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 제주도
1. 개요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 제주도는 1948년 5월 10일에 실시된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주도 지역의 선거 결과를 다룬다. 선거구는 북제주군 갑, 북제주군 을, 남제주군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선거구별 당선자는 북제주군 갑 홍순녕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북제주군 을 양병직 (대한청년단), 남제주군 오용국 (무소속)이다. 당시 제주도는 좌우익 갈등이 심각했고, 제주 4·3 사건의 영향으로 남제주군 선거 결과는 상세 정보가 미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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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의 국회의원 선거 결과 -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 제주도
대한민국 제8대 국회의원 선거 제주도는 1971년에 제주시·북제주군과 남제주군에서 진행되었으며, 민주공화당의 홍병철 후보와 현오봉 후보가 각각 당선되었다. -
제주특별자치도의 국회의원 선거 결과 -
대한민국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제주도
1978년 12월 12일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10대 국회의원 선거 제주도에서는 민주공화당의 현오봉과 무소속의 변정일이 당선되었으며, 총 투표수는 184,716표였다. -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 -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 경상남도
1948년 5월 10일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는 31개 선거구에서 무소속, 한국민주당, 조선민족청년단,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조선공화당 소속의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 -
유엔 총회 결의 제112호
유엔 총회 결의 제112호는 2차 세계 대전 후 한반도 독립과 통일 문제 해결을 위해 1947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결의로, 한국 독립 요구를 인정하고 유엔 한국 임시위원단을 설치하여 한국 정부 수립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나, 미소공동위원회 결렬과 북한 반발로 한반도 분단을 심화시켰다.
2.1. 북제주군 갑 (제1선거구)
북제주군 갑 선거구는 북제주군 제주읍, 조천읍, 구좌읍을 포함한다.
2.2. 북제주군 을 (제2선거구)
북제주군 을 선거구는 북제주군 애월읍, 한림읍, 추자면을 포함했다.
2.3. 남제주군 (제3선거구)
남제주군 일원을 포함한다.
3. 개표 결과
제주 4·3 사건의 영향으로, 1948년 5월 10일에 치러진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 남제주군 선거구에서는 무소속 오용국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 다른 후보자들의 득표수나 득표율 등 상세한 선거 결과는 전해지지 않는다. 북제주군 갑, 을 선거구는 1949년 5월 10일에 선거가 실시되었다.
3.1. 북제주군 갑 (제1선거구)
1949년 5월 10일 실시되었다.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소속 홍순녕 후보가 당선되었다.
3.2. 북제주군 을 (제2선거구)
1949년 5월 10일 실시되었다. 대한청년단 소속 양병직 후보가 당선되었다.
3.3. 남제주군 (제3선거구)
1948년 5월 10일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 오용국 후보가 남제주군 선거구에서 당선되었다. 그러나 제주 4·3 사건의 영향으로, 오용국 후보를 제외한 다른 후보자들의 득표수나 득표율 등 자세한 선거 결과는 남아있지 않다.
4.1. 북제주군 갑
4.2. 북제주군 을
1949년 5월 10일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청년단 양병직 후보가 당선되었다.
4.3. 남제주군
제주 4·3 사건의 여파로 인해,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 당시 남제주군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자의 이름, 정당과 오용국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사실만 전해질 뿐 상세한 선거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다.
| 정당 | 후보 | 득표수 | 득표율 |
|---|---|---|---|
| 무소속 | 오용국 | 불명 | 불명 |
5. 제주 4.3 사건과의 관계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는 제주 4·3 사건 와중에 치러졌다. 특히 남제주군 선거는 4.3 사건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정상적인 선거 진행이 어려웠으며, 이로 인해 선거 결과가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 4.3 사건은 제주도민들의 정치적 의사 표현을 억압하고, 민주주의적 절차를 훼손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평가된다.
제주 4·3 사건의 여파로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 당시 남제주군 선거구에 출마한 후보자의 이름, 정당과 오용국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사실만 전해질 뿐 상세한 선거 결과는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