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선소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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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해 선소왜성은 1597년 와키자카 야스하루와 소 요시토시가 축성한 곳으로, 임진왜란 시기 왜군이 주둔했던 성이다. 윤산 천남대에 세워졌으며, 소 요시토시가 수비장을 맡아 1000여 명의 병력으로 약 1년간 주둔했다. 천수대와 내성의 석축이 남아있으며, 외성은 도로와 주택으로 인해 형태 확인이 어렵다. 성 인근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호인 남해 장량상 동정마애비가 있다.

남해 선소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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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1597년 11월 와키자카 야스하루(脇板安治)와 소 요시토시(宗義智)가 남해 선소왜성을 축성하였다. 이후 소 요시토시가 수비장이 되어 1000여 명의 병력으로 주둔했다. 윤산 천남대(天南臺)라는 언덕에 와카사카 야스히로가 성을 쌓았고, 언덕 정상부에는 성곽을 세 겹으로 쌓아 올린 천수각(지휘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남해왜성은 논과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천수대와 내성은 남아 있는 석축으로 그 형태를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외성은 도로와 주택으로 인해 불가능하다.

부둣가 왼쪽, 바다가 끝나는 부분에는 커다란 둥근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가로 131cm, 세로 253cm 크기의 직사각형 비석 모양으로 글을 새긴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27호인 남해 장량상 동정마애비(南海 張良相 東征磨崖碑)가 있다. 비석에는 덩굴 식물 문양인 당초문(唐草文)으로 띠를 둘러 새겼다.

2.1. 건립 배경

1597년 11월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脇板安治)와 소 요시토시(宗義智)가 남해 선소왜성의 축성을 담당했다. 이후 소 요시토시가 수비장이 되어 1000여 명의 병력으로 주둔했다. 와카사카 야스히로는 윤산 천남대(天南臺)라는 언덕에 성을 쌓았고, 순천에 주둔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위인 소 요시토시가 1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약 1년간 이곳에 주둔했다.

2.2. 주둔 병력 및 역할

1597년 11월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脇板安治)와 소 요시토시(宗義智)가 남해 선소왜성을 축성하였다. 이후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위인 소 요시토시가 수비장이 되어 1000여 명의 병력으로 약 1년간 주둔했다.

3. 구조

1597년 11월 와키자카 야스하루(脇板安治)와 소 요시토시(宗義智)가 남해 선소왜성의 축성을 담당했으며, 이후 소 요시토시가 수비장이 되어 1000여 명의 병력으로 주둔했다. 윤산 천남대(天南臺)라는 언덕에 축성되었고, 순천에 주둔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위인 소 요시토시가 1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약 1년간 주둔한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 남해왜성은 논과 밭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외성은 도로와 주택으로 인해 확인이 불가능하다.

부둣가의 왼쪽, 바다가 끝나는 부분에는 커다란 둥근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가로 131cm, 세로 253cm 크기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글을 새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호 남해 장량상 동정마애비가 있다. 비석에는 덩굴 식물 문양인 당초문으로 띠를 둘러 새겼다.

3.1. 천수대와 내성

1597년 11월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脇板安治)와 소 요시토시(宗義智)가 축성을 담당했으며, 이후 소 요시토시가 수비장이 되어 1000여 명의 병력으로 주둔했다. 오늘날 남해왜성은 논과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천수대와 내성은 남아 있는 석축으로 그 형태를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윤산 천남대(天南臺)라는 언덕에 1597년에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축성하였고, 순천에 주둔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위인 소 요시토시가 1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약 1년간 주둔한 곳이기도 하다. 언덕 정상부에는 성곽을 세 겹으로 쌓아 올린 천수각(지휘부)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2. 외성

1597년 11월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脇板安治)와 소 요시토시(宗義智)가 성을 쌓는 것을 담당했다. 이후 소 요시토시가 수비장이 되어 1000여 명의 병력으로 주둔했다. 오늘날 남해왜성은 논과 밭으로 이용되고 있다. 천수대와 내성은 남아 있는 석축으로 그 형태를 맨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외성은 도로와 주택으로 인해 불가능하다.

3.3. 장량상 동정마애비

부둣가의 왼쪽, 바다가 끝나는 부분에 커다란 둥근 바위가 있다. 이 바위에는 가로 131cm, 세로 253cm 크기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글을 새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호 남해 장량상 동정마애비가 있다. 비석에는 덩굴 식물 문양인 당초문으로 띠를 둘러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