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무라 구니요시
1. 개요
다무라 구니요시는 일본의 무사, 정치가로, 센다이 번의 무사 가문 출신이다. 1852년 이시카와 요시미쓰의 아들로 태어나, 다무라 미치아키의 양자가 된 후 다무라 구니에이로 개명했다. 보신 전쟁에서 패배 후 은거했으나, 메이지 시대에 사면되어 신정부에 출사하여 궁중근번, 해군어용걸 등을 역임했다. 1882년 가독을 되찾고 자작이 되었으나, 1887년 3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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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이시카와 요시미쓰 |
|---|---|
| 다른 이름 | 다무라 요시아키 |
| 출생일 | 1852년 7월 7일 |
| 사망일 | 1887년 2월 26일 |
| 묘소 | 아오야마 묘지, 도쿄, 일본 |
| 국적 | 일본 |
| 역임 | 이와누마 번 다이묘 (1863년 ~ 1868년) |
|---|---|
| 최종 관위 | 종5위하 우쿄다이후 |
| 작위 | 자작 |
| 배우자 | 데루 (다무라 유키아키의 딸) |
|---|---|
| 아버지 | 이시카와 요시미쓰 |
| 어머니 | 모리야 가쓰하루의 딸 |
| 양아버지 | 다무라 미치아키 |
| 자녀 | 히로아키 모리 나가요시의 부인 |
| 양자 | 다카아키 |
| 시대 | 에도 시대 후기 - 메이지 시대 |
|---|---|
| 어릴 적 이름 | 이시카와 게이노신 |
| 다른 이름 | 다무라 히데아키, 다무라 구니요시 |
| 통칭 | 우치젠 |
| 계명 | 조쇼인덴 안도 구니요시 다이코지 |
| 섬긴 막부 | 도쿠가와 이에모치 요시노부 메이지 천황 |
| 씨족 | 이시카와 씨 → 다무라 씨 |
| 형제 | 이시카와 구니미쓰 구니요시 이시카와 도시자네 다카아키 이시카와 미쓰치카 종자 모토코 그 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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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다 이시카와가 -
다무라 다카아키 (1858년)
다무라 다카아키는 일본 무쓰 이시카와 가문 출신으로 보신 전쟁 후 이치노세키 번을 상속받아 메이지 시대에 지한사와 경시방어용걸을 역임했으나 은거 후 형이 가독을 이었다. -
무쓰 이시카와씨 -
야부키정
야부키정은 후쿠시마현 남부의 평야 지대에 위치하며 하천이 흐르는 완만한 지형을 가진 정으로, 하치만타로 요시이에 관련 전설에서 유래한 지명을 가지고 있고, 에도시대 시라카와 번의 영지였으며, 동일본대지진 피해를 극복하며 농업 기반 경제와 문화, 관광 자원을 통해 발전하고 있는 곳이다. -
무쓰 이시카와씨 -
다무라 다카아키 (1858년)
다무라 다카아키는 일본 무쓰 이시카와 가문 출신으로 보신 전쟁 후 이치노세키 번을 상속받아 메이지 시대에 지한사와 경시방어용걸을 역임했으나 은거 후 형이 가독을 이었다. -
막말 센다이번 사람 -
사이토 마코토
사이토 마코토는 일본 제국의 해군 군인이자 정치가로, 해군대신, 조선총독, 내각총리대신 등을 역임하며 해군력 확장, 문화 통치 추진, 만주국 승인, 국제연맹 탈퇴 등의 행적을 남겼으나 2·26 사건으로 암살당했다. -
막말 센다이번 사람 -
다카하시 고레키요
다카하시 고레키요는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 초기의 일본 정치가이자 금융가로, 일본은행 총재와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하며 러일 전쟁 외채 조달 성공, 쇼와 금융 공황 극복 등 일본 경제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2·26 사건으로 암살당했다.
2. 생애
무쓰 센다이번에서 태어난 다무라 구니요시는 1863년 이치노세키번주 다무라 미치아키의 양자가 되었다. 이후 보신 전쟁에 참전하였으나 패전하여 은거하였다가, 메이지 시대에 사면되어 신정부에서 일했다. 1882년 가독을 반환받고 1884년 자작이 되었으며, 1887년 3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2.1. 출생과 가계
多村 邦栄일본어는 1852년 5월 20일, 무쓰 센다이번의 일문 필두인 가쿠다 이시카와 가문 제13대 당주 이시카와 요시미쓰의 일곱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게이노신이었다. 요시미쓰의 할머니 후지히메는 이치노세키번 제5대 번주 田村 村資일본어의 자매였다.
1863년 10월, 무쓰 이치노세키번주 田村 通顕일본어(훗날 伊達 茂村일본어)가 종가인 센다이번주 伊達 慶邦일본어의 양자가 되면서, 미치아키의 양자가 되어 田村 栄顕일본어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후 요시쿠니에게서 이름 한 글자를 받아 田村 邦栄일본어로 개명하였다.
2.2. 보신 전쟁
게이오 4년(1868년) 보신 전쟁에서 센다이번과 함께 오슈 에치 레판 동맹에 참가하여 사쓰마·조슈 연합군과 싸웠으나 패전하고 항복하였다. 12월 7일 은거·금고 처분을 받고, 동생 다무라 다카아키(田村崇顕)에게 가독을 물려주었다.
2.3. 메이지 시대
분큐 3년(1863년) 10월, 무쓰 이치노세키번주 다무라 미치아키(田村通顕)(후일 다테 시게무라)가 종가인 센다이번주 다테 요시쿠니(伊達慶邦)의 양자가 되었기 때문에, 미치아키의 양자가 되어 다무라 에이켄(田村栄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후에 요시쿠니로부터 편휘를 받아 다무라 구니에이(邦栄)로 개명하였다. 게이오 4년(1868년) 보신 전쟁에서는 센다이번과 함께 오슈에치레쓰판 동맹에 참가하여 사쓰마・조슈 연합군과 싸웠으나 패전하고 항복하였다. 12월 7일 은거·금고를 명령받고, 동생 다무라 다카아키(田村崇顕)에게 가독을 양위하였다.
메이지 2년(1869년) 9월 사면되어 종오위에 복귀하였다. 그 후 신정부에 출사하여 궁중근번이나 해군어용걸 등을 역임하였다. 메이지 15년(1882년)에는 동생 다카아키로부터 가독을 반환받았고, 메이지 17년(1884년) 7월 8일, 자작(爵)이 되었다. 메이지 20년(1887년) 2월 26일 사망하였다. 향년 36세. 다무라가의 가독 및 작위는 아들 다무라 히로아키(田村丕顕)가 상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