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교룡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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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교룡산성은 해발 518m의 교룡산에 돌로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3,120m이다. 동문, 옹성, 성벽 등이 남아 있으며, 동문터와 수문의 구조는 대한민국 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백제 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때 처영이 고쳐 쌓았다. 99개의 우물과 계곡이 있어 유사시 주민들의 대피 및 전투에 용이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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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교룡산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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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이름 | 남원 교룡산성 |
로마자 표기 | Namwon Gyoryongsanseong |
위치 |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곡동 16-1 |
문화재 정보 | |
국가 | 대한민국 |
유형 | 기념물 |
지정 번호 | 9 |
지정일 | 1973년 6월 23일 |
면적 | 일원 |
2. 역사
교룡산성은 언제 쌓았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성을 쌓은 입지나 형식으로 볼 때 백제 때 만든 것으로 보인다.[1] 조선 전기에는 군대의 식량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다.[1]
교룡산성은 해발 518m의 교룡산의 천연적인 지형지세를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으로, 둘레는 3,120m이다. 군데군데 성벽이 남아있다. 언제 쌓았는지는 기록이 없어서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성을 쌓은 입지나 형식으로 볼 때 백제 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에는 군대의 식량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다.[1]
3. 구조
3. 1. 시설물
동문은 무지개 모양으로 입구가 표현되어 있으며[1]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있다.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작은 성인 옹성[1]도 남아있다. 온전하게 남은 동문터와 수문은 우리나라 성곽 구조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성 안에는 우물 99개[1]가 있었다고 전해지며, 동쪽에 계곡[1]이 있어 주민들이 유사시에 대피하거나 전투를 할 때 유리했을 것으로 보인다.
4. 활용
교룡산성은 산성 주변 주민들이 유사시에 대피하거나 전투를 벌이는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1] 조선 전기에는 군대의 식량을 저장하는 창고로 활용되었다.[1]
5. 현황
교룡산성은 현재 무지개 모양으로 입구가 표현된 동문과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만든 작은 성인 옹성, 그리고 군데군데 성벽이 남아 있다.[1] 온전하게 남은 동문터와 수문에 보이는 성벽의 구조는 우리나라 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1]
6. 기타
교룡산성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는 현재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6. 1. 현지 안내문
돌로 쌓은 이 산성은 해발 518m인 험준한 교룡산을 에워싼 것으로, 둘레는 3.1km에 이른다. 산 중턱에 성벽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으며, 동쪽에 계곡이 있어 그곳에 반월형 출입문을 두었다. 성을 처음 쌓은 내력은 분명치 않으나, 그 터와 형식으로 보아 백제 시대에 쌓았던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1592년) 때 승병대장 처영이 고쳐 쌓았고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성안에는 우물이 99개나 있었고 밀덕봉과 복덕봉 등 산세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유사시 인근 주민이 대피하기 좋은 천혜의 요새지였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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