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나다 신
1. 개요
다나다 신은 일본의 전 축구 선수이다. 히로시마현립 공업고등학교와 순텐도 대학을 졸업하고 1992년 히타치 (가시와 레이솔)에 입단하여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1993년 JFL 신인왕을 수상하고, JFL 베스트 11에 두 번 선정되었으며, 1994년 팀의 J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1995년에는 팀 내 득점왕을 차지했지만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1998년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로 이적하여 1999년 은퇴했다.
| 이름 | 다나다 신 |
|---|---|
| 원어 이름 | 棚田 伸 |
| 로마자 표기 | Tanada Shin |
| 출생일 | 1969년 7월 25일 |
| 출생지 | 일본 히로시마현히로시마시 |
| 신장 | 1.65m |
| 포지션 | 미드필더 |
| 利き발 | 왼발 |
| 1985-1987 | 히로시마 공업 고등학교 |
|---|---|
| 1988-1991 | 준텐도 대학 |
| 1992-1998 | 가시와 레이솔 (당시: 히타치) |
|---|---|
| 출장 | 120 |
| 득점 | 25 |
| 1998-1999 | 콘사돌레 삿포로 |
| 출장 | 40 |
| 득점 | 4 |
| 총 출장 | 160 |
| 총 득점 | 29 |
| 국가대표 | 해당 없음 |
|---|
| 감독 | 해당 없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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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미드필더 -
데이비드 플랫
데이비드 플랫은 잉글랜드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여러 클럽과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남자 축구 미드필더 -
크라시미르 발라코프
크라시미르 발라코프는 불가리아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선수 시절 불가리아 대표팀 소속으로 1994년 FIFA 월드컵 4강 진출을 이끌었으며 은퇴 후 여러 클럽과 불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
1969년 출생 -
이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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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출생 -
윌리엄 루이스 (언론인)
윌리엄 루이스는 잉글랜드 출신의 언론인으로, 파이낸셜 타임스, 데일리 텔레그래프 등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다우존스 앤 컴퍼니의 CEO를 거쳐 2023년 워싱턴 포스트의 CEO 겸 발행인으로 임명되었다. -
J2리그의 축구 선수 -
마루야마 요시아키
마루야마 요시아키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J리그와 태국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에는 지도자와 J리그 아시아 앰배서더로 활동했다. -
J2리그의 축구 선수 -
고지마 노부유키
고지마 노부유키는 쇼난 벨마레, 아비스파 후쿠오카 등에서 활약한 일본의 은퇴한 축구 골키퍼 선수로, 쇼난 벨마레 시절 천황배와 아시안 컵 위너스 컵 우승에 기여했으며 일본 국가대표로도 활동했고 은퇴 후에는 해설가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 선수 경력
히로시마현 출신으로 순텐도 대학을 졸업한 후, 1992년 당시 일본 축구 리그 소속이었던 히타치 (후의 가시와 레이솔)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입단 초기부터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팀의 주축 선수로 자리매김했고, 1995년에는 팀의 J1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J1리그 첫 시즌이었던 1995년에는 주전 선수로 활약했으나, 시즌 막바지에 큰 부상을 당했다. 부상에서 복귀한 1996년 이후로는 출전 기회가 점차 줄어들었으며, 1998년 10월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로 이적했다. 삿포로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다 1999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2.1. 유소년 시절
히로시마현립 공업고등학교 출신이다. 2학년 후배로는 쿠와바라 히로요시, 카지야마 요이치가 있다.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기용되었고, 기술이 뛰어난 왼발잡이로 '히로시마의 마라도나'라고 불렸다. 1985년 고교 총체에서 팀의 베스트 4 진출에 기여했으며, 1987년 고교 선수권에서는 첫 경기에서 무로란 오오타니 고등학교를 만나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다. 이때 유일하게 실축한 선수가 다나다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준텐도 대학에 진학했다.
2.2. 가시와 레이솔 시절
순텐도 대학 졸업 후, 1992년 당시 재팬 풋볼 리그(JFL) 소속이었던 히타치 제작소 축구부 (후의 가시와 레이솔)에 입단했다. 그는 예리한 드리블과 뛰어난 득점 감각, 높은 기술 수준을 바탕으로 입단 첫 해부터 공격형 미드필더로 많은 경기에 출전하며 주전 자리를 확보했고, 팀의 핵심 선수로 성장하여 등번호 10번을 달았다. 1992년과 1993년에는 2년 연속 재팬 풋볼 리그(JFL)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으며, 1993년에는 JFL 신인왕을 수상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1994년에는 팀의 J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팀이 J1리그로 승격한 첫 해인 1995년 시즌에는 주전 선수로서 44경기에 출전해 16골을 기록하며 팀 내 최다 득점자로 활약했다. 하지만 그해 연말 천황배 경기에서 왼쪽 무릎 십자 인대 파열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당해 약 1년간의 긴 재활 기간을 거쳐야 했다.
1996년 부상에서 복귀했지만, 이전과 같은 날카로운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주로 교체 선수로 투입되는 슈퍼 서브 역할을 맡았으며, 경기에 나올 때마다 인상적인 플레이를 보여 팬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출전 기회는 점차 줄어들었다. 결국 1998년 10월, 콘사돌레 삿포로로 이적하며 가시와 레이솔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2.3.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 시절
1998년 10월, 가시와 레이솔에서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로 이적했다. 당시 하위권에 머물던 팀에서 많은 경기에 출전하며 분투했지만, 1999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4. 개인 기록
wikitext
4.1. 기타 기록
* 기타 공식전
** 1998년: J1 참가 결정전 4경기 1득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