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청년단
1. 개요
대한청년단은 1949년 결성된 대한민국의 청년 단체였다. 이승만이 총재를, 신성모가 단장을 맡았으며, 김두한 등 여러 정치인이 간부로 활동했다. 군사 조직으로 전환되기도 했으며, 제헌 국회의원 선거와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후보를 내고 당선자를 배출했다. 1952년 지방 선거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후 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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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청년단은 1948년 이승만 노선에 따라 5.10 총선거와 단독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9명의 당선자를 배출한 단체이다.
2. 결성 배경
3. 조직 구조 및 활동
3.1. 주요 간부
대한청년단의 총재는 이승만이며, 단장은 신성모가 맡았다. 김두한은 건설국장 겸 감찰부국장을 맡았다. 최고위원은 장택상, 지청천, 전진한, 노태준, 유진산, 서상천, 강낙원 등이었다.
4. 군사 조직으로의 전환
5. 정치 활동 및 선거 결과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청년단은 총 4명의 후보를 냈으며, 7,016표(0.1%)를 얻어 1명이 당선되었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10명이 당선되었고, 227,539표(3.3%)를 획득하였다.
1952년 지방 선거에서는 도의원 34명, 시의원 40명, 읍의원 229명, 면의원 2574명이 당선되는 성과를 거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