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사평
1. 개요
단사평은 937년 대의녕을 멸망시키고 대리국을 건국한 인물이다. 여러 차례 군공을 세워 통해절도사로 승진했으며, 양간정의 위협을 피해 동쪽 흑찬의 병력을 얻어 대의녕을 공격했다. 937년 대리국을 건국하고 연호를 문덕으로 정했으며, 938년 동가라를 상국으로, 수고방을 악후로 임명했다. 봉건제를 실시하고 8부, 4군, 33부를 설치하여 사회 생산력을 발전시켰으며, 944년 사망 후 성신문무황제, 신황제, 태조로 시호 및 묘호가 추존되었다. 단사평의 가문 배경은 한족 출신이라는 주장과 백족 출신이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 이름 | 태조 단사평 (大理太祖 段思平) |
|---|---|
| 왕조 | 대리국 |
| 칭호 | 왕 |
| 묘호 | 태조 (太祖) |
| 시호 | 성신문무황제 (聖神文武皇帝) |
| 휘 | 단사평 (段思平) |
| 출생 | 893년 |
| 사망 | 944년 |
| 출생지 | 서주, 대리 |
| 사망지 | 등주 |
| 아버지 | 단보륭 (段保隆) |
| 연호 | 문덕 (文德; 937–944) |
| 기간 | 937년–944년 |
|---|---|
| 계승자 | 단사영 |
| 사당 이름 | 태조 (太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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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준비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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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7년 출생 -
이욱
남당의 마지막 군주이자 뛰어난 시인이었던 이욱은 예술적 재능은 뛰어났으나 통치자로서의 역량 부족으로 남당 멸망 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으며, 그의 시는 오늘날까지도 널리 읽히고 있다. -
937년 출생 -
교황 요한 1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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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4년 사망 -
최언위
최언위는 신라 말과 고려 초의 문신으로, 당나라 유학 후 과거에 급제하고 신라와 고려에서 관직을 지냈으며, 고려 태조를 섬기며 평장사에 이르고 944년에 사망했다. -
944년 사망 -
왕연희
왕연희는 오대십국 시대 민나라의 제2대 군주이자 황제로, 조카 왕계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했으나 재위 기간 동안 폭정을 일삼다 측근에 의해 살해당했다. -
대리 황제 -
단정순
단정순은 김용의 무협 소설 《천룡팔부》에 등장하는 인물로, 대리국의 진남왕이자 일양지를 사용하는 무술의 달인이며,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
대리 황제 -
단지흥
단지흥은 대리국의 왕으로 재위 기간 동안 불교 사찰 복구와 방어 시설 건설 등의 사업을 추진했으며, 김용의 무협 소설에서는 '남제'로 묘사되는 가상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
단사평은 여러 차례 군공을 세워 대의녕의 통해절도사(通海節度使)로 승진했다. 양간정이 대천흥을 멸망시키고 세운 대의녕에서, 양간정의 동생 양조는 단사평에게 제왕의 상이 있다고 참소하여 양간정은 단사평을 죽이려 했다. 조선정의 신하였던 수고방(守高方)은 단사평과 친분이 있어 이 사실을 알렸다. 단사평의 동생 단사량은 군사(軍師) 동가라(董迦羅)와 함께 단사평을 보호했다. 이후 단사평은 동쪽 흑찬(黑爨) 37만부(蠻部)에게서 병사를 빌려 양간정을 공격하였다.
937년, 단사평은 대의녕을 멸망시키고 대리국을 세웠다. 연호를 문덕(文德)으로 정하고 수도를 대리에 두었다. 938년에는 동가라를 상국으로, 수고방을 악후(岳侯)로 임명하였다. 재위 기간 동안 봉건제를 실시하고, 8부(府)·4군(郡)·33부(部)를 설치하여 사회 생산력을 발전시켰다.
944년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성신문무황제(聖神文武皇帝), 묘호는 태조(太祖)이다. 단씨 가문은 한족 가문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며 간쑤성 출신이라고 주장했지만, 단사평이 백족의 일원이라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2.1. 건국 이전
단사평은 여러 차례 군공을 세워 대의녕의 통해절도사(通海節度使)로 승진했다.
양간정이 대천흥을 멸망시키고 세운 대의녕에서, 양간정의 동생 양조는 단사평에게 제왕의 상이 있다고 참소하였다. 이에 양간정은 단사평을 죽이려 했다. 조선정의 신하였던 수고방(守高方)은 단사평과 친분이 있어 이 사실을 알렸다. 단사평의 동생 단사량은 군사(軍師) 동가라(董迦羅)와 함께 단사평을 보호했다. 이후 단사평은 동쪽 흑찬(黑爨) 37만부(蠻部)에게서 병사를 빌려 양간정을 공격하였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단사평은 야생 복숭아를 먹다가 과일 껍질에 '청석'(靑昔) 두 글자가 쓰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단사평은 '청'(靑)이 12월, '석'(昔)이 21일을 의미한다고 판단하여, 이를 대의녕 공격 시기에 대한 징조로 이해했다.
2.2. 대리국 건국
937년, 단사평은 대의녕을 멸망시키고 대리국을 세웠다. 연호를 문덕(文德)으로 정하고 수도를 대리에 두었다.
단사평은 여러 번 군공을 쌓아 대의녕의 통해절도사(通海節度使)로 승진했다. 당시 대의녕은 양간정이 대천흥을 멸망시키고 세운 나라였는데, 양간정의 동생 양조가 단사평이 제왕의 상이 있다고 참소하자 양간정은 단사평을 죽이려고 하였다. 마침 대천흥의 황제였던 조선정의 신하 수고방(守高方)은 단사평과 친분이 있었으므로 사람을 보내 단사평에게 이를 알렸고, 단사평의 동생 단사량은 군사(軍師) 동가라(董迦羅)와 함께 단사평을 보호하였다. 이후 단사평은 동쪽 흑찬(黑爨)의 37만부(蠻部)에게서 병사를 빌려 양간정을 공격하였다.
2.3. 통치와 사망
938년, 동가라를 상국으로, 수고방을 악후(岳侯)로 임명하였다. 재위 기간 동안 봉건제를 실시하고, 8부(府)·4군(郡)·33부(部)를 설치하여 사회 생산력을 발전시켰다.
944년 사망하였으며, 시호는 성신문무황제(聖神文武皇帝), 묘호는 태조(太祖)이다.
3. 가문 배경 논란
단사평의 가문은 한족 가문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며 간쑤성 출신이라고 주장했지만, 단사평이 백족의 일원이라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재기》(滇載記중국어)에는 단씨의 조상이 무위 출신이며, 남조의 맹씨를 전투에서 도운 후 정치적 지위를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6대손인 사평은 다른 징조 아래 태어났다."
4. 기타
단씨 가문은 한족 가문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며 간쑤성 출신이라고 주장했지만, 단사평이 백족의 일원이라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단사평은 통해현의 지사였다. 대의녕 왕국의 통치자 양간진은 그를 두려워하여 투옥하려 했다. 단사평은 숨어 군사를 모아 싸웠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단사평은 야생 복숭아를 먹다가 과일 껍질에 '청석'(qing xi 青昔) 두 글자가 쓰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단사평은 첫 번째 글자인 '청'(qing)이 12월을 의미하고, 두 번째 글자인 '석'(xi)이 21일을 의미한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것을 대의녕을 공격해야 할 시기에 대한 징조로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