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고륜공주
1. 개요
단장고륜공주는 명 만력제의 딸이자 누르하치의 며느리이며, 청 태종 홍타이지의 고모이다. 1578년에 태어나 1588년 호호리에게 시집갔으며, 1636년 고륜공주로 책봉되었다. 1652년 75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강희제에 의해 단장이라는 시호가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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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의 공주 -
고륜화경공주
청나라 건륭제의 딸인 고륜화경공주는 코르친 보르지기트 씨족에 하가하여 건륭제의 총애를 받으며 호화로운 생활을 했고, 4남 4녀를 두었으며 현재 베이징 차오양구에 묘가 있다. -
청나라의 공주 -
천명제 황5녀
천명제 황5녀는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의 딸로, 1608년 달계에게 시집갔지만 17세에 사망했으며, 건륭제 시대에 화석공주로 추존되었다. -
1578년 출생 -
페르디난트 2세
페르디난트 2세는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보헤미아와 헝가리의 왕으로, 반종교개혁을 추진하여 30년 전쟁의 원인이 되었으나 초기에는 승리했으나, 이후 전쟁의 역전과 재정난 속에 아들에게 제위를 계승했다. -
1578년 출생 -
인헌왕후
인헌왕후는 조선 추존왕 원종의 비이자 인조의 생모로, 인조반정 이후 왕후로 추존되었으며, 복잡한 왕실 혼맥을 통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가문의 위상을 높였다. -
1652년 사망 -
호세 데 리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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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2년 사망 -
그레고리오 알레그리
그레고리오 알레그리는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 작곡가이자 시스티나 성당 합창단 알토 가수로, 조반니 베르나르디노 나니노에게 음악 교육을 받고 페르모 대성당에서 생계를 유지하며 종교 음악을 작곡했으며, 특히 미제레레는 시스티나 성당에서 매년 연주되고 모차르트의 필사 일화로 유명하며, 콘체르타토 양식과 팔레스트리나 양식을 융합한 독특한 스타일로 초기 현악 사중주 작곡가로도 평가받는다.
2. 생애
누르하치의 장녀로 태어나 명나라 만력 16년(1588년) 호호리에게 시집갔다. 남편이 동악씨(東岳氏) 부족의 수령이었기에 동악격격(董鄂格格)으로도 불렸다. 동생 홍타이지가 즉위한 후에도 존중을 받았으며, 숭덕 원년(1636년)에는 [[고륜공주]](固倫公主)로 책봉되었다. 순치 9년(1652년) 7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사후 강희제 때 '단장(端莊)'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2.1. 출생과 가계
명 만력 6년 (1578년) 2월 22일 술시(戌時)에 누르하치의 장녀로 태어났다. 이름은 눈철(嫩哲) 또는 문철(文哲) 등으로 전해진다.
만력 16년 (1588년) 4월, 누르하치는 자신에게 귀순한 호호리에게 장녀를 시집보냈다. 남편인 호호리는 동악씨(東岳氏, 또는 東古, 東果) 부족의 수령이었기 때문에, 당시의 풍습에 따라 남편 집안의 칭호를 사용하여 동악격격(董鄂格格)이라고도 불렸다.
2.2. 청나라 초기 활동
누르하치의 장녀인 그녀는 남편 호호리가 동악씨(東岳氏) 수령이었기에, 당시 풍습에 따라 남편 집안의 칭호를 따서 동악격격(董鄂格格)으로 불리기도 했다.
《청초 내국사원 만문기록부》에 따르면, 천총 7년(1633년), 동생 홍타이지가 여러 패륵과 대신들을 데리고 대패륵의 저택을 방문하여 축하한 뒤, 누나인 동악격격의 저택을 찾아가 축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듬해인 천총 8년(1634년)에도 홍타이지는 신년 예식으로 동악격격을 방문하여 축하했다. 천총 9년(1635년)에는 홍타이지가 여러 패륵과 함께 누나인 눈철 격격(동악격격)을 찾아갔는데, 그녀가 삼배구고두례를 하려 하자 칸(홍타이지)이 이를 만류했다는 내용이 《천총9년 문서》에 기록되어 있다.
숭덕 원년(1636년) 11월, 홍타이지는 두 누이인 문철(文哲)과 안철(顔哲, 안철)을 포함한 여성 친족 7명에게 작위를 내렸다. 이때 동악격격으로 여겨지는 문철은 [[고륜공주]](固倫公主)로, 이복동생인 안철은 화석공주(和碩公主)로 책봉되었다.
2.3. 사망과 추증
순치 9년(1652년) 7월,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강희제 시대에 후손인 제석주가 공주의 묘비를 세우려 할 때 시호가 없음을 알고 추증을 요청하였다. 이에 강희제의 명으로 '단장(端莊)'이라는 시호를 추증받고 비문을 하사받았다.
3. 비문
단장고륜공주에게 내려진 비문은 국가가 황실 친족에게 베푸는 은혜와 고인의 덕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비문에서는 먼저 국가가 친족을 각별히 생각하여 은혜를 베풀고, 덕망 높은 이를 추모하여 예를 다하는 원칙을 밝힌다.
비문에 따르면, 단장고륜공주는 태조 고황제(누르하치)의 딸이자 비문을 내린 황제의 고모할머니뻘 되는 인물이다. 공주는 "금지옥엽(金枝玉葉)"으로 태어나 복을 타고났으며, 성품은 본래 정숙하고 조용하며 부드럽고 아름다워 황실 여성의 규범에 부합했다고 칭송받는다. 또한 공훈이 있는 오랜 가문으로 시집가서는 현명하고 신중하게 집안을 다스리며 여성의 교화를 널리 폈다고 평가된다.
공주가 세상을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생전의 아름다운 모습과 훌륭한 명성은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다고 비문은 전한다. 이에 공주의 후손인 치시(齊錫)가 선조 할머니를 잊지 않고 그 공덕을 기리고자 표창해 줄 것을 간청하자, 황제는 특별히 큰 은혜를 베풀어 주청을 받아들이고 '정장(靖莊)'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비문은 마지막으로 공주의 아름다운 모습은 여전히 남아 그 이름이 빛나고, 역사 기록에 길이 남을 것이며 황제의 특별한 은총이 빛남을 강조하며 끝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