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 정의당 후보 선출
1. 개요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 정의당 후보 선출은 1967년 3월 30일 정민회가 당명을 정의당으로 개칭하고 이세진을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며 이루어졌다. 이세진 후보는 선거 후보 등록 시 본적, 주소, '한문 수학' 학력, 그리고 만주 독립 운동 경력 외에는 알려진 정보가 거의 없었다. 정민회는 제5대 대통령 선거 이후 혼란을 겪으며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고, 대중당 흡수 시도를 거부하고 독자 후보를 내세웠다.
| 국가 | 대한민국 |
|---|---|
| 득표율1 | 추대 |
| 선거명 |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 정의당 후보 선출 |
| 선거일 | 1967년 3월 30일 |
| 선거전 | 변영태 |
| 선거후 | 이세진 |
| 유형 | 대통령 |
| 이전 선거 |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 선거 정민회 후보 선출 |
| 이전 선거 연도 | 1963년 |
| 차기 선거 | 대한민국 제7대 대통령 선거#기타 |
| 차기 선거 연도 | 1971년 |
| 직책 | 대통령 후보 |
| 후보1 | 이세진 |
| 색1 | 초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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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 -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 부산시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 부산시에서 민주공화당 박정희 후보가 64.21%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했으며, 신민당 윤보선 후보와의 큰 격차를 보였다. -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 -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 서울특별시
1967년 대한민국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서울특별시의 지역별 개표 결과는 윤보선과 박정희 주요 후보 간의 경쟁 양상을 보여주며, 각 구별 득표율과 득표수가 기록되었다.
2. 정민회의 혼란과 정의당으로의 개칭
제5대 대통령 선거 이후 변영태가 정계에서 은퇴하고 주요 인사들이 당을 떠나면서 정민회는 혼란을 겪었다. 제6대 총선에서는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했으나, 1965년 광주시 갑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서 유수현 후보가 당선되어 1석을 확보하기도 했다.
당이 어려워지자 일부에서는 군소 정당 통합 운동에 참여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1967년 군소 정당들이 통합하여 대중당을 창당하자 일부는 이에 합류하여 정민회가 대중당에 흡수되었다고 주장했으나, 정민회는 이를 부인하고 독자 후보 추대를 결정했다.
2.1. 군소 정당 통합 운동 참여 시도
제5대 대통령 선거 직후 변영태는 정계를 은퇴하고 당의 주역들이 당을 떠나며 정민회는 혼란을 겪었다. 정민회는 제6대 총선에서 단 한 명의 후보도 당선시키지 못하는 등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다.
당이 어려워지자 일부는 군소 정당 통합 운동에 가담할 것을 주장하였다. 1967년 군소 정당들이 통합하여 대중당이 창당되자 정민회 일부는 여기에 합류하고 정민회가 대중당에 흡수되었다고 주장했으나, 정민회는 이를 부인하고 독자 후보 추대를 결정했다.
2.2. 정의당으로 당명 개칭
정민회는 1967년 3월 30일 전당대회를 열어 당명을 정의당으로 바꾸고 이세진을 당 대표 및 대통령 후보로 추대했다.
이세진 후보는 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할 때 본적, 주소, '한문 수학'이라는 학력, 이렇게 세 가지 정보만 적어냈으며, 만주에서 독립 운동을 했다고 알려진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
3. 이세진 후보
정민회는 1967년 3월 30일 전당대회를 열어 당명을 정의당으로 바꾸고 이세진을 당 대표 및 대통령 후보로 추대했다. 이세진 후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하면서 본적, 주소, '한문 수학'이라는 학력 등 세 가지 정보만 적어냈으며, 만주에서 독립 운동을 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전무하였다.
3.1. 알려진 정보
이세진 후보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하면서 본적, 주소, '한문 수학'이라는 학력, 이렇게 세 가지만 적어 냈으며, 만주에서 독립 운동을 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3.2. 알려지지 않은 정보
이세진 후보는 선거관리위원회에 후보 등록을 할 때 본적, 주소, '한문 수학'이라는 학력 등 세 가지 정보만 적어냈으며, 만주에서 독립 운동을 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전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