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치바나노 가치코
1. 개요
다치바나노 가치코는 사가 천황의 황후이자 닌묘 천황의 어머니이다. 809년 사가 천황의 부인이 되어 정4위하에 올랐으며, 815년 황후가 되었다. 타치바나씨 출신으로 최초이자 마지막 황후이며, 불교에 귀의하여 일본 최초의 선종 사원인 단린지를 창건하여 단린 황후로 불렸다. 덴초 10년 태황태후가 되었으며, 조와의 변에 관여했다. 850년 출가 후 같은 해 6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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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 | 가치코 (嘉智子) |
|---|---|
| 이칭 | 단린 황후 (檀林皇后) |
| 출생 | 786년 |
| 사망 | 850년 6월 17일 |
| 사망 장소 | 헤이안쿄 (교토) |
| 씨족 | 다치바나 씨 (출생) |
| 씨족 (혼인) | 일본 황실 (혼인) |
| 아버지 | 다치바나노 기요토모 |
| 어머니 | 다구치 미치히메 |
| 배우자 | 사가 천황 |
| 자녀 | 닌묘 천황, 세이시 내친왕 외 다수 (히데코 내친왕, 히데라 친왕, 도시코 내친왕, 요시코 내친왕, 시게코 내친왕) |
| 황후 | 815년 8월 21일 – 823년 6월 5일 |
|---|---|
| 황태후 | 823년 6월 5일 – 833년 3월 26일 |
| 태황태후 | 833년 3월 26일 – 850년 6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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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 천황 -
구스코의 변
810년 헤이안 시대 초, 헤이제이 상황의 복위 시도와 헤이조쿄 천도 계획에 맞서 사가 천황이 이를 진압하며 벌어진 정치적 대립 사건인 구스코의 변은 황위 계승 문제와 귀족 간 권력 다툼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일본 초기 정치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사가 천황 -
일본후기
일본후기는 일본의 칙찬 역사서인 육국사 중 세 번째 책으로, 간무 천황부터 준나 천황까지 4대 천황 시대를 다루며, 천황과 관리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 와카 수록, 교토 황실의 벚꽃 개화 관찰 기록 등의 특징을 가진다. -
786년 출생 -
사가 천황
사가 천황은 809년에 즉위하여 823년까지 재위한 일본의 제52대 천황으로, 문치주의를 장려하고 정치 개혁을 시도했으며, 한시와 서예에 능하고 구카이를 지원하여 진언종 발전에 기여했다. -
786년 출생 -
준나 천황
준나 천황은 823년부터 833년까지 재위한 일본의 제53대 천황으로, 사가 천황의 양위를 받아 즉위하여 율령의 해와 일본후기의 편찬을 추진하고 지방 정치를 바로잡는 등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다가 닌묘 천황에게 양위 후 사망했다. -
다치바나씨 (공가) -
고시키부노 나이시
고시키부노 나이시는 헤이안 시대에 어머니 이즈미 시키부의 재능을 이어받아 궁중에서 활동하며 이름을 알린 시인이자 가인으로, 《오구라 백인일수》에 수록된 "오에야마" 시와 관련된 일화로 유명하며 칙찬집에 작품이 수록되고 후대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으나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
다치바나씨 (공가) -
다치바나노 기미나가
다치바나노 기미나가는 헤이안 시대에 후지와라노 후유츠구와 결혼하여 여러 아들을 두었고, 이 아들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다치바나 가문의 번영에 기여하여 후손들이 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 약력
사가 천황이 친왕이던 시절에 입시하여, 즉위 후인 다이도 4년 (809년) 6월에 부인이 되어 정4위하에 올랐다. 이듬해 고닌 원년 (810년) 11월, 종3위에 올랐다. 고닌 6년 (815년) 7월 13일, 황후에 봉해졌다. 사가 천황과의 사이에서 닌묘 천황(마사라 친왕), 마사코 내친왕(준나 천황 황후) 외 2남 5녀를 낳았다.
고닌 14년 (823년) 4월 23일, 사가 천황의 준나 천황 양위에 따라 황태후가 되었다. 덴초 10년 (833년) 3월 2일, 닌묘 천황 즉위로 태황태후가 되었다. 가쇼 3년 (850년) 3월에 낙식을 하고, 같은 해 5월 4일에 레이제이인에서 65세의 나이로 승하했다.
세상에 유례없는 미인이었다고 한다. 간무 천황의 황녀 코우즈/타카츠 내친왕이 비에서 폐출된 후, 인척인 후지와라노 후유츠구(카치코의 언니 안시/야스코(安子)는 후유츠구 부인 미츠코의 동생 타다모리/미모리의 아내였다) 등의 도움으로 황후에 봉해진 것으로 보인다. 타치바나씨 출신으로써는 최초이자 마지막 황후이다.
불교에 대한 믿음이 두터워 사가노에 일본 최초의 선종사원 단린지를 창건하였다. 단린지를 창건하여 단린 황후(檀林皇后)라 불리게 되었다. 사가 천황 양위 후에는 함께 레이제이인ㆍ사가인에서 살았다. 사가 상황의 승하 후에도, 태황태후로써 조정에서 은연한 세력을 지녔으며, 타치바나씨의 자제를 위해 대학별조 학관원을 설립하는 등, 세위를 자랑하였고, 닌묘 천황의 지위를 안정시키기 위해, 조와의 변에도 깊이 관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폐태자 츠네사다 친왕의 친모인 딸 마사코 내친왕은 카치코를 깊이 원망했다고 한다.
3. 가계
다치바나노 가치코는 다치바나노 기요토모와 그의 아내 다구치 미치히메 사이에서 태어났다. 사가 천황과의 사이에서 2남 5녀를 두었으며, 자녀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4. 일화
불교에 깊이 귀의한 다치바나노 가치코는 자신의 몸을 먹이로 삼아 새나 짐승의 굶주림을 구제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제행무상"의 진리를 몸소 보여주어 사람들의 마음에 보리심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죽음에 임하여 자신의 유해를 매장하지 않고 길가에 방치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가타비라가쓰지에서 시신이 부패하여 백골화되어 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고 하며, 그 유해의 변화 과정을 화가에게 그리게 했다는 전설도 있다.
또한, 당나라의 선승 의공을 초청하여 단린사에서 선 강의를 하게 했지만, 의공은 당시 일본에서 선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에 실망하여 몇 년 만에 당나라로 귀국했다.
6. 평가
세상에 유례없는 미인이었다고 한다. 간무 천황의 황녀 고즈 내친왕이 비에서 폐출된 후, 인척인 후지와라노 후유쓰구 등의 도움으로 황후에 봉해진 것으로 보인다. 다치바나씨 출신으로써는 최초이자 마지막 황후이다.
불교에 대한 믿음이 두터워 사가노에 일본 최초의 선종사원 단린지를 창건하였다. 그래서 단린 황후(檀林皇后)라 불리게 된다. 사가 천황 양위 후에는 함께 레이제이인ㆍ사가인에서 살았다. 사가 상황의 승하 후에도, 태황태후로써 조정에서 은연한 세력을 지녔으며, 타치바나씨의 자제를 위해 대학별조 학관원을 설립하는 등, 세위를 자랑하였고, 닌묘 천황의 지위를 안정시키기 위해, 조와의 변에도 깊이 관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폐태자 쓰네사다 친왕의 친모인 딸 마사코 내친왕은 가치코를 깊이 원망했다고 한다.
불교에 깊이 귀의하여 자신의 몸을 먹이로 삼아 새나 짐승의 굶주림을 구제하고, 또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제행무상"의 진리를 몸소 보여주어 사람들의 마음에 보리심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죽음에 임하여 자신의 유해를 매장하지 않고 길가에 방치하라고 유언하고, 가타비라가쓰지에서 시신이 부패하여 백골화되어 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또는, 그 유해의 변화 과정을 화가에게 그리게 했다는 전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