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해군 56함 침몰 사건
1. 개요
대한민국 해군 56함 침몰 사건은 1967년 1월 19일 동해에서 어로 보호 작전 중이던 대한민국 해군 경비함 당포함(PCE-56)이 조선인민군의 해안포 공격을 받아 격침된 사건이다. 당시 당포함은 어로 저지선을 넘어 조업 중인 어선을 남쪽으로 유도하려 했으며, 79명의 승무원 중 51명이 구조되었다. 사건 이후, 유엔은 공동 조사를 제의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어로 보호 업무는 다른 부처로 이관되었고, 북한은 1967년부터 1968년까지 남한 어선에 대한 추가적인 도발을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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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대한민국 -
동백림 사건
동백림 사건은 1967년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대규모 간첩단 사건으로, 서독과 프랑스 거주 유학생, 교민 등 194명이 동베를린을 거점으로 북한과 접촉하여 간첩 활동을 했다는 혐의를 받은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인 공안 조작 사건으로, 민주화 이후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은 피해자들이 많다. -
1967년 대한민국 -
한반도 비무장 지대 분쟁
한반도 비무장 지대 분쟁은 한국 전쟁 이후 1966년부터 1969년 사이 비무장 지대와 그 주변 지역에서 발생한 남북한 간의 무력 충돌 및 군사적 긴장 상황으로, 북한의 도발과 남한과 미국의 대응, 미국의 핵무기 배치와 북한의 반발, 그리고 닉슨 독트린 발표 이후 주한미군 감축 고려 등이 주요 내용이다. -
1967년 분쟁 -
랜치 핸드 작전
랜치 핸드 작전은 베트남 전쟁 중 미국이 1961년부터 1971년까지 시행한 고엽제 살포 작전으로, 메콩 강 삼각주 지역의 수풀 제거 및 북베트남군 보급로 차단을 목적으로 했으며, 다이옥신에 오염된 에이전트 오렌지 등의 사용으로 인해 인체에 유해한 영향을 미쳐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다. -
1967년 분쟁 -
그리스 군사정권
그리스 군사정권은 1967년부터 1974년까지 이어진 권위주의 정권으로,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군부가 반공주의와 권위주의적 통치를 내세워 시민의 자유를 억압했으나, 아테네 공과대학교 봉기와 키프로스 분쟁을 거치며 붕괴되고 민주주의가 회복되었다. -
대한민국의 해양 사고 -
페스카마 15호 사건
페스카마 15호 사건은 1996년 남태평양에서 발생한 참치잡이 원양어선 선상 살인 사건으로, 조선족 선원들이 선상 생활의 어려움과 귀국 요구 거절에 불만을 품고 한국인 선원 등을 살해한 후 대한민국으로 인도되어 재판을 받았으며, 당시 열악한 원양어선 선원들의 노동 환경과 외국인 선원 인권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
대한민국의 해양 사고 -
천안함 피격 사건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서남쪽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하여 4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으로, 민군 합동조사단은 북한의 어뢰 공격을 원인으로 발표했으나, 여러 의혹과 논란이 지속되며 남북한 간 군사적 긴장 고조의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되고 정부 대응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2. 사건 발생
1967년 1월 19일, 대한민국 해군은 동해에서 어로보호작전 중이던 당포함이 조선인민군 해안포 공격으로 격침되었다고 발표했다. 당포함은 어로저지선을 넘어 조업 중인 어선을 남쪽으로 유도하던 중이었으며, 승무원 79명 중 51명이 구조되었다.
당포함은 조선인민군 해안포대에서 발사된 125mm 해안포 200여 발을 맞고 침몰했다. 1월 19일 오후 1시 30분경, 70여 척의 어선단이 어군을 따라 해상 휴전선을 넘었고, 이들을 북으로 끌고 가려는 인민군 함정을 발견한 당포함이 어선들을 유도하기 위해 북상했을 때 인민군의 해안포가 포격을 시작하여 오후 1시 50분부터 20분 동안 포격을 받았다. 53함이 3인치 포로 응전했으나, 당포함은 포탄을 선체에 맞고 침몰했다.
2.1. 최초 보도
1967년 1월 19일 오후 2시 30분경, 대한민국 해군은 동해에서 어로보호작전 중이던 650톤급 해군 경비함이 조선인민군의 해안포 공격으로 격침되었다고 발표했다. 이 경비함은 어로저지선을 넘어 조업 중인 어선을 남쪽으로 유도하던 중이었으며, 승무원 79명 중 51명이 구조되었다.
2.3. 피격 과정
1967년 1월 한일호와 충남함의 충돌 사고 수습이 진행되던 중, 1967년 1월 19일 오후 대한민국 해군은 "14시 30분경, 동해에서 어로보호작전 중이던 650톤급 해군 경비함이 조선인민군의 해안포 공격으로 격침되었다"고 발표하였다. 경비함은 어로저지선을 넘어가 조업 중인 어선을 남쪽으로 돌리려 하였으며, 승무원 79명 중 51명이 구조되었다.
피격된 경비함은 PCE 56 당포함(唐浦號)으로, 대한민국 해군이 1961년 12월 13일 미국으로부터 인수하여 대간첩침투작전과 어로보호에 투입된 선박이었다고 보도되었다.
조선인민군의 해안포대에서 발사된 125mm 해안포 200여 발을 맞고 침몰되었다고 보도되었다. 1967년 1월 19일 오후 1시 30분경, 70여 척의 어선단이 어군을 따라 해상 휴전선을 넘었고, 이들을 북으로 끌고 가려는 인민군 함정을 발견한 당포함이 어선들을 유도하기 위해 북상했을 때 인민군의 해안포가 포격을 시작하여 오후 1시 50분부터 20분 동안 200여 발의 포격을 받았고, 53함이 3인치 포로 응전했으나 포탄을 선체에 맞은 당포함은 침몰했다.
3. 구조 및 수습
1월 20일 오전까지 51명이 구조되었으나, 그중 11명은 사망하고 11명은 중화상을 입었다. 실종자는 더 이상 발견하지 못했으며, 28명 모두 전사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해군 본부는 침몰 해역이 휴전선 부근이고 수심이 210m여서 인양 작업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비서장회의에서 유엔은 1월 20일 PCE 56함에 대한 포격에 대해 엄중 항의하고 공동 조사를 제의하였다. 1월 21일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에서 사회주의 진영은 중립국휴전감시위원단의 사건 조사를 거부하였다.
어로보호 업무는 해군에서 농림부와 내무부로 이관되었으며, 1968년까지 동해안 2개 지역에 제트기 운용이 가능한 공항을 신설할 것이 발표되었다. 침몰한 당포함을 대신할 함정으로 미국으로부터 PCE 50함을 인수하여 ‘거진호(巨津號)’로 명명하였다.
4. 북한의 추가 도발 (1967-1968)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당포함 피격 사건 이후에도 대한민국 어선에 대한 공격과 납북 시도를 지속했다. 1967년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어선 납북을 시도하고, 포격을 가해 어선이 침몰하고 사상자가 발생했다. 1968년에도 어선 납북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건들의 자세한 내용은 #1967년 6월 어선 납북 시도, #1967년 9월 어선 포격, #1967년 12월 어선 침몰, #1968년 1월 어선 납북에서 확인할 수 있다.
4.1. 1967년 6월 어선 납북 시도
1967년 6월 19일, 조선인민군이 남한 어선 2척에 기관총을 발사하며 납북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어선 한 척(한풍호)이 휴전선 근처에서 침몰했으나, 다른 어선에 옮겨 타 귀환할 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 1명이 실종되고 2명이 총상을 입었다.
4.2. 1967년 9월 어선 포격
1967년 9월 20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안에서 남한 어선 9척에 30분간 250발의 포탄을 발사하여 어선 1척이 침몰하고 1명이 중상을 입었다.
4.3. 1967년 12월 어선 침몰
1967년 12월 21일, 조선인민군 함정이 남한 어선단 250여 척을 포위하여 납북을 시도하다 실패하고, 어선 1척을 들이받아 침몰시켰다. 이 사고로 선원 6명이 사망하였다.