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존
1. 개요
당존은 전한 시대부터 신나라 시대의 인물로, 장무고의 제자로서 학문을 익혔고, 태부와 평화후를 역임했다. 그는 검소한 생활을 강조하며 공경들에게도 이를 따르게 했으나, 허황된 명성을 얻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왕망을 호위하다가 경시제 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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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라의 태부 -
평안 (전한)
평안은 전한 말부터 신나라 초까지 활동하며 전한에서 상서령과 대사도를, 신나라에서는 태부를 역임하며 왕망 정권의 핵심 인물로 국정을 보좌했으나, 그의 행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
신나라의 후작 -
녹병
녹병은 전한 시대에 법률을 공부하여 장작대장을 지내고 몽향후에 봉해졌으며, 신나라 시대에는 대사마를 지냈으나 일식의 책임을 지고 면직된 인물이다. -
신나라의 후작 -
위견거
위견거는 전한 시대에 익한후에 봉해졌으며, 신나라 건국 후 익신후로 작위가 변경되었으나 신나라 멸망 이후 후사가 끊어졌다. -
23년 사망 -
유흠
유흠은 전한 말기부터 신나라 시대의 학자이자 관료로서, 왕망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여러 업적을 남겼으나, 왕망을 전복하려다 실패하여 비극적인 최후를 맞고 고문경 위작 의혹에도 휩싸였다. -
23년 사망 -
왕광 (신)
왕광은 신나라 말기 왕망의 측근 왕순의 아들로 태사와 장군직을 계승하고 조역대장군에 임명되어 적미군 토벌에 나섰으나 실패 후 항복, 처형되었으며, 방종한 행실과 군사적 무능함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2. 생애
장무고에게서 학문을 배워 기준, 설방, 순월, 순상, 당림과 함께 경서에 밝고 몸가짐이 단정하여 명성을 떨쳤다. 지황 원년(20년), 태부 평안이 죽자 뒤를 이어 태부가 되었다. 그는 "나라가 텅 비고 백성이 가난한 것은 사치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솔선수범하였다. 짧은 옷을 입고, 땔나무로 짠 수레에 암말을 매어 타고, 볏짚을 이부자리로 삼고, 질그릇으로 먹고 마시는 등 절약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공경(公卿)들에게도 이를 따르게 하였다. 길거리에서 남녀가 함께 걷는 것을 보면, 붉은 물을 들인 헝겊으로 그들의 옷을 더럽히는 벌을 주기도 하였다. 왕망은 이러한 당존의 행실을 높이 평가하여 평화후(平化侯)에 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식적인 행동이었다. 지황 4년(23년), 경시제가 침공하여 도성이 함락되자 당존은 누대에서 병사들에게 살해당했고, 신나라는 멸망하였다.
2.1. 초기 생애 및 학문
장무고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기준, 설방, 순월, 순상, 당림과 함께 경서에 밝고 몸가짐이 단정하여 명성을 떨쳤다.
| 이름 |
|---|
| 기준 |
| 설방 |
| 순월 |
| 순상 |
| 당림 |
2.2. 왕망의 신임과 정치 활동
장무고에게서 학문을 배웠고, 기준, 설방, 순월, 순상, 당림과 함께 경서에 밝고 몸가짐이 단정하여 명성을 떨쳤다.
지황 원년(20년), 태부 평안이 죽자, 여우 당존은 평안의 뒤를 이어 태부가 되었다. 당존은 "나라가 가난하고 백성이 고통받는 것은 사치 때문입니다"라고 왕망에게 진언했다.
당존은 짧은 옷을 입고, 땔나무로 짠 수레에 암말을 매어 타고, 볏짚을 이부자리로 삼고, 질그릇으로 먹고 마셨으며, 공경(公卿)들에게도 이를 따르게 하였다. 거리에서 남녀가 같은 길을 걷는 것을 보면, 수레에서 내려 붉은 물을 들인 헝겊으로 그들의 옷을 더럽힘으로써 벌주었다. 왕망은 당존의 행실을 치하하여 평화후(平化侯)에 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당존의 행동은 허황되게 꾸며낸 명성이었다.
『한서』 포선전(鮑宣傳)에서는, 당존이 해진 헌 옷을 입고, 구멍 난 신발을 신고, 조악한 그릇으로 식사를 했으며, 공경(公卿)들에게도 이 그릇들을 선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왕망전(王莽傳)에서는, 소매가 짧은 의복("단의소수(短衣小袖)")을 입고, 암말이 끄는 조악한 수레("시차(柴車)")를 탔으며, 짚을 잠자리로 삼았다고 전한다.
2.3. 평가
장무고에게서 학문을 배웠고, 기준, 설방, 순월, 순상, 당림과 함께 경서에 밝고 몸가짐이 단정하여 명성을 떨쳤다.
지황 원년(20년), 태부 평안이 죽자, 당존은 평안의 뒤를 이어 태부가 되었다. 그는 "나라가 텅 비고 백성이 가난한 것은 사치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솔선수범하였다.
짧은 옷을 입고, 땔나무로 짠 수레에 암말을 매어 타고, 볏짚을 이부자리로 삼고, 질그릇으로 먹고 마셨으며, 공경(公卿)들에게도 이를 따르게 하였다. 길거리에서 남녀가 같은 길을 걷는 것을 보면, 수레에서 내려 붉은 물을 들인 헝겊으로 그들의 옷을 더럽히는 벌을 주었다. 왕망은 당존의 행실을 치하하여 평화후(平化侯)에 봉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당존의 행동은 허황되게 꾸며낸 명성이었다. 『한서』 포선전(鮑宣傳)은 당존을 전한 말기부터 신나라 시대에 걸친 "청명지사(清名之士)" 중 한 명으로 칭하는 한편, "허위로 명성을 얻었다"라고 비난하고 있다.
3. 출전
* 반고, 《한서》
권72 왕공양공포전
권88 유림전
** 권99하 왕망전 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