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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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난열은 전한의 인물로, 한신(회음후)의 모반을 고발한 공로로 진양후에 봉해졌다. 기원전 197년에 진양후가 되었으며, 전한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에 사망했다. 작위는 아들 난원지가 이었다. 난열은 전한 고제의 공신 서열 131위에 기록되어 있다.

난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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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난열은 한신의 사인(舍人)으로, 한신의 모반을 고변한 공로로 고제 11년(기원전 197년)에 진양후(열후)에 봉해지고 식읍 2천 호를 받았다.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에 죽었고, 작위는 아들 난원지가 이었다.

2.1. 한신 모반 고변

한신의 사인(舍人)으로, 한신의 모반을 고변한 공로로 고제 11년(기원전 197년)에 진양후(열후)에 봉해지고 식읍 2천 호를 받았다.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에 죽었고, 작위는 아들 난원지가 이었다.

2.2. 진양후 재임과 사망

회음후 한신의 사인(舍人)으로, 그의 모반을 알린 공로로 고제 11년(기원전 197년)에 진양후(信陽侯)에 봉해지고 식읍 2천 호를 받았다.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에 죽었고, 작위는 아들 난원지가 이었다.

3. 가계

한신의 사인(舍人)으로, 그의 모반을 알린 공로로 고제 11년(기원전 197년)에 진양후(陳陽侯)에 봉해지고 식읍 2천 호를 받았다.

경제 중6년(기원전 144년)에 죽었고, 작위는 아들 난원지가 이었다.

4. 출전

* 사마천, 《사기》 권18 고조공신후자연표
* 반고, 《한서》 권16 고혜고후문공신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