각이 파손된 것을 1953년 중건하였다가 1979년 다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2층 종루로 복원하였고, 원래의 종을 보존하기 위해 1985년에 새로운 종을 주조하여 지금에 이른다.

서울에 위치한 보신각종은 풍부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도시의 중요한 랜드마크이자 시간을 알리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번화한 시장 한가운데 위치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성문의 개폐를 알리는 데 사용되었다.[8] 매일 저녁 종이 울려 성문 폐쇄를 알렸고, 그 이후로는 통행금지가 시행되었다.[8]

4. 1. 임진왜란과 그 이후

조선 시대 때 한양에 종을 처음 건 것은 1398년(태조 7년)으로, 광주에서 주조한 종을 청운교 서쪽 종루에 걸었다.[6] 1413년(태종 13년)에 종루를 통운교(지금의 종로네거리)로 옮기고 1458년(세조 4년)에는 새로운 종을 주조하여 달았으나 임진왜란으로 종루는 소실되고 종도 파괴되었다.[6]

그 후 1619년(광해군 11년)에 종각을 다시 짓고 종을 걸었는데 이때 세운 종각은 임진왜란 전의 2층 종루가 아니고 1층 종각이었으며 여기에 건 종은 명례동(지금의 명동 인근) 고개에 있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6]

보신각종은 본래 원각사에 있던 종으로 세조 때에 주조한 것인데[6] 1536년(중종 31년)에 숭례문 안으로 옮겨 놓았다가 1597년(선조 30년) 명례동 고개로 옮겼던 것을 광해군 때 종각을 복구하면서 이전한 것이다.[6] 그 후 조선 후기까지 4차례나 화재와 중건이 있다가 1895년(고종 32년)에 종각에 '보신각'이란 편액이 걸린 이후 종도 보신각종이라 부르게 되었다.

6·25전쟁으로 종각이 파손된 것을 1953년 중건하였다가 1979년 다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2층 종루로 복원하였고, 원래의 종을 보존하기 위해 1985년에 새로운 종을 주조하여 지금에 이른다.

서울에 위치한 보신각종은 풍부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도시의 중요한 랜드마크이자 시간을 알리는 수단으로 기능했다. 번화한 시장 한가운데 위치했으며, 조선 시대에는 성문의 개폐를 알리는 데 사용되었다.[8] 매일 저녁 종이 울려 성문 폐쇄를 알렸고, 그 이후로는 통행금지가 시행되었다.[8]

4. 2. 국보 지정과 현재



보신각종은 본래 원각사에 있던 종으로 세조 때인 1468년에 주조된 것이다.[6] 1536년(중종 31년)에 숭례문 안으로 옮겨 놓았다가 1597년(선조 30년) 임진왜란 중 화재로 파괴되었다.[6] 재건 후 명례동 고개로 옮겼던 것을 1619년(광해군 11년) 종각을 복구하면서 이전하였다. 그 후 조선 후기까지 4차례나 화재와 중건이 있다가 1895년(고종 32년)에 종각에 '보신각'이란 편액이 걸린 이후 종도 보신각종이라 부르게 되었다. 보신각종은 명문이 없어 그 기원은 불확실하다. 기록에 따르면 신덕왕후의 묘에 있었고, 원각사로 옮겨진 후 선조가 보신각으로 옮겼다고 한다.[6]

6·25 전쟁으로 종각이 파손된 것을 1953년 중건하였다가 1979년 다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2층 종루로 복원하였다. 1948년 국보 제2호로 지정된 보신각종은 현재 상태가 열악하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종루에는 복제품이 걸려 있다.[6] 원래의 종을 보존하기 위해 1985년에 새로운 종을 주조하여 지금에 이른다. 보신각은 도시 방어 시스템의 일부이자, 조선 시대에는 성문의 개폐를 알리는 데 사용되었다.[8] 매일 저녁 종이 울려 성문 폐쇄를 알렸고, 그 이후로는 통행금지가 시행되었다.[8] 오늘날 보신각종은 서울의 상징이며 문화적 중요성을 지닌다.

5. 현재

보신각의 편액은 고종이 직접 쓴 현판이었으나, 6·25 전쟁으로 전소했다. 현재의 편액은 1953년 중건 당시에 내걸었으며,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썼다. 1979년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된 보신각은 서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전통 목조 건물로 알려져 있다.

매년 양력 1월 1일 밤 12시를 기해 보신각종을 33번 치는 제야의 종 타종 행사는 대한민국의 가장 대표적인 새해 맞이 행사이다. 매년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열릴 때마다 수많은 시민이 보신각 앞에 운집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야의 종 타종 행사에서는 정례적으로 서울특별시장, 서울특별시의회 의장, 서울특별시교육감, 서울특별시지방경찰청장, 종로구청장이 참석하며 서울특별시 홈페이지 등을 통해 추천받은 다양한 분야를 대표하는 시민 대표 11명이 참여한다.

12월 31일 밤 이외에도 8월 15일 광복절, 3월 1일 삼일절 등 국경일 낮 12시에 기념 타종 행사를 갖고 있으며, 2013년 2월 25일 0시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을 기념하는 타종 행사가 열린 바 있다. 2009년 한 해 동안은 서울특별시청의 주관으로 매일 낮 12시에 시민 타종 체험 행사를 진행했다. 2020년부터 매년 12월 31일에 예정되어 있던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행사는 대한민국의 코로나19 범유행의 여파로 인하여 1953년 중건 이후 처음으로 취소되었으며, 사전에 녹화된 영상을 송출하는 별도의 온라인 행사에 온라인 영상 플랫폼 혹은 VR로 대체되었다가,[9][10][11][12] 2022년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한 뒤에 3년만 오프라인 대회 형식으로 재개되었다.

5. 1. 제야의 종 타종 행사

매년 마지막 날인 가는해 오는해(송구영신) 방송으로 자정을 앞둔 서울 보신각 현장에서 아나운서의 실황 중계한다.[14] 1953년 재건을 시작하여, 라디오 방송을 개시하였다.[15] 1999년부터 타종식 직전 카운트다운을 외쳤다.[13] 1999년에는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새천년준비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행사인 새천년맞이 국민대축제 생중계를 통해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장면을 송출했다. 2020년2021년에는 코로나19 범유행과 관련된 우려로 인해 사전에 촬영한 타종 영상을 송출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PmrxH3Sh4Y 2020-21년 온라인 타종 행사] [https://www.youtube.com/watch?v=P43jhOTSftU 2021-22년 온라인 타종 행사] 2022년부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한 뒤, 오프라인 대회 형식의 개최되었다. 매년 행사에 TV라디오를 통해 KBS 1TV(KBS 제1라디오) , YTN, 연합뉴스TV, 아리랑국제방송 등을 통해 보실 수 있다.

5. 2. 기타 타종 행사

2019년까지, 2022년 광복절부터 보도전문채널과 온라인 스트리밍 채널에 타종 행사를 실황 중계하고 있다. 2020년부터 2022년 삼일절까지 코로나-19 우려로 타종 행사가 열리지 않았다.

5. 3. 코로나19 팬데믹과 타종 행사

1953년 재건을 시작하여, 라디오 방송을 개시하였다.[13] 1999년부터 타종식 직전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같은 해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새천년준비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새천년맞이 국민대축제 생중계를 통해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장면을 송출했다. 매년 마지막 날인 가는해 오는해(송구영신) 방송으로 자정을 앞둔 서울 보신각 현장에서 아나운서의 실황 중계한다. 매년 행사에 TV라디오를 통해 KBS 1TV(KBS 제1라디오[14]), YTN, 연합뉴스TV, 아리랑국제방송 등을 통해 보실 수 있다.[15]

2019년까지, 2022년 광복절부터 보도전문채널과 온라인 스트리밍 채널에 실황 중계하고 있다. 2020년부터 2022년 삼일절까지 코로나-19 우려로 타종 행사를 열리지 않는다. 2020년2021년에는 코로나19 범유행과 관련된 우려로 인해 사전에 촬영한 타종 영상을 송출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PmrxH3Sh4Y 2020-21년 온라인 타종 행사] [https://www.youtube.com/watch?v=P43jhOTSftU 2021-22년 온라인 타종 행사] 2022년부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한 뒤, 오프라인 대회 형식의 개최되었다.

6. 타종 행사 중계

6. 1. [[삼일절]], [[광복절]]

2020년부터 2022년 삼일절까지는 코로나-19 우려로 타종 행사가 열리지 않았다. 2019년까지, 그리고 2022년 광복절부터는 보도전문채널과 온라인 스트리밍 채널에 타종 실황을 중계하고 있다.

6. 2. [[제야의 종]]

1953년 재건을 시작하여 라디오 방송을 개시하였다.[13] 매년 마지막 날인 가는해 오는해(송구영신) 방송으로 자정을 앞둔 서울 보신각 현장에서 아나운서의 실황 중계한다. 1999년부터 타종식 직전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같은 해 광화문 세종대로에서 새천년준비위원회 주관으로 열린 새천년맞이 국민대축제 생중계를 통해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 장면을 송출했다.[14] 2020년2021년에는 코로나19 범유행과 관련된 우려로 인해 사전에 촬영한 타종 영상을 송출했다.[15]

https://www.youtube.com/watch?v=aPmrxH3Sh4Y 2020-21년 온라인 타종 행사 https://www.youtube.com/watch?v=P43jhOTSftU 2021-22년 온라인 타종 행사

2022년부터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한 뒤, 오프라인 대회 형식으로 개최되었다. 매년 행사에 TV라디오를 통해 KBS 1TV(KBS 제1라디오) , YTN, 연합뉴스TV, 아리랑국제방송 등을 통해 보실 수 있다.

7. 타종 참여자

1953년부터 타종 행사가 시작되어, 각계 서울시장서울시의회의장, 서울지방경찰청장, 서울교육감 등이 참석해왔다. 1994년부터는 각계 시민 대표도 타종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년도공직 & 지자체 인물시민 대표 인물비고
1993-94년
1999-2000년
2003-04년
2013-14년
2014-15년
2015-16년
2016-17년
2017-18년
2018-19년
2019-20년
2021-22년[16]
2022-23년
2023~24년
2024~25년[20]


7. 1. 1990년대

1993-94년 제야의 종 타종 행사에는 이원종 서울시장, 백창현 서울시의장, 이기태 서울경찰청장, 이준해 서울시교육감 등 공직자와 1백10여 명의 시민 대표가 참여했다. 1999-2000년 행사에는 고건 서울시장, 최종오 서울시의장, 윤웅섭 서울경찰청장, 유인종 서울시교육감, 정흥진 종로구청장 등 공직자와 임권택, 황영조, 김혜영, 전방이, 권나원, 황보경, 최재웅, 황은혜, 서유태, 석봉기, 조용애, 박덕경, 유한샘, 김상영, 조규환 등 시민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년도공직 & 지자체 인물시민 대표 인물비고
1993-94년
1999-2000년


7. 2. 2000년대

2003-04년 제야의 종 타종 행사에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이성구 서울시의장, 이근표 서울경찰청장, 유인종 서울시교육감, 김충용 종로구청장 등 공직 및 지방자치단체 인사들과 박용성, 패티김, 유인촌, 강타, 박지은, 아하바 마틴, 리보 파라고, 야세르 핫산 엘사이에드, 모나켈리, 까리나 알렉산드로브나, 이문일, 양지혜, 배일도, 김자연, 김충용 등의 시민 대표자들이 참여했다.

년도공직 & 지자체 인물시민 대표 인물비고
2003-04년


7. 3. 2010년대

2010년대에는 매년 박원순 서울시장, 서울시의회 의장, 서울경찰청장, 서울시교육감, 종로구청장과 함께 시민 대표가 새해맞이 타종 행사에 참여했다.

년도공직 & 지자체 인물시민 대표 인물비고
2013-14년
2014-15년
2015-16년
2016-17년
2017-18년
2018-19년
2019-20년


7. 4. 2020년대

년도공직 & 지자체 인물시민 대표 인물비고
2021-22년[16]
2022-23년
2023~24년
2024~25년[20]


8. 역대 타종 사진



보신각

9. 교통

10. 미디어

영화 《시간이탈자》의 오프닝을 장식한 보신각 제야의 종을 행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참조

[1] 백과사전 옛 보신각 동종 (舊 普信閣 銅鍾) (The bell of Bosingak Pavilion) https://encykorea.ak[...] Academy of Korean Studies 2024-05-15
[2] 웹사이트 보물 옛 보신각 동종 (옛 普信閣 銅鍾) : 국가유산포털 - 문화재청 (The bell of Bosingak Pavilion) https://www.heritage[...] 2024-05-15
[3] 웹사이트 Bosingak Belfry http://english.visit[...] Korea Tourism Organization 2014-02-07
[4] 뉴스 보신각 종, 33번 치는 까닭은? http://www.hmhtimes.[...] 2020-11-13
[5] 웹사이트 Korean Buddhist Temple Bell https://www.antiquea[...] 2023-11-29
[6] 논문 Bosingak Bell: Enduring symbol of the Joseon Dynasty search.ebscohost.com[...] 2007
[7] 논문 King Seongdeok's Sacred Bell Resounds with the Truth search.ebscohost.com[...] 2004
[8] 웹사이트 The Seoul City Wall: Walking the History of Seoul https://www.seoulsol[...] The Seoul Institute 2018
[9] 뉴스 올해 보신각 '제야의 종소리' 못 듣는다…1953년 이후 처음 https://www.news1.kr[...] 2020-11-20
[10] 뉴스 제야의 종 타종행사도 취소, 67년 만에 처음…'미리 녹화' https://www.segye.co[...] 2020-12-06
[11] 뉴스 새해 '카운트다운' 사라지고 한파까지..도심 곳곳 썰렁 https://www.yna.co.k[...] 2020-12-31
[12] 뉴스 코로나가 바꾼 제야의 종 풍경…실제 행사 없이 영상으로 https://www.yna.co.k[...] 2020-12-31
[13] 일반
[14] 일반
[15] 일반
[16] 일반
[17] 일반
[18] 일반
[19] 일반
[20]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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