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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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평안은 전한 시대와 신나라 시대의 인물로, 전한 평제 때 상서령, 장락소부를 역임하고 대사도에 올랐다. 왕망의 신나라 건국 후에는 취신공에 봉해지고 태부가 되었으며, 왕순, 유흠, 애장과 함께 사보로 불렸다. 천봉 원년에는 낙양에 파견되어 종묘와 사직 건설 예정지를 선정했으며, 지황 원년에 사망했다.

평안 (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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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평안은 전한 평제 때 상서령·장락소부를 역임하였고, 원시 5년(5년) 방향(防鄕侯)에 봉해지고 대사도로 승진하였다.

왕망의 복심 중 한 명으로, 그 아래에서 기밀(「기사」)을 관할했다. 평제가 즉위한 원수 2년 (기원전 1년) 시점에서는 상서령의 지위에 있었고, 후에 장락소부로 옮겨졌다. 원시 5년 (5년) 윤달, 방향후에 봉해져 천 호를 영유했다. 같은 해 12월, 대사도로 승진했다.

시건국 원년 (9년), 왕망이 을 건국함과 함께 평안은 취신공에 봉해져 태부에 임명되었다. 이로 인해 평안은, 태사 왕순, 국사 유흠, 국장 애장과 함께 사보로 여겨졌다. 또한, 이때부터 영상서사도 겸임한 것으로 보인다. 시건국 2년 (10년), 견풍의 아들 견심이 왕망에게 헌상한 부명에 근거하여 평안은 좌백에 임명되었다.

천봉 원년 (14년), 왕망의 명령으로 평안은 대사공 왕읍과 함께 낙양에 파견되어, 왕망을 위해 종묘·사직·교조의 건설 예정지를 선정했다. 같은 해 3월, 영상서사의 겸임을 해제했다. 또한, 이 해의 사건으로 생각되는데, 평안은 규정보다 많은 관리들을 고용하고 있었기에, 부사에게 심문을 받자 이에 반발한 태부부의 관리들이 부사를 구금해 버렸다. 왕망은 이것을 듣고 격노하여 전차 수백 대를 동원하여 태부부를 포위하고, 부사를 구금한 관리를 체포하여 즉시 처형했다.

지황 원년 (20년), 평안은 태부의 지위에 있는 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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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평안(平晏)
시대전한 시대 -
생몰년출생년도 미상 - 20년 (지황 원년)
자·별호〔불상〕
출신지우부풍 평릉현
직관상서령 〔전한〕→ 장락소부 〔전한〕
작위·호 등방향후〔전한〕→ 취신공〔신〕
진영·소속 등애제 → 평제 → 유자영 → 왕망
가족·일족아버지: 평당

2.1. 전한 시기

평안은 전한 평제 때 상서령·장락소부를 역임하였고, 원시 5년(5년) 방향(防鄕侯)에 봉해지고 대사도로 승진하였다. 시건국 원년(9년), 왕망이 신나라를 창건하자 취신공(就新公)에 봉해지고 태부가 되어, 태사(太師) 왕순·국사(國師) 유흠·국장(國將) 애장과 함께 사보(四輔)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경조대윤 견심의 부명(符命)으로 좌백(左伯)이 되었다.

천봉 원년(14년), 평안은 대사공 왕읍과 함께 낙양으로 파견되어 종묘와 사직·교조(郊兆)를 세울 터를 골랐다. 지황 원년(20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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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평안(平晏)
시대전한 시대 -
생몰년출생년도 미상 - 20년 (지황 원년)
자·별호〔불상〕
출신지우부풍 평릉현
직관상서령 〔전한〕→ 장락소부 〔전한〕
작위·호 등방향후〔전한〕→ 취신공〔신〕
진영·소속 등애제 → 평제 → 유자영 → 왕망
가족·일족아버지: 평당


왕망의 복심 중 한 명으로, 그 아래에서 기밀(「기사」)을 관할했다. 평제가 즉위한 원수 2년 (기원전 1년) 시점에서는 상서령의 지위에 있었고, 후에 장락소부로 옮겨졌다. 원시 5년 (5년) 윤달, 방향후에 봉해져 천 호를 영유했다. 같은 해 12월, 대사도로 승진했다.

시건국 원년 (9년), 왕망이 신을 건국함과 함께 평안은 취신공에 봉해져 태부에 임명되었다. 이때부터 영상서사도 겸임한 것으로 보인다. 시건국 2년 (10년), 견풍의 아들 견심이 왕망에게 헌상한 부명에 근거하여 평안은 좌백에 임명되었다.

천봉 원년 (14년), 왕망의 명령으로 평안은 대사공 왕읍과 함께 낙양에 파견되어, 왕망을 위해 종묘·사직·교조의 건설 예정지를 선정했다. 같은 해 3월, 영상서사의 겸임을 해제했다. 또한, 이 해의 사건으로 생각되는데, 평안은 규정보다 많은 관리들을 고용하고 있었기에, 부사에게 심문을 받자 이에 반발한 태부부의 관리들이 부사를 구금해 버렸다. 왕망은 이것을 듣고 격노하여 전차 수백 대를 동원하여 태부부를 포위하고, 부사를 구금한 관리를 체포하여 즉시 처형했다.

2.2. 신나라 시기

전한 평제 때 상서령·장락소부를 역임하였고, 원시 5년(5년) 방향(防鄕侯)에 봉해지고 대사도로 승진하였다. 왕망의 복심 중 한 명으로, 그 아래에서 기밀(「기사」)을 관할했다.

시건국 원년(9년), 왕망이 신나라를 창건하자 평안은 취신공(就新公)에 봉해지고 태부가 되어, 태사(太師) 왕순·국사(國師) 유흠·국장(國將) 애장과 함께 사보(四輔)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경조대윤 견심의 부명(符命)으로 좌백(左伯)이 되었다.

천봉 원년(14년), 평안은 대사공 왕읍과 함께 낙양으로 파견되어 종묘와 사직·교조(郊兆)를 세울 터를 골랐다. 같은 해 3월, 영상서사의 겸임을 해제했다. 또한, 이 해의 사건으로 생각되는데, 평안은 규정보다 많은 관리들을 고용하고 있었기에, 부사에게 심문을 받자 이에 반발한 태부부의 관리들이 부사를 구금해 버렸다. 왕망은 이것을 듣고 격노하여 전차 수백 대를 동원하여 태부부를 포위하고, 부사를 구금한 관리를 체포하여 즉시 처형했다.

지황 원년(20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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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평안(平晏)
시대전한 시대 -
생몰년출생년도 미상 - 20년 (지황 원년)
자·별호〔불상〕
출신지우부풍 평릉현
직관상서령 〔전한〕→ 장락소부 〔전한〕
작위·호 등방향후〔전한〕→ 취신공〔신〕
진영·소속 등애제 → 평제 → 유자영 → 왕망
가족·일족아버지: 평당

2.3. 사망

전한 평제 때 상서령·장락소부를 역임하였고, 원시 5년(5년) 방향후(防鄕侯)에 봉해지고 대사도로 승진하였다.

시건국 원년(9년), 왕망을 창건하였다. 평안은 취신공(就新公)에 봉해지고 태부가 되어, 태사 왕순·국사(國師) 유흠·국장(國將) 애장과 함께 사보(四輔)가 되었다. 이듬해에는 경조대윤 견심의 부명(符命)으로 좌백(左伯)이 되었다.

천봉 원년(14년), 평안은 대사공 왕읍과 함께 낙양으로 파견되어 종묘와 사직·교조(郊兆)를 세울 터를 골랐다. 지황 원년(20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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